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적인 민족주의 사관을 탈피해야
    = 대한민국 건국의 의의와 정체성 보전 방안 =
  • 이주영 박사.
    ▲ 이주영 박사.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자유와 번영”에 성공한 나라가 
    건국기념 행사도 안 해 
     
      이승만 대통령 시절 매년 8월 15일이 오면 정부는
     ‘해방(1945)’과 ‘건국(1948)’을 동시에 경축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이 물러난 다음부터 정부의 8·15경축 행사에서
    ‘건국’은 없어지고 ‘광복’이란 이름으로 ‘해방’만 남고 말았다. 
  • 해방 3년후 1948년 8월15일 중앙청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 선포식.
    ▲ 해방 3년후 1948년 8월15일 중앙청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 선포식.
  그러다가 정말 오래간만에 이명박 정권이 2008년의 8·15에 건국60주년기념 행사를 벌이려는 기적 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정부는 계획된 사업을 진행시키지 못했다.
강기갑 등 74명의 야당 국회의원과 그에 동조하는 광복회 등의 민간단체들이 정부의 건국60주년 경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건국60주년 기념행사는 김문수 지사의 경기도에서만 치러질 수 있었다.
경기도는 건국·호국 유공자들을 위한 위안 행사, 기념 음악회, 및 1948년 8월15일에 태어난 ‘건국동이’ 위안 행사를 열었다. (다행히도 2013년 8·15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건국’이란 단어를 3번 언급했다).

   2008년 8월15일 그날 이명박 정부가 서울 세종로 거리에서 개최한 건국60주년 기념식도
순조롭지 못했다. 바로 그 시간에 야당 국회의원들, 광복회 등의 사회시민단체들, 및 역사 관련 학회들의 대표들이 백범기념관에 모여 1919년 상해에서 세워진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별도의 행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 1945년 해방후 3년뒤1948년 총선거를 거쳐 5월31일 중앙청에서 제헌국회 개원식. 왼쪽 이승만의 개원연설.
    ▲ 1945년 해방후 3년뒤1948년 총선거를 거쳐 5월31일 중앙청에서 제헌국회 개원식. 왼쪽 이승만의 개원연설.
    <한국사>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건국을
     정부수립으로 격하

      1948년의 건국을 정부수립으로 평가절하 하려는 태도는 교육부에서도 보인다.
    교육부의 검인정을 거쳐 현재 고등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들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교과서들은 과거 한반도에서 출현했던 국가들의 탄생·발전과 관련하여
    “고구려의 건국과 발전”, “신라의 건국과 발전” 등의 표현을 쓰고 있으면서도
    1948년에 탄생한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건국’이란 말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건국’이 아니라 ‘정부 수립’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것은 2013년말 교육부가 8종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수정지시를 내렸을 때
    잘 나타났다. 그때 유일하게 대한민국의 탄생에 대해 ‘건국’이란 표현을 쓴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그것을 ‘정부수립’으로 고치라고 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어느 국회의원이 항의성 질의를 하자, 교육부는 건국일에 대한 역사학계의 의견통일이 안되어 그렇게 했다는 회답을 보내왔다고 한다.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은 학설과는 관련이 없는 역사적 사실이므로,
    학계의 의견이나 합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 교학사 발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 표지.
    ▲ 교학사 발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 표지.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다는 말인가

      역사학계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고 하는 데는 대한민국이 1948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1919년 상해에서 세워졌다는 생각이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한다. 그러한 생각은 ‘1919년 건국설’로 불릴 수 있는 독특한 역사 해석에서 오는 것으로 보는 데, 그것을 주장한다고 생각되는 몇몇 역사가들의 글을 읽어 보면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분명하게 주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무리가 따르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이 아닌 임시정부, 광복운동과 관련된 단체들의 세미나 행사 가운데는 “대한민국은 1919년에 건국되었다”는 대담한 제목들이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1919년 건국설’이 있어서 역사교육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하게 된다.
    대한민국이 1919년에 상해에서 건국되었다면 나라가 세워졌는데 독립운동은 왜 필요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토·국민·주권과 국제적 승인도 없는 임시정부의 출현을 건국으로 본다면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들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한민국이란 국호(國號)에 관한 것이다. 1948년 7월에 제헌국회에서 정해진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한민국이란 국호와 전혀 다른 근거에서 붙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1948년 당시 국회 헌법기초위원회는 임시정부의 국호를 그대로 갖다가 쓴 것이 아니라 몇 가지 명칭을 놓고 논란을 벌이다가 투표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투표 결과는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 한국 1표였다.
    따라서 그 당시 대한민국의 국호는 임시정부의 대한민국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 중국 중경에 남아있는 임시정부 청사. 고층아파트와 주택가에 끼여있다.
    ▲ 중국 중경에 남아있는 임시정부 청사. 고층아파트와 주택가에 끼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