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난 포기하지 않아요. 그래도 우리들의 만남에 후회는 없겠죠. 어렵고 또 험한 길을 걸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발인 미사를 진행하는 신부의 입에서 느닷없이 가요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이 가사는 고인이 된 신해철의 히트곡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의 노랫말이다. 31일 오전 서울아산병원 영결식장에서 발인 미사를 맡은 신부는 고인이 직접 쓴 노랫말을 인용해 "우리가 고인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한, 언제나 우리 마음 속에 함께 있을 것"이라고 유가족과 팬들을 위로했다.

    신부는 "젊은 시절, (자신도)가수 신해철의 팬이었다"며 "그가 부른 노래를 들으며 20대를 보냈다"고 회상했다.

    저도 고인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고인은 다른 가수들과는 달리, 사람과 세상에 대해 논할 줄 아는 가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인의 노래를 들으면서 사람과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신부는 신해철이 흔한 남녀간의 사랑만 노래한 게 아니라 사회를 직시하고 비판적인 가사를 많이 써왔음을 지적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게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모르는 것보단 훨씬 가치있는 삶이기에 그는 끝까지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설파했다.

    신부는 "난 포기하지 않아요. 그래도 우리들의 만남에 후회는 없겠죠. 어렵고 또 험한 길을 걸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라는 가사를 단순히 이성에 대한 사랑 표현이 아닌, 진리와 믿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화자의 다짐으로 풀이한 듯 했다.

    이처럼 미사를 인도한 신부마저 한때 팬이었을 정도로, 신해철은 폭넓은 팬층을 자랑하던 톱가수였다. 그런 만큼 이날 발인 미사 자리에는 머리가 희끗해진 노신사부터 어린 학생들까지 실로 다양한 나이대의 조문객들이 참석했다.

    미처 영결식장에 들어가지 못해 먼 발치에서 발인식을 지켜보는 팬들은 저마다 눈시울을 붉히며 신부가 건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영결식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조차 머리를 숙이고 잠시나마 고인을 추억하고 애도하는 모습을 취하는 등, 현장에는 숙연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발인미사가 서태지의 추도사 낭독까지 모두 마무리되자, 고인의 운구 행렬이 시작됐다.

    시신을 안치한 관은 고인이 몸 담았던 그룹 넥스트의 멤버들이 들었다. 영정사진은 고인의 유족이, 위패는 가수 윤도현이 들고 운구 행렬을 이끌었다.

    운구 행렬이 영결식장 밖으로 나오자 운구차 앞에서 대기 중이던 조문객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취재진 중에도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이 보였다.

    고인은 오전 11시 서울 원지동 소재 서울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안성 소재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영면에 들어간다.

    추모관에 안치되기 전, 유족은 고인의 유해를 안고, 분당 작업실을 둘러보는 시간을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