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이승기 이준기 엄정화… 제자 수두룩"일본어 지도는 부업… 제 진짜 직업은 배우"

  • “10년째 한국에 살아요… 이젠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관객수 1,700만명을 돌파한 영화 명량에선 일본어를 구사하는 배우들이 여럿 등장한다. 리얼리즘에 충실한 영화이다보니 적장으로 출연하는 배우들 모두 현지인 뺨치는 일본어 실력을 발휘한다. 이 정도의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선 대체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할까? 톱스타들의 일본어 선생으로 통하는 배우 요시무라 켄이치(吉村健一 / Yoshimura Kenichi)는 “정상급에 있는 스타들은 일단 머리가 좋고, 알아서 자신들의 부족함을 채울 줄 안다”며 한국 배우들의 우수한 어학 능력을 극찬했다.

    한국 배우들은 정말로 머리가 좋은 것 같아요.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경우입니다. 특히 이병헌씨를 가르치면서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단언컨대 그는 언어의 천재입니다.


    이병헌은 2009년 드라마 아이리스에 출연할 당시 일본 야쿠자와 전화통화로 1분 이상 협상을 하는 장면을 촬영한 적이 있다. 당시 현장에서 이병헌은 완벽한 일본어를 구사, 단 한 번에 오케이를 받아내 스태프들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대본에 꽤 어려운 단어들이 많이 나왔거든요. 무기에 대한 얘기도 있었고, 군사 용어가 태반이었는데 이병헌씨는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냈죠. 일단 목소리 톤부터 아주 멋있었어요.

  • 요시무라 켄이치는 “이병헌은 어학 실력 외에도 촬영 현장에서 동료들을 즐겁게 해주는 활력소가 되곤 했다”며 “그가 왜 한일 양국에서 인기가 높은지 함께 일을 하며 실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겸손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어요. 병헌씨 앞에만 가면 왠지 유쾌해 지고 긴장감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죠. 그런 것들이 이병헌씨가 지닌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그가 꼽은 두 번째 실력자는 엄정화. 엄정화는 영화 ‘인사동 스캔들’ 촬영 당시 요시무라 켄이치와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촬영장에서 일본어 대사 지도를 했던 켄이치는 “(자신이)지도하려고 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다음날 엄정화를 보면 지도할 틈이 없을 정도로 완벽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감탄했다.

    한국 배우들은 정말 완벽주의자 같아요. 전날 제가 지도하려고 눈여겨봤던 부분이 있었는데 다음날 만나면 단점이 싹 사라져버린 거예요. 그래서 정화씨에게 ‘일본어를 따로 공부하느냐’고 물었는데, 그냥 집에서 혼자 익혔다고 하더군요.

  • 세 번째 실력자는 배우 이준기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조선총잡이’에서 일본인 ‘한조’ 역을 맡았던 켄이치는 주인공 박윤강(이준기 분)의 절친으로 열연해 국내 팬들의 눈도장을 찍은 바 있다.

    정말 기뻤어요. 이게 얼마만의 착한 역인지… 조선인을 돕는 일본인, 멋지잖아요? 하하. 특히 이준기라는 훌륭한 배우와 우정을 나누게 돼 좋았어요. 정말 예의 바르고 프로 의식이 철저한, 배울 점이 많은 배우였습니다.


    이준기는 팬미팅을 일본어로 진행할 만큼 중급 이상의 일본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일본어로 애드리브를 하려는 욕심 또한 커 보였다고.

    제가 죽는 장면에서 이준기씨가 ‘한조’라고 외치며 달려오는 장면이 있었어요. 대본에는 ‘한조’라는 이름만 써 있었죠. 그런데 준기씨가 즉석에서 ‘정신 차려’, ‘눈 좀 떠봐’ 같은 대사를 섞으면 어떻겠느냐고 건의해 대사를 수정한 기억이 납니다.

  • “일본어로 말을 하는 것도 어려운데 연기까지 한다는 건 대단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라고 켄이치는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한일 양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타들은 치열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연습벌레’임이 분명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승기씨도 아주 머리가 좋은 배우 중 한 분이죠. 한창 공부할 때에는 하루에 8시간 이상씩 일본어 공부를 한다고 들었어요.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지 몇 개월 만에 프리토킹이 가능해질 정도로 실력 향상이 두드러졌던 배우로 기억해요.

  • ‘야인시대’로 연기 입문… ‘미수다’로 알려져
    주말엔 최수종, 박상면, 박준규 등과 축구..알고보니 J리거 출신

    한국 배우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친다고 해서 그의 직업을 강사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켄이치는 한국에서 10년째 배우로 활동 중인 연기자다. 어학 강사는 단지 부업일 뿐, 그가 돌아갈 자리는 언제나 배우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계획이다.

    원래는 축구 선수였어요. J리그(1부) 요코하마 반다이 플뤼겔스에서 골키퍼로 활동했었는데요. 경제 불황으로 팀이 와해되면서 실직을 하게 됐죠. 2001년 우연찮게 일본 연예인 축구팀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대한민국과 인연이 시작됐죠. 당시 한 인터뷰에서 무심코 작품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 적이 있는데, 얼마 후 드라마에 캐스팅 됐어요. 그게 첫 연기였죠.


    그가 배우로 첫 발을 대딛은 작품은 드라마 ‘야인시대’. 김두한의 맞수 하야시 역을 진짜 일본인에게 맡기고 싶었던 감독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요시무라 켄이치를 캐스팅, 연기자로 데뷔시키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때에는 정말 겁이 없었죠. ‘안녕’, ‘괜찮아’, ‘닭도리탕’ 세 단어만 알고 한국에 왔으니까요. 솔직히 기본적인 대화는 이 세 단어로 가능하거든요. 물론 연기할 때에는 꽤 애를 먹었죠. 간단한 지시조차도 알아듣지 못했으니...

  • 드라마 '조선총잡이' 촬영현장에서    ⓒ 요시무라 켄이치 페이스북
    ▲ 드라마 '조선총잡이' 촬영현장에서 ⓒ 요시무라 켄이치 페이스북

    ‘야인시대’에 출연하며 연기에 눈을 뜬 켄이치는 새롭게 사귄 한국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주말에는 최수종, 박상면, 박준규 등과 함께 축구를 하고, 평일엔 명지전문대 사회체육과에서 학업을 병행했다. 

    잠시 2000대 중반 잠시 일본에서 숨을 고르던 켄이치는 2007년 한류열풍이 일 때쯤 다시 한국을 찾아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2007년 9월 추석 특집으로 방영된 ‘미녀들의 수다’에 나온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그때부터 한국말을 잘 하는 일본인으로 유명해졌죠. 여타 출연 섭외도 줄줄이 이어졌어요.


    한국에 잠시 놀러왔다 드라마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배우가 된 요시무라 켄이치. 10여년이 흐른 지금, 그도 어느덧 후배들을 거느린 중견 배우가 돼 있었다. 최근 들어 부쩍 증가한 외국인 배우들을 보면 감회가 새로울 법도 하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이 극히 드물었는데. 요즘엔 채널만 돌리면 외국인들이 나와 신기해요. 영화 ‘명량’에 나오는 오타니 료헤이도 저와 비슷한 케이스인데요. 타지에서 연기를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한국인의 정(情)이 어떤 건지 감을 잡는 순간, 이곳에서 지내는 게 그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 될 거예요. 피부색과 언어는 달라도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이들을 서로 이어주는 단단한 끈이 아닐까 싶어요.

  • 드라마 '조선총잡이' 스틸 컷.  ⓒ 요시무라 켄이치 페이스북
    ▲ 드라마 '조선총잡이' 스틸 컷. ⓒ 요시무라 켄이치 페이스북

    켄이치는 현재 국내에서 일본판 '좀비 영화'를 촬영 중이다. 영화 중반 목숨을 잃는 역할이지만, 모처럼 일본 영화에 출연하게 된 켄이치는 누구보다도 신나게 촬영하고 있다고.

    한국에서 꾸준히 활동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외연이 넓어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한일 양국에서 고르게 쓰임 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젠 나쁜 역할보다는 착한 역을 좀 해보고 싶어요. 사실 제 인상도 꽤 괜찮거든요? 실제로 보니 전혀 나쁜 사람 같지 않죠?


    가만 보면 켄이치는 웃는 모습이 참 매력적이다. 웃을 때 눈가와 입가에 주름이 잔뜩 잡히는 모습은 흡사 헐리웃 배우인 제임스 프랭코(James Franco)를 떠올리게 한다.

    '악역'으로 끝나기엔 너무나 아까운 재주와 끼를 지닌 요시무라 켄이치. 하반기엔 좀 더 다양한 장르에서 맹활약하는 켄이치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 조광형 기자 ckh@newdaily.co.kr
    [사진 제공 = 뉴데일리DB / 태원엔터테인먼트 / KBS / 요시무라 켄이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