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민주화 운동들이 서서히 소멸하듯, 민주화 기념 장소의 한 곳인 세실레스토랑도 소멸해 가는 것 같다."

    10일 영업을 끝으로 간판을 내리는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의 5번째 사장인 정충만(50) 씨는 이날 마지막으로 가게를 찾은 손님들을 맞으며 30년 역사의 세실레스토랑을 접는 씁쓸한 소회를 그같이 밝혔다.

    1979년 문을 연 이후 재야인사나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장으로 애용됐던 세실레스토랑은 아아로니컬하게도 지난해 레스토랑 주변을 인파로 가득 채운 `촛불 정국'을 거치면서 매출이 급격히 떨어져 쌓인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간판을 내리게 됐다.

    정 사장은 그동안 레스토랑을 찾은 유명인사나 정치인들에게 후원을 부탁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괜스레 누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냥 가게를 접기로 했다고 한다.

    정 사장 옆에서 지난 4년여간 함께 레스토랑을 지켜왔던 부인 이수정(42) 씨는 "오래 두고 결정한 일이라 그냥 담담하다"면서 "언론에 폐업 기사가 나가고 나서 인수의사를 타진한 몇 분이 있지만 아직 행동으로 옮긴 분은 없다"고 말했다. 

    이날 레스토랑에는 가게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로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인터넷에서 폐업 관련 기사를 보고 여자친구와 함께 왔다는 김성훈(35) 씨는 "역사적으로 뜻깊은 장소가 사라진다기에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며 레스토랑 구석구석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레스토랑의 마지막을 기억하기 위해 20여 년 만에 일부러 찾았다는 이종찬(48) 베이징대 교수는 "집기는 조금 변했지만 분위기는 예전 그대로다"라며 "87년 민주항쟁을 겪은 나에게는 젊은 시절의 깊은 인상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벽을 가득 채웠던 수백 점의 정치인들 사인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뜯어낸 정 사장은 "월요일(12일) 폐업신고를 하고 소유주인 성공회 측에 건물을 넘길 것"이라며 "파괴가 있어야 새로운 창조가 있지 않겠느냐"고 애써 웃음을 지었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