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서 이순신 죽이고 거북선 궤멸한 '역적'으로 묘사된 배설실제 역사에선 '명량해전' 불참...교전 직전 탈영, 권율에게 처형당해경주 배씨 문중, 사자명예훼손 혐의 제작진 고소.."사실과 다르게 묘사"

  • 1597년 7월 16일 칠천량(거제시 하청면 부근)에서 통제사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왜군에게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한다. 당시 이순신은 당쟁에 휘말려 사병 신세로 전락한 상태.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군관 이덕필과 변홍달로부터 조선 수군의 전멸 소식을 전해들은 도원수 권율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이순신을 찾아온다. 결국 이순신은 선조의 명을 받들고 다시 3군 수군통제사로 복귀, 조선의 운명을 가늠할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게 된다.

    이때 이순신은 '원균의 주력부대가 전멸했다'는 보고를 받은 터라,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곧장 노량진(鷺梁津)으로 발걸음을 돌려 전력 복구에 나섰다. 이순신이 기대한 마지막 희망은 '도망자' 배설이었다. 원균 휘하에서 전투에 참여해 왔던 경상 우수사 배설은 15일 저녁 12척의 전선을 이끌고 함대를 이탈, 이 곳 하동 노량진으로 몸을 숨겼다. 수군 중 유일하게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 백의종군(白衣從軍)한 이순신이 확보한 '유일한 전력'은 아이러니 하게도 배설이 숨겨 놓은 '탈영선'과 병사들이었다.

    당시 조정에선 수군이 전멸됐다고 판단, 이순신에게 바다를 포기하고 육지로 올라올 것을 명령한다. 하지만 배설로부터 12척을 넘겨받은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란 유명한 장계를 올리고 결전을 준비한다.  

    ◈ 극적 재미 위해..배설 장군, '악역' 탈바꿈

    그 유명한 명량해전(鳴梁海戰)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된다. 전선 12척과 병사 120명을 수습, 해전에 나선 이순신은 왜선 330척을 맞아 세계 해전 사상 유례 없는 대승을 거두게 된다. 울돌목의 회오리치는 물살을 십분 활용한 이순신의 지략 덕분이었지만, 애당초 배설이 제공한 12척이 없었다면 이같은 승전보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순신에겐 천금같은 전력을 제공한 배설이 더없이 고마운 존재였을 터. 하지만 각종 기록을 살펴보면 이순신은 배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백의종군할 당시 조정에 올린 보고에는 "배설이 전의를 상실하고 전쟁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장수가 전의를 상실했다는 것'은 전쟁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됐다는 얘기.

    실제로 이순신의 예견대로 배설은 명량해전이 발발하기 직전, 신병을 치료하겠다고 허가를 받은 뒤 육지로 도망쳤다. 전쟁 중 두 번째 도주를 한 셈이다. 이후 전국에 체포 명령을 내렸으나 배설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당시 화가 몹시 난 이순신은 권율에게 "배설을 꼭 붙잡아 엄히 다스려줄 것을 부탁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배설은 전란이 끝난 1599년 경상북도 선산에서 붙잡혀 참수형을 당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영화 명량에서 묘사된 배설의 모습은 실제와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는 명량해전에 참전하지도 않았고, 이순신을 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거북선을 불태운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제작진은 그에게 아군을 배신했다는 누명(?)을 씌워 이순신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

    제작진이 실존 인물이었던 배설에게 허구의 사실을 덧입힌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분석된다. 하나는 주인공 이순신에 감정이입 된 관객에게 '극적인 재미'를 안겨주기 위한 '배신자 캐릭터'로, 지근거리에 있던 배설이 낙점됐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때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게 바로 사람이기 때문.

    두 번째는 난중일기를 독파한 제작진이 이순신의 감정에 휩싸여 그가 못마땅해 하는 배설에게, 현실보다 과한 '어두운 면'을 부각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이순신은 명량해전이 임박해오면서 배설의 안하무인격 성격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처음 12척의 배를 넘겨 받을 때에도 배설과 이순신이 마찰을 빚었다는 기록도 했다. 

    배설이 12척을 지키지 못했다면..

    지난 15일 배설 장군의 후손인 경주 배씨 문중에서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과 전철홍 작가, 소설 출판사 대표를 고소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이들은 "영화에서 경상우수사 배설은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려 시도하고 거북선을 불태운 다음 혼자 도망치다 안위의 화살에 맞은 것으로 묘사됐다"면서 "이는 형법상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사자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대로 배설은 영화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일정 부문 전쟁에 공헌한 바도 적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이순신의 명량해전 승리의 발판이 되는 전선 12척을 제공한 장본인이다.

    영화를 보면 배씨 후손들이 울분을 토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배설은 전쟁에서 도망친 전력은 있지만 적어도 '악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은 배설을 이순신의 '철천지 원수' 정도로 여긴다.

    사람은 저마다 신께서 부어주신 사명이 있다. 배설 장군에게는 그 당시 12척을 이끌고 도망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애당초 권율이 지시한 '돌격 명령'은 당시 조선 수군에겐 무리한 주문이었다. 이를 충실히 이행한 원균은 목숨을 잃었고 배설은 목숨을 부지, 훗날을 도모했다. 당시엔 역적으로 간주됐을지 몰라도 오늘날 명량해전의 결과를 알고 있는 우리에겐 배설 장군과 배 12척이 너무나 소중한 존재로 다가온다.

    그때 배설 장군이 "임전무퇴(臨戰無退)!"를 외치며 장렬히 전사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오늘날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사진 = 영화 '명량'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