부정하던 비선 조직 드러나 파급력 막대해… 정치권 촉각
  •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진퇴 문제까지 논의한 비선 실세가 있다는 28일자 세계일보 보도를 두고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10일 국회에 출석한 김기춘 비서실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진퇴 문제까지 논의한 비선 실세가 있다는 28일자 세계일보 보도를 두고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10일 국회에 출석한 김기춘 비서실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집권 3년차를 맞는 박근혜 정부 앞에 '정윤회 블랙홀'이라는 거대한 암초가 등장했다.

    야권의 대여공세는 '4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사업) 국정조사'에서 '비선실세 국정농단 진상조사'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현 정부로 타깃을 재조준하는 모양새다.

    올해 초부터 일부 매체에서는 청와대와 정윤회 씨를 연결짓는 보도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은 박 대통령의 비선그룹으로 '만만회'에 관해 언급하기도 했다. '만만회' 중 '회'는 박 대통령의 의원시절 보좌관인 정윤회를 뜻한다.

    이 때마다 청와대는 "근거 없는 소설 중의 소설"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세계일보가 28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내부 문건을 근거로, 정윤회 씨의 인사 개입 의혹 등을 제기함에 따라 이른바 '청와대 비선실세' 논란은 본격적으로 불붙게 됐다.

    청와대는 해당 문건이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것은 맞지만, 내용은 감찰 결과를 다룬 것이 아니라 시중의 정보를 수집한 보고용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문건이 청와대발(發)임을 인정한 이상, 이른바 '비선 실세' 문제는 4자방이나 세월호 사고 때의 '잃어버린 7시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급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벌써부터 야권은 전 정부를 겨냥했던 4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사업) 국정조사 요구에서 발을 빼고 현 정부를 겨냥하는데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

    이날 야당은 청와대를 향한 총공세에 나서는 한편 국회 운영위 소집과 정윤회 씨 및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의 국회 출석을 요구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진상조사단장으로 임명된 박범계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진상조사단장으로 임명된 박범계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정치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정윤회 씨를 중심으로 대통령 최측근 비서관들이 후한말의 환관들처럼 국정을 농단해왔다는 점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비선 조직의 존재를 부인해왔던 청와대가 국민을 속여온데 대해 어떻게 변명할 것인지 지켜볼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나아가 "국회 운영위를 긴급 소집해 공직기강비서관실 보고서의 진위 여부를 철저히 밝힐 것"이라며 "김기춘 비서실장, 정윤회 씨,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이른바 '십상시'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보고서 작성자 모두 국회에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비선실세 국정농단 진상조사단을 긴급 구성했다. 단장에는 대전지법 판사·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박범계 의원을 임명했다.

    조사단장에 임명된 박범계 의원은 취재진과 만나 "민정수석비서관실이라면 민심의 동향 수집, 즉 정보나 첩보의 취합이 있을 수 있겠다"면서도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만든 것이라면 그 단계를 넘어 청와대 자체에서 액션을 취해야 할 단계라고 본 것이 아닌가"라고 청와대의 해명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박범계 의원은 논란을 다루는 자세에 있어서 대단히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다.

    박범계 의원은 "이것은 대단히 큰 사건"이라며 "진상조사단의 역할과 노력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이것이 쉽게 묻히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렇기에 조금도 서두르거나 답답해하지 않는다"며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박범계 의원은 국정조사 요구를 당장 하지 않을 것임을 단언했으며,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고소·고발 가능성도 일축했다.

    야당이 이토록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폭발력과 파급력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4자방처럼 당장 국정조사 요구를 떠들어대지 않더라도, 굉장한 파괴력을 가진 사안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이미 판단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파문이 확산될 경우, 집권 3년차를 맞는 박근혜정부의 국정동력이 '정윤회 블랙홀'에 빠져 조기 레임덕을 몰고올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뒤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