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강 중위 "김일성 고지는 반드시 우리가 점령하겠습니다"
  • 강길영 중위.ⓒ보훈처
    ▲ 강길영 중위.ⓒ보훈처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당시 해병 제1연대 소속으로 강원도 양구 전방의 전술적 요지인 924고지 전투에 참가해 중대의 선두에서 돌격전을 감행하던 중 적탄에 의해 전사한 강길영 해병 중위를 1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강길영 해병 중위는 1930년 경북 상주군 출생으로 1949년 4월 15일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인천상륙작전, 수도 서울 탈환작전 등에 소총병으로 참여해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 후 해병간부후보생 제3기로 종합학교에 입교해 군사훈련을 받고 1951년 소위로 임관해 가리산 및 화천지구전투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951년 7월 강원도 홍천부근에 배치되어 있던 미 해병 제1사단과 해병 제1연대는 인제 북쪽 21km지점에 위치한 평촌으로 향했는데 그간 내린 호우로 소양강이 범람, 도로는 침수되고 교량은 유실된 곳이 많아 차량기동에 많은 지장이 뒤따랐다.

    이 무렵 대치하게 된 적은 북한군 최강부대인 제3군단 예하의 제1사단 3연대로 월령산 서북쪽에 924고지-1026고지-1055고지를 사이에 두고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매우 중요한 전술적 요지로, 이곳을 점령하면 펀치볼을 완전히 장악해 적의 본거지로 알려진 내금강을 제어할 수 있는 발판을 굳힐 수 있고, 북방 깊숙이 쐐기를 박는 형세가 되어 중동부전선을 북방으로 끌어올릴수 있어 그 동안 격렬한 쟁탈의 초점이 돼왔다. 

    그중에서도 924고지는 김일성고지로, 1026고지는 모택동고지로 각각 명명해 공산군은 사수의지를 굳건히 다짐했으며, 우리군은 장병들의 사기와 적개심을 불러일으켜 쟁탈하고자 했다. 924고지의 공격을 담당한 해병 제1연대 제3대대는 제11중대를 우일선, 제10중대를 좌일선으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허술할 것으로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924고지의 우측 후방의 적은 치열한 포격과 집중사격으로 저항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제11중대는 전진을 거듭해 적진 100m 전방까지 다다랐고 마지막 최후의 돌격을 앞두고 있던 순간, 지휘하던 중대장 육동욱 중위가 적탄에 목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졌다. 중대장이 쓰러지자 중대 선임장교인 강길영 중위는 쓰러진 중대장을 잡고 ‘중대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김일성 고지는 우리가 꼭 점령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선두에 선다. 

    그리고 그 말은 강길영 소위의 마지막 말이 됐고, 그의 장렬한 희생이 있던 다음 날 아침, 우리 군은 김일성 고지를 점령하게 된다. 정부는 강길영 중위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려 1953년 3월 30일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하고 해병 소위에서 중위로 일계급 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