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舊소련의 입장, “對馬島는 朝鮮의 땅”

    1990년대에 공개된 구 소련 외무성의 외교문건을 통하여 뒤늦게 확인.

    李東馥

  • 1945년8월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따른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후
    미•영•소 등 전승(戰勝) 연합국들이 한반도에 관한 전후처리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소련은 한•일(韓•日) 간의 대한해협(大韓海峽)에 위치한 대마도(對馬島)
    를 한국 영토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1990년대에 공개된 구 소련 외무성의 외교문건을 통하여 뒤늦게 확인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시 소재 <우드로 윌슨 국제문제 연구 센터>(Woodrow Wilson Center for International Scholars)가 1991년부터 시작한 '냉전시대 국제 역사 연구 계획'(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의 일환으로 '한반도에서 소련이 추구한 목표와 한국전쟁의 기원(起源) - 구 소련의 문서가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證據)'(Working Paper #8: Soviet Aims in Korea and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1945-1950: New Evidence for Russian Archives)라는 제목으로 미국 학자 캐드린 위더비(Kathryn Weathersby) 박사가 1993년11월에 발표한 논문은 1945년 9월 구 소련 외무성이 작성한 '구 일본 식민지들과 위임통치령(委任統治領)들 처리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 가운데 ‘조선반도(朝鮮半島)’에 관한 부분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조선반도의 38선 이북 지역에 대한 소련군의 점령은
    나머지 지역에 대한 미군의 점령과 동일한 기간 동안 계속되어야 한다.
    제주도(濟州島)는 중국의 점령지역에 편입함으로써
    여순(旅順)의 소련과 중국 해군항(海軍港)의 전략적 중요성에 관한
    중국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마도 2년간 지속될 점령기간이 종료된 뒤
    조선은 4대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어야 하며
    이 기간 중 부산(釜山)과 제주도 및 인천(仁川) 등 3개의 전략적 요충(要衝)은
    소련군이 통제하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조선반도의 이들 3개 전략적 요충에 대한 소련의 권리 인정을 요구하는 것은
    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요충들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기를 바라는 미국의 희망을 역이용하여
    미국에 압력을 가하는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만약 미국이 조선반도의 이들 3개 전략적 요충들에 대한 소련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할 경우 우리는 이들 지역을 소련과 중국이 공동으로 통제하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조•일(朝•日) 양국간의 국경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로 이관(移管)할 것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대마도가 일본이 아시아 대륙 국가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조선에 대한 침략의 기점(起點)으로 이용되어 왔다는 사실은
    소련의 그 같은 제안을 정당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영•소 3국 외상회의에서 소련은
    '대마도의 조선영토 편입' 제안은 물론 남한의 부산•제주도•인천 등 3개 전략적 요충에 대한
    소련의 통제권 인정 요구를 꺼내 들지 않았다.

    웨더스비 박사는 그 원인에 대하여 1945년 8월부터 12월 사이에
    국제적으로 냉전구조가 급격하게 심화되고 미소(美蘇) 관계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구 소련이 그 같은 제안과 요구의 현실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판단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구 소련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따른 전후처리 방안의 하나로
    '대마도의 조선영토 편입'을 검토했다는 사실은
    그 동안 일반에 알려진 적이 없는 새로운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의 무리한 독도(獨島) 영유권 주장으로
    한일관계의 긴장 지수가 치솟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70년 전에 구 소련이 대마도 영유권의 조선으로의 이관 문제를 검토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길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