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민주화]를 달고 사며 [에비]로 군림하는 군상들...
  • "내가 누군 줄 알아?"


  • 류근일 본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 류근일 본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검은 옷 입은 정장 여성,
    “야! 너 거기 안 서?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대리기사 목잡고 있던 유족 대표,
    “신고? 내가 누군지 알아?”

     

    요즘  “내가 누군지 알아?”가 유행인 모양이다.  
    하긴 옛날에도 "내가 누군 줄 알아?"는 많았다.
    전쟁 기간과 그 직후에,
    그리고 권위주의 시대에,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겁주는 사례들이 꽤 많았다.

    이 말의 뜻은 대체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는 사람 잡아가는 기관에 있거나,
    그런 기관원을 동원할 권능을 가진 아주 무서운 사람이란 뜻이다.

    우리 동화에서 말하는 [에비]가 바로 그런,
    사람인지 도깨비인지 하는 존재다.
    “쉿, 에비 온다. 울음 뚝!” 할 때의 에비가 바로 그다.
    어렸을 때 이 말 한 마디에 얼마나 오금을 졸였던지.

    이 에비를 우리는 현실에서 숱하게 만나면서 살아야 했다.
    에비들은 “나 이런 사람인데...” 하면서
    곧잘 붉은 줄이 대각선으로 그어진 신분증을 슬쩍 내보이곤 했다.
    아주 슬쩍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얼어붙었다.
    거기 끌려가면 송장 된다는 걸 우리는 잘 알았으니까.

    사람들 중에는,
    자신은 에비가 아니지만 에비하고 아주 가깝다는 걸,
    슬쩍슬쩍 흘리고 다니거나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는 사례도 많았다.
    “우리 형은 00대에 있어...”
    “우리 형부는 00부에 다녀...” 하면서
    그들은 은근히,
    “나 건들었다가는 재미없어...” 라는 뉘앙스를 풍기곤 했다.

    1987년의 민주화는 결국 [에비에 대한 공포로부터의 해방]으로 다가왔다.
    이제부턴 설마 새벽 3시에 들이닥쳐 연행해 가는 일은 없겠지,
    하는 희망을 안겨준 게 민주화였다.
    그러나 그 후에도 [에비]는 여전히 설치고 다니는 거였다!
    [권위주의 에비]를 대신한 [민주화 시대 에비]였다.


  • 대리기사를 불러놓고 30여분간이나 기다리게하다 그가 가겠다고 하자 "내가 누군 줄 알아"라고 [슈퍼 갑질]을 한 새민련 비례대표 김현 의원ⓒ뉴데일리 대표
    ▲ 대리기사를 불러놓고 30여분간이나 기다리게하다 그가 가겠다고 하자 "내가 누군 줄 알아"라고 [슈퍼 갑질]을 한 새민련 비례대표 김현 의원ⓒ뉴데일리 대표

    대리기사를 불러놓고 30분씩이나 기다리게 하자
    그는 “난 가겠다"고 했다.
    이랬다고 ”내가 누군 줄 아느냐?“며 그를 두들겨 팼다.
    두들겨 팬 데 대해선 경찰이 알아서 수사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민주화 시대 에비]의 공갈에 대해선
    누가 어떻게 항변한단 말인가?

    [민주화 시대 에비]는 세(勢-떼)의 에비다.
    여기서 무력한 것은 개인이다.
    아무리 할 말이 쌨어도,
    개인이면 세(勢-떼)한테 속절없이 당한다.
    저 무력한 대리기사처럼 말이다.

    저 세(勢-떼)가 누군 줄 알고 감히 제멋대로
    “나 안 할래”?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왔군, 아주...
    국회의원 나리한테 불손하질 않나,
    당연히 알아봐야 할 분들을 몰라보질 않나...
    그러니까 얻어터지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에비]는 여전히 있다.
    뼈다귀 추림을 당하지 않으려면,
    저 세(勢-떼)가 어떤 무서운 [에비]인 줄은 대충 알아 뫼시면서
    [공손하게] 살아야 할 판이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