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포럼 88차 토론회>벼랑 끝에 선 대한민국, 어떻게 할 것인가?

    "공화주의적 애국 교육 시급...국가 해체 막아야"

    강규형(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현대사)

  • 어느 문명 또는 사회의 생로병사도 인간의 그것과 같은 모습을 띈다. 탄생-성장-쇠퇴-해체의 과정을 밟지만 이 사이클의 형태는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대한민국은 이제 성장을 멈추고 짧은 전성기를 맞고 벌써 쇠퇴과정에 들어간 듯한 징후가 여러 군데서 나타나고 있다.

    자신의 성장에 대한 확신과 성공요인에 대한 자부심이 사라지고 자기부정의 길로 가고 있다. 공동체가 영속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공통가치를 공유해야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는 공통가치라는 것이 완전히 실종됐다. 이런 공동체는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지속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는 1948년 체제는 극복돼야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유행이 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란 공동체의 침몰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강하고 건전한 야당은 건강한 사회의 필수요소이다. 그러나 현재 제1야당은 정치세력으로서도 지리멸렬이지만, 이념·정신적으로도 이미 파산 또는 공황 상태에 빠진지 오래다.

    48년체제를 부정하는 야당은 이미 존재가치를 가질수가 없다. 극단주의적 역사, 사회, 세계관으로 무장된 이데올로그들이 장악한 소위 전문위원 그룹들과 그들과 인식을 같이하는 의원들과 정당구성원들을 가지고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한국사 교과서에서 삭제해야한다는 일부 국사학계의 주장에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정당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우리의 현대사는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이와 함께 확립된 헌법의 기초 위에 자유민주주의가 점차 확립되어가는 발전적인 역사 아니던가. 즉,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이 의회민주주의와 다당제(多黨制)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와 입헌주의(立憲主義, 법치주의法治主義), 그리고 공화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건강한 시민사회와 근대 국민국가를 이루기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한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마당에 건강한 대안이자 건전한 수권정당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귀결은 망국적인 포퓰리즘일 뿐이다.  

한국사회는 “국가”와 “민족”을 혼동하는 기이한 사회이다. 그 결과는 폐쇄적 민족지상주의와 반(反)국가주의의 결합이었다. 이런 사조는 오랜 숙성과정을 통해 근래 교육, 문화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미래세대를 키우는 교과서와 교사들이 공동체의 가치를 왜곡해서 폄하하는 현실은 거의 재앙수준이다. 한국의 과거 권위주의 체제와 북한의 전체주의적 체제 사이의 커다란 차이점을 무시하고 동일시하거나, 오히려 남쪽 체제를 더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남아 있다. 경제 부분에선 대외 의존, 산업 불균형, 빈부 격차, 근로자 농민의 희생은 자세히 서술되지만, 주도면밀하고 과감한 경제개발계획과 집행은 평가절하되고,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가져온 혜택에는 눈을 감는다.

또한 주위에서 ‘애국’이란 개념이 촌스러운 단어로 인식되며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막무가내식 불복종, 방종과 반항이 민주주의라 착각하는 것이 이런 흐름의 한 현상이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성숙하기도 전에 쇠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조차 든다. 공항, 고속철, 치수사업, 항만 등 인프라(Infra) 건설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이 아닌) 무조건적인 반대는 이런 풍조의 또 다른 현상이다.

지금 인터넷 공간은 언제나 분노와 증오로 넘쳐난다. 어느 나라에서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심하게 분노와 증오가 넘쳐난다. 정신의학자들에 따르면 분노의 성향은 어린 시절 심리적 상처와 좌절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한다. 자기 정체성에 문제가 있을 경우 분노가 분출하고 흑백논리적 사고를 갖기 쉬운데, 이런 경계성 인격 장애인들은 어린 시절 정서적 상처의 경험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엄청난 경쟁사회이다.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모든 면에서 승자와 패자를 확연히 갈라놓는 면이 있었다. 또한 한국사회의 발전이 워낙 격변적인 스피드로 이뤄져 전체적으로는 평균적인 생활 여건의 극적인 상승을 가져왔지만, 상대적인 박탈감과 패배의식을 낳기도 했다. 한국 사회가 '헝그리 사회'에서 유례없는 '앵그리(angry) 사회'로 변환됐던 것이다. 숨 가쁜 변화 속에서 한국사회는 성숙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 곧이어 닥친 정보화 시대에선 가상공간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공간이 창출되면서 증오의 에너지가 분출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해방공간'이 갑자기 생겨났다. 오프라인에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성숙한 행동을 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저명한 IT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Carr)가 얘기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출현이 그것이며, 이것은 바로 중우(衆愚)정치의 전형적 현상이다.

한 사회 내에서 사회민주주의부터 시장지상주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건전한 비판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체(國體)를 부정하는 것엔 단호히 대처해야 하고 심각한 안보위협에는 단결해야 한다. 불신과 증오가 판치는 것은 역대 정부가 국민들을 호도하고 속여 온 죄과에 따른 업보이기도 하다. 여기에 다른 요소들이 가세하면서 한국은 정신적 무정부 상태를 맞고 있다. 우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태국처럼 사회 기강이 무너진 나라를 보면서 걱정하지만, 이미 온라인 가상공간에선 한국도 기강이 무너진 지 오래다. 우리는 가상공간에서 배태된 이런 분위기가 오프라인 실제 사회로 쉽게 전이(轉移)되는 것을 이미 경험했다. 하지 않았던가.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현재 좌우를 초월한 공통가치를 못 갖고 방황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제는 정반합(正反合)의 발전과정에서 합을 지향할 때이다. 즉, 과거의 거친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와 현재의 파괴적인 반국가주의를 변증법적으로 넘어서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합리적 애정을 키워야 한다. 그 기반위에 사회통합을 이루지 못하고는 한국 사회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는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의 혼선에 대한 해법으로 종족적 민족주의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탈피하고 실제적 공동체를 숙성시키기 위한 공화주의에 주목할 시점이다.

공화주의란 자유, 평등, 공공선, 그리고 법치를 그 핵심가치로 한다. 시민적 일체성을 중시하고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특정 공화국의 법, 정치체계, 생활방식에 충성”하는 ‘공화주의적 애국’의 길을 찾아야한다. 닫힌 민족주의 폐쇄적 국수주의가 아닌 열린 민족주의의 길을 가야할 때란 것이다. 공공선을 목적으로 하는 법치가 이루어지려면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 즉 “정치 공동체의 공공의 이익에 복무하겠다는 시민들의 마음가짐과 태도로서의 시민적 덕성”이 필수적이다. 즉, “자유롭고 평등한 가운데 사회와 국가를 위해 공공선을 추구하는 시민이 두텁게 존재할 때” 그 사회는 진정한 시민사회가 된다. 파출소에서 난동을 부리는 주폭(酒暴) 등을 옹호하며 "파출소에서 깽판 좀 치면 어떻습니까?“라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제1야당의 이론가/논객 행세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비정상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한국은 유사 이래 성숙한 시민사회를 가져본 적이 없다. 정치인이나 재벌들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화를 이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과잉을 피해나가며 시민사회를 더 알차게 숙성시키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식하고, 그 발전과정에 대한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인식을 불러일으킬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을 더 나은 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공화주의적 애국의 덕성으로 무장해야하며, 그 주체는 학계와 시민사회, 그리고 일반 대중이 돼야 할 것이다. 국가정체성이 확립돼야 다가올 자유통일시대도 제대로 준비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