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 목적이라면 [상설특검법]으로 충분, [처벌권] 요구는 지나쳐
  •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 집회가 끝난 뒤 일부 참가자들이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 집회가 끝난 뒤 일부 참가자들이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헌 변호사(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그간 세월호특별법과 관련돼,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할지 여부를 놓고, 여당과 야당은 물론이고 유가족 및 전문가 등 서로가 처한 입장 차이에 따라 상당한 갈등과 대립이 있었다.

    그나마 여야가 어렵게 이뤄낸 두 차례에 걸친 합의결과도, 야당 안팎과 일부 유가족들의 반발로 사실상 파기돼 갈등과 대립이 재현되고 있다.

    나아가 야당은 여야 및 유가족이 참여하는 이른바 ‘3자 협의체’ 구성을 제의하고, 여당이 이를 거부하자 ‘대여(與)강경투쟁’을 결의하였다고 한다.

    여야간의 합의결과에 극구 반발하는 측은, 세월호특별법으로 민간인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입법은 위헌이 아니고, 사법체계를 흔드는 것도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세월호특별법의 입법취지]는, 세월호 참사사건의 진행과정에서 주로 유가족들이 제기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대책 마련에 있다.

    그렇기에 진상조사위원회는 ‘독립적인 기관’으로서, 그 구성이나 활동에 있어 피해자인 유가족의 뜻이 반영되도록 설정돼 있고, 그 구성이나 활동에 대한 유가족들의 관여는 어느정도 용인될 수 있다.

    그러나 진상조사위원회의 본래 목적인 ‘진상규명’에서 벗어나, 수사권과 기소권 행사에 의한 [책임자 처벌]까지 이르게 하는 것은, [세월호특별법의 입법취지]와 배치된다.

    진상규명을 위해 반드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그 전례가 없을뿐더러 설득력도 부족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국가는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고, 이미 범죄가 발생한 경우에는 범인을 수사해 형벌권을 행사함으로써,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예외적인 경우에 민간인에게 소추권(訴追權, 기소권)을 부여하는 입법례도 있으나, 기소 여부를 전제로 하는 수사권을 행사함에 있어서는 ‘실체적 진실발견’ 외에도 공정성, 중립성, 인권보장도 담보돼야 한다.

    감정에 몰입되기 쉬운 피해자를 포함한 민간인에게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이런 원칙에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국가기관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나라 형사사법 제도의 본질인 것이다.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위원회’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른바 ‘사인소추(私人訴追)제도’를 예로 들기도 한다.

    그러나 ‘사인소추(私人訴追)’는 우리 헌법재판소가 인정하지 않는 제도다.

    ‘사인소추(私人訴追)’는, 법질서의 안정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실현되어야 할 형벌권을,  피해자의 사적 응보(應報)관념에 의존하게 만들어, 형벌의 목적에 부합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실체적 진실의 발견보다는 형사피해자 및 피의자·피고인의 책임 아래 형사소송이 좌우됨으로써,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신속한 재판을 그 이념으로 하는 형사소송체계와도 일치하지 아니한다(헌재 2005헌마167).


    세월호특별법상 ‘진상조사위원회’의 [진상규명] 조사와 달리, [수사권]은 체포ㆍ구속ㆍ압수ㆍ수색 등 피조사대상자에 대한 ‘강제처분’이 수반된다.

    헌법 제12조 제3항이 ‘강제처분’인 [영장의 발부]에 관해 ‘검사의 신청’에 의할 것을 규정한 취지는, 수사단계에서 영장을 신청할 때는 반드시 법률전문가인 검사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다른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영장신청을 막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줄이고자 함에 있다(헌재 96헌바28).

    비록 국민의 지탄을 받는 검사도 없지 않으나, 우리 형사법체계가 검사에게 수사권, 기소권을 부여한 제도적인 이유는, 공익의 대표자이자 준사법기관인 검사가 수사단계에서 발생하는 인권유린의 폐해를 방지하라는 데에 있다.

    나아가 피해자의 개인적 감정이나 집단적 이해관계 또는 여론에 좌우되지 아니하고, 국가형벌권을 객관적이고 적정하게, 합리적으로 행사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검사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는 것은 형사사법상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기하고자 하는 것 이외에도, 헌법상 최고의 가치인 [국가 인권보장]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민간인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입법이 위헌이 아니라도 단정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세월호 유가족들과 같은 범죄피해자들에게는, 고소권, 재정신청권, 헌법소원, 피해자진술권 등의 권리가 보장돼 있다.

    이에 사법기관이 아닌 ‘진상조사위원회’에, [진상규명권] 이외에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거나, 피해자인 유가족들이 수사나 기소에 관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자 하는 입법은, 인권침해의 논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관여한 수사와 기소 결과는, 필연적으로 불공정과 중립성의 시비를 야기할 것이다.

    게다가 올해 6월부터 시행된 ‘상설특별검사법’(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은,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 시비를 차단함과 동시에, 지금까지의 특검법 시행에 따른 반성적 고려가 담겨 있다.

    세월호 사건은 유례없는 참사이고, 현 정부의 사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수사권한’ 등 종전의 법 테두리가 아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예외적 상황에 대비해, 여야 합의를 바탕으로 제정된 법률이 [상설특별검사법]이다.
    즉, 세월호 사고 진상조사는 ‘상설특검’을 통해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

    특별검사추천위원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특별검사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해, 현 정부의 책임자도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 현행 법체계나 법상식에도 부합한다.

    결국 여야 합의에 의한 입법으로 만들어진 [상설특별검사제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 시비를 근본적으로 야기하는 또 다른 예외적인 제도로서, 피해자인 유가족들이 관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은 공감할 수가 없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상설특검제도]의 입법조차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 국민들이 얻은 교훈이 있다면, 원칙과 기준대로 ‘법치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사회에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얼마나 부족한지도 깨닫게 해 줬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이 달라지기 위해서라도, 민간인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라는 요구처럼, 법치주의의 원칙과 기준에 관한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논란이 야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비록 용서할 수 없는 범법자라고 하더라도, 인권과 형사사법의 공정성 및 중립성 보장을 위한 제도는 반드시 구현돼야 한다.

    민주사회의 기본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 정권을 공격하거나 반대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섣부른 입법을 주장하거나 슬픔에 찬 유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의 수사권, 기소권에 몰두하도록 선동하는 행태는 중단돼야 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것이 세월호 사고 이후 달라진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