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통신>---월간 [충호] 2014년 8월호
강대국에 대한 교차 빅딜카드 준비 절실
- 중국 언론의 시진핑 방한 평가와 통일외교 실천 방안
김상순 /칼럼니스트, 민주평통북경협의회 통일연구팀장
지난 7월 3일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박 2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국빈방문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6월 중국을 국빈방문한 '심신지려(心信之旅)'의 답례이지만,
파격적 방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박대통령은 취임이후 일본보다 중국을 먼저 방문했고,
시주석도 국가주석에 취임한 이후 일본은 물론 북한보다도 한국을 먼저 방문했다.
한중 정상이 건국이후 양국의 전통적 외교관례와는 다른 행보를 보일만큼 한중관계는 발전한 것일까? 23년차의 한중관계가 전통적인 한일관계와 북중관계를 넘어선 것인가? 중국의 한반도전략에 변화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변화를 한반도통일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변화로도 볼 수 있는 것인가?
분단으로 70년간 한반도의 절반에 갇혀있는 한국의 국지적 시각은 변혁을 필요로 한다. 오랫동안 관습처럼 형성된 한국적 시각으로 이번 시주석 방한을 보는 국내의 일부 반응은 차분한 절제가 요구된다. 통일한국의 민족적 희망은 크게 가져야 하나, 목표달성을 위한 전략전술은 현실직시가 우선이다. 이번 시주석의 파격적 방한은 분명 놀라운 변화이나, 과장된 거품과 기대는 냉정하게 걷어야 하지 않겠는가?
북중의 순망치한(脣亡齒寒) vs 한중의 순치상의(脣齒相依)
북중관계와 '순망치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이 말은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는 뜻이자, 중북혈맹의 상징적 표현이다. 그런데 최근의 북중관계는 '혈맹'과는 거리가 멀고, 중국은 북한을 '부담'이라고도 표현한다.
시주석 방한에 즈음하여, 6월 28일자 인민일보는 한중관계를 "순치상의(脣齒相依), 일의대수(一衣帶水)"로 표현했다. "서로 의지하고 돕는 밀접한 관계이자, 매우 가까운 이웃이다"라는 것이다. 이어서, "중국의 강물과 한국의 강물이 같은 바다에서 만나듯, '중국의 꿈(中國夢)'과 '한국의 꿈(韓國夢)'도 이와 같이 만난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이 기사는 한중관계와 북중관계의 위상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시주석은 7월 4일의 서울대 강연에서 한중관계를 '이익공동체'로 표현했다.
북중혈맹은 정상국가 관계로 격하되었고, 한중관계는 이번 시주석 방한에서 '성숙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되었다. 전통적 혈맹에서 '정상화'되는 북중관계와 '이익공동체'로 '경제동맹화'하는 한중관계는 그러나 이제야 비로소 시소의 평형을 잡은 것에 불과하다.
중국이 보는 시주석 방한의 4대 관점과 3대 함의, 그리고 4대 성과
중국이 보는 시주석 방한의 의미와 성과는 무엇일까? 중국은 어떤 전략적 목표와 전술적 변화를 고민하는 것일까?
시주석 방한을 통해 중국이 보는 미래지향적인 한중관계의 4대 관점을 보자.
첫째, 정층설계(顶层设计, top-level design)로, "한중관계를 어떻게 양국 정상이 설계할 것인가"이다. 특히 시주석의 단일국가 방문은 취임 이래 한국이 유일하다고 중국 언론은 강조한다.
둘째, 한중 경제협력으로, 신속한 한중 FTA 체결이다.
셋째, 인문교류의 상득익창(相得益彰)으로, '한류(韓流)'와 '한풍(漢風)'이 상부상조하여
서로의 장점을 더욱 살리자는 것이다.
넷째, 동북아 안정장치(稳定器, stabilizer)의 역할로, "동북아 안정을 위해 한중 양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강조한다.
시주석은 한국언론 기고문에서 4대 제안으로,
▲목린우호(睦邻友好) 고수를 통한 상호신임 증대
▲상호협력(互利合作) 고수를 통한 이익융합 강화
▲평화안정(和平稳定) 고수를 통한 공동터전 수호
▲인문교류(人文交流) 고수를 통한 우정의 다리 건설을 제시했다.
중국 언론은 이번 시주석의 방한결과에 3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한중 정상의 정층설계(顶层设计, top-level design) 강화
▲초유의 대규모 경제사절단 방한과 눈부신 한중경제협력의 성과
▲한중 문화교류의 새로운 계기 마련이 그것이다.
또한, 4대 성과로는,
▲한 단계 상승한 한중 정치안보협력
▲눈부신 한중 경제협력 결과
▲확대될 한중 인문·문화교류
▲동북아 지역평화와 안정을 위한 한중 공동협력을 꼽았다.
분명 중국은 한국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대 한반도 전략변화의 의미 : 지역패권 회복의 전술에 불과
시주석 방한에는 두 가지 명확한 변화가 있다.
첫째, 전통 중북관계의 패러다임 변화이다.
둘째, 한중관계는 '성숙한' 전략적관계로 다가섰다.
그러나 미래지향적 한중관계를 위해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자아중심적 해석을 버리자. 시주석의 파격적 방한으로 중국이 북한보다 한국을 우선할 것이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은 지나치다. 중국외교의 전략이 바뀐 것이 아니라, 일시적 전술변화의 의미로 축소해야 한다.
둘째, 국지적 시각을 버리자. 거시적으로 보면, 중국이 추구하는 전략적 목표는 오히려 강화되었다. 강화된 중국의 전략목표는 한반도 전략변화라는 지역전술의 변화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무엇이 강화되고 구체화 되었을까?
구체화된 동아시아 지역패권 전략 : 시주석의 방한은 그 출발점
시주석은 이번 방한으로 중국의 한반도 전략변화를 대외에 알렸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중국의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전략목표의 우선순위는 동아시아 지역패권 회복이고,
다음은 중미 신형대국관계의 현실화이다.
중국의 한반도 전략변화는 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술에 불과하다.
전술은 전략에 종속되고 목표달성을 위해 전술이 수시로 변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중국은 이번 방한을 통해 북한과 한국에게 각각 경고와 협력의 서로 다른 메시지를 전달했고, 그 목적은 '한반도의 현상유지'이다. 한반도 현상유지는 중국이 중일관계와 중미관계의 두 가지 전략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전술적 가치를 지닌다.
현상유지를 통한 제한적인 한반도 안정은 중국이 중일과의 지역패권에 집중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은 지역패권 회복 과정에서 미국에게 G2 신형대국관계의 현실화를 요구할 수 있다.
중일관계나 중미관계에 있어 중국의 전략목표가 달성되거나 수정될 경우, 전술적 가치에 불과한 중국의 한반도전략은 변할 수 있다. 오늘 중국의 북한에 대한 엄숙한 경고와 한국에 대한 미소는 중국의 전술변화에 따라 내일은 반전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동북아 3대 딜레마(dilemma) vs 통일준비와 남북관계 개선 필요성
일본 우경화와 초법적 헌법수정의 재무장은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탈피와 중국의 대국굴기에 대한 초조감의 결과이다. 조급해진 아베는 한미일 공조의 전술적 손상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북한 접촉에 적극적이다. 아베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중국이다.
중일간의 지역패권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지역패권을 회복하려는 중국은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필요하고,
미약해지는 지역패권을 지키려는 일본은 한반도의 긴장악화가 필요하다.
중일의 서로 다른 한반도전략의 최종 목표는 이미 시작된 중일 지역패권 전쟁의 유리한 고지 선점에 있다. 한반도와 남북관계는 종속변수로서 중일 지역패권 전쟁에 휘둘리고 이용될 뿐이며,
중미관계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한국과 미국은 이미 중일 지역패권 갈등에 끌려들지 않기 위한 각자의 고민에 빠져있다.
중일 지역패권 전쟁은 한국과 미국의 동일한 고민이지만, 한미의 해법은 국력과 입장의 차이만큼이나 다르고 제한적이다. 결국 중일 지역패권의 갈등이 심화될수록 한미동맹의 협력범위는 좁아질 것이고, 한국과 미국은 자국의 국가이익에 맞는 각자의 해법도 찾아야 할 것이다.
동북아에는 ▲북핵과 북한문제의 한반도 딜레마 ▲일본 재무장과 중국위협론으로 대표되는 중일 지역패권 딜레마 ▲이 둘의 최상위인 중미 신형대국관계 딜레마라는 3대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 3대 딜레마는 모두 상호간 쌍방향 종속의 특성이 있고, 이것은 단일 딜레마의 해법 찾기를 어렵게 한다. 이들은 하나의 접점으로 연결되는데, 유감스럽게도 공유되는 연결점이 바로 남북한이다.
남북한은 단지 3대 딜레마의 전술적 가치로 각각 평가되고, 각기 이용될 뿐이다.
한민족은 또다시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남북은 주변 강대국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한 공동 대응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통일외교의 실천준비 : 어떻게 강대국 딜레마를 풀 것인가
첫째, 주변 강대국의 전략목표와 전술변화를 주시하여, '통일외교 실천전략'을 준비하자. 강대국 외교전략의 본질을 제대로 읽어야 올바른 대응 준비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된 실천전략은 한반도 통일의 튼튼한 기초가 될 것이다.
둘째, '실사구시(實事求是) 외교전략'이 필요하다.
한국적 시각으로 거론되는 중견국의 중재자 역할은 비현실적이다.
국력을 초과하는 중미관계와 중일관계의 중재자 역할은 통일한국 이후가 효과적이다.
우선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준비에 집중함과 동시에, 주변 강대국이 북핵문제와 북한문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강대국의 이목을 한반도에 고정시킬 것인가?"에 대한 남북의 합의된 현명한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셋째, '창조적 통일외교 해법'을 구상하자.
강대국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다양한 맞교환 교차 빅딜카드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우리에게 MD체제 참여와 사드(THAAD)의 한국배치를 줄곧 요구하고 있다. 시주석은 이번 방한에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의 참여를 요구했다.
미중의 요구에 해법이 쉽지 않다. G2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다면, 조건부 빅딜로 맞교환 수용 방식을 미중에게 역제안 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지 않겠는가? '미중'의 요구를 '중미'에게 역제안하고, 고민도 떠넘기자는 말이다. G2의 무리한 강요는 우리의 교차된 역제안에 약해질 것이고, 결국 우리가 G2의 요구에서 일부를 수용해야 하거나 모두를 수용해야 하는 어떤 결과도 우리에게 유리하다.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문제 및 한중일 대륙붕 협약 체결을 위한 중국의 '중한공조' 요구에 대해, 북핵과 북한문제에 대한 '한중공조'를 우리도 중국에게 맞교환 빅딜로 요구하는 것도 같은 사례가 될 것이다.
시주석의 방한 결과는 대한민국의 외교적 가치를 높였다.
'한미정치군사동맹'과 '한중경제이익공동체'의 장점을 모두 갖춘 국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힘에 넘치는 중재자 역할을 고민하는 것보다, G2의 요구에 대한 조건부 빅딜을 역제안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외교 전략과 전술을 고민해야 한다. 강대국 외교전략의 변화와 본질을 제대로 읽고, 높아진 국격과 외교적 가치를 적기에 활용할 수 있는 '창조적 통일외교전략' 구상이 필요하다.
강대국에 대한 실질적인 통일외교의 준비와 실천이 긴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월간 [충호] 2014년 8월호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