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제의 신간 [로버트 박의 목소리]에 붙이는 해설

    국제법은 왜 북한의 인권문제에 무력한가

    김미영* 세이지 코리아 대표

  • *서울대 국문과와 대학원에서 한국현대문학,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및 미국 노틀담 대학 로스쿨에서 미국법과 국제법을 전공했다. 조선일보 기자, 한동대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북한인권운동가로서 이 문제를 국제법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현재 세이지코리아 대표를 맡고 있다.

    2013년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이하 “COI”)가 설치되고,
     372쪽에 달하는 보고서가 이듬해 2월 발간되었다.
    이것은 북한인권운동사 관점에서 하나의 사건이자 획기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한 한 미미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반세기 이상 무거운 침묵을
    지켜왔던 것이 사실이다.

  • ▲ 북한 세습3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 북한 세습3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유엔이 2004년 비팃 문타폰 (Vitit Muntarbhorn, 2004-2010년), 2010년 마르주끼 다루스만(Marzuki Darusman, 2010-2013년) 북한인권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을 임명하여 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 동안의 작고 많은 노력들이 큰 물줄기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3년 마르주끼 다루스만 특별보고관 보고서가 나온 후 유엔에서 시리아에 이어 북한 COI가 설치됨으로써 북한의 인권문제는 바야흐로 국제사회의 중심 이슈 중 하나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증폭되는 국제사회의 관심

    COI는 2013년부터 1년간 세계 5개국에서 22회에 걸쳐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고, 240명이 넘는 피해자들의 심층인터뷰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COI 보고서의 중요한 특징은 북한에서 일어나는 인권범죄를 ‘반인도죄’Crimes against Humanity)로 규정하여 그 광범위하고 체계적이면서(widespread or systematic) 엄중한 특성을 국제법적으로 요약 정리해냈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 범죄의 최고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이하 “ICC”)에 회부토록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공식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실제로 북한인권 개선에 기여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반드시 긍정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다만 국제사회는 무력이나 공권력으로 범죄자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는 대신 온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어 망신을 주는 것(naming and shaming)만으로도 무차별적 인권 유린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 COI가 펴낸 방대한 보고서와 전 세계 유수 언론들의 이에 대한 대대적인 보도가 있었던 것으로 1차적 목표인 ‘망신주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망신주기’라는 것이 북한 정권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영향력으로 드러날 수 있는가에 있다. 북한에 대한 악평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가히 세계적이었다.
    미국은 불량국가(rogue state)라는 표현으로 냉전 이후 새로운 적을 규정할 때,
     2002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표현으로 대테러 전쟁에 대한 의지를 드러낼 때
    북한을 제외시킨 적이 없다.
    북한은 KAL 858 테러로 인하여 1988년 이후 2008년까지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라있었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매년 최악의 인권탄압국가로 북한을 지목해왔고,
    2001년 뉴스위크지가 세계 최악의 국가로 북한을 지명하고 김정일에 대해
    ‘악 중의 악’(Worst of Worst)으로 규정했던 것에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전반적 인식이
    집약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민간단체와 국제기구와 원활하게 협력하여 이루어짐으로써 북한 인권문제 해결에 확실히 밝은 신호를 나타내 보인다. 특히 COI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정을 통해 북한문제를 ICC로 회부할 의지를 보여 우리의 기대는 더욱 커져 있는 상황이다. 물론 가장 큰 난관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만장일치로 결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 문제에 대해 미국, 영국, 프랑스와 같은 관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는 오래된, 부정적인 현실을 향한 도전 역시 거세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 북한의 대량 학살무기 퍼레이드.
    ▲ 북한의 대량 학살무기 퍼레이드.

     제노사이드 규정에 인색한 국제사회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노사이드’로 접근하는 것은 국내외적으로 생소한 일이다. 2014년 2월 COI가 펴낸 보고서는 북한의 인권상황을 ‘반인도죄’로 규정하고 정리하면서도 ‘제노사이드’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매우 주저하고 있는 것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다만 COI보고서는 ‘정치적 제노사이드(political genocide)’와 ‘기독교인에 대한 제노사이드(genocide against Christians)’1 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보고서가 적시하듯이 ‘정치적 제노사이드’란 국제법상의 제노사이드 정의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2  기독교인에 대한 제노사이드에 관해서도 1950년 6·25 전쟁 전후로 북한에 기독교인은 24%에 달했으나 (Christian Solidarity Worldwide 통계 인용) 지금은 북한 당국이 발표한 0.16%만이 기독교인이라는 수치를 있는 그대로 인용, 수적으로나 정보상으로나 기독교인들의 집단학살은 개연성이 적고, 따라서 이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3

    COI의 이러한 태도는 그동안 국제사회가 1948년 창설된 제노사이드 협약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 르완다의 아카예수 등의 재판에서 적용한 이후에도 ‘제노사이드’ 규정에 있어 매우 인색했던 역사를 반추해 보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COI가 현재 북한에 기독교인의 수가 무시해도 될 정도로 소수라는 북한 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말한 0.16%의 기독교인이 있다는 발표도 의심의 여지가 크지만, 현격한 기독교인의 감소야 말로 심각한 ‘박해’를 방증한다고 할 것이다. 또한 COI는 1990년대 대량아사 이후 중국 등을 통해 새로 유입된 기독교 신앙과 그로 인한 심각한 박해의 문제에 대해 부각시키지 않았으므로 ‘기독교인에 대한 제노사이드’에 관한 접근도 좀 더 면밀했어야 한다고 보여진다. 요컨대 COI는 북한에서 제노사이드의 요인들을 발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신중한 것을 알 수 있고,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러한 태도는 국제사회의 오래된 관행을 이루고 있다.

     국제사회가 ‘제노사이드’ 규정에 인색한 일차적인 까닭은 세계 제2차 대전기 600만 유태인 홀로코스트에서 말미암은 인류사적인 극악의 기억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북한의 인권문제는 유태인 학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일까? 북한 체제는 극도로 폐쇄되어 있고, 현대적인 기기와 미디어를 동원해서 그 생생한 장면들을 조명하기에 난관이 지나치게 크다. 따라서 북한의 인권 문제는 은폐되어 왔을 뿐 결코 그 심각성은 덜하지 않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COI 역시 유엔의 권위를 갖고도 북한으로부터 현장조사(on-sight visit) 기회를 얻어내지 못했다. 결국 북한에 관한 한 폐쇄성이 면죄부 역할을 해왔을 뿐 이런 사정은 지금까지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 ▲ 북한의 버림받은 인간 '꽃제비'
    ▲ 북한의 버림받은 인간 '꽃제비'

     북한 인권 문제의 특수성 부각의 노력

    북한 인권 문제의 특수성을 국제법적으로 규정하는 노력은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적절하게 다루기 위해서 이미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 동안 과거 공산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인권’ 문제의 틀 그대로 접근하기에는 북한은 이미 여타의 공산주의 국가와도 분명히 차별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냉전 종식 이후에는 오히려 더 심각한 인권문제를 노정해 왔기 때문이다. 로버트 박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제노사이드’ 개념을 통해 선구적으로 이행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4 그동안 북한인권 문제의 특수성을 조명하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있어왔지만 로버트 박의 방식은 확실히 획기적인 것이다.5

    유태인 법률가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의 역할과도 비견된다. 렘킨은 1930년대에 이미 단지 특정 인종이라는 이유로 엄청난 살상이 일어날 것을 예지자처럼 감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마침 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유례없는 유태인 대살상, 이른바 홀로코스트가 시작되고 진행되는 동안에는 무력할 뿐이었다. 이와 같은 사태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직전인 1941년 8월 21일, 영국의 처칠 수상은 “이름 없는 범죄(A crime without a name)가 일어나고 있다”고 영국 생방송을 통해 연설함으로써 이를 인류가 직면한 유례가 없는 현상으로 인식했다. 이 이름없는 범죄가 결국 유태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아 미국 워싱턴으로 건너온 라파엘 렘킨에 의해 ‘제노사이드’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인류사회는 유태인 대학살의 대가로 제노사이드 협약을 얻어냈다고도 해석된다.

    1946년의 제노사이드 결의안은 1948년 12월 9일, 세계인권선언일 하루 전날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 이하 “제노사이드 협약”)으로 탄생했다. 세계 92개국이 이에 찬성했고, 한국은 6·25 전쟁 중이었던 1950년 10월 14일 가입했다.

  • ▲ '인간 신'을 숭배하는 폭력조직 지배체제.
    ▲ '인간 신'을 숭배하는 폭력조직 지배체제.

    북한도 1989년 1월 31일 제노사이드 협약에 가입하기에 이른다. 북한이 이 조약에 가입한 것은 제노사이드 협약이 공산국가에서 일어나는 대량학살에 대해서는 다소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이 사실은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제노사이드 협약에 관련된 하나의 ‘스캔들’이다. ‘보호집단’을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 협약 성립 당시에 있었던 쟁점이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는 양상이 존재하는 것은 이 협약의 현실이다. COI 보고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정치적 대량학살에 관한 한) 이런 범죄는 ‘폴리티사이드’(politicide)라고 기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COI는 제노사이드에 관한 지금의 이해범위가 가능한 한 확장되기를 바란다.”고만 지적해 둠으로써 성립 당시부터 문제가 되었던 제노사이드 협약의 보호집단에 관련된 쟁점을 우회적으로만 시사한다.

    제노사이드 협약은 협약이 체결되기 전단계에 만들어진 1946년 결의안에서 ‘인종, 종교, 정치 집단과 그밖의 집단’으로 포괄적으로 보호집단을 규정했다. 이 결의안은 수정되어 1948년 최종 확정된 협약문에서는 보호집단을 국민, 민족, 인종, 종교 집단으로만 좁혀 정의하게 된 것이다. 국민 집단이란 같은 국적이나 출신 국가를 공유하는 구성원 집단, 민족 집단이 공동의 문화적 전통과 언어 혹은 유산을 갖고 있는 집단, 인종 집단이 신체적 특성을 공유하는 집단, 그리고 종교 집단이 공통의 종교적 신조와 신념, 교의, 관습, 예배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을 뜻한다. 1946년 결의안에 있었던 ‘정치 집단’이 본 협약문에서 빠진 이유는 소련 대표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었다. 폴란드 등의 지지에 힘입은 소련은 ‘정치적 집단’이 항구성이 적고 가변성이 높다는 이유를 들어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당시 프랑스가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이 협약이 만들어지는 것을 경계하여 이에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향후 대량학살은 ‘정치적 이유’에 의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 더 적확한 예측이었다. 이로부터 50년이 지난 후 프랑스에서 발간된 <공산주의 흑서(黑書: Le liver noir de communisme)>가  프랑스 국립 학술연구 센터(CNRS: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의 연구부장인 쿠르뚜아(Stephane Courtois)의 주도 하에 총 11명의 전문 학자에 의해 만들어져 소련공산당 10월 혁명 80주년 기념일에 출간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구소련에서 2천만 명,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 치하에서 6천5백만 명, 베트남에서 1백만 명, 북한에서 2백만 명(3백만 명의 아사자 제외), 캄보디아의 폴 포트 정권 하에 2백만 명, 동구 공산정권 하에 1백만 명, 아프리카에서 1천 5백만 명 기타 등등 총계 1억 명을 학살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1948년 제정된 제노사이드 협약은 이후 1억의 공산주의로 인한 인류 대학살에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나쁜 의미로 스탈린은 선견지명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은 철저히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국제법의 소추를 피해나갔다.
    다시 말해서 무고한 사람들이 대량으로 학살되는 사건이 이 협약 체결 이후에도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이 협약은 무력했을 뿐이고, 공산주의 유산을 끌어안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도 제노사이드
    협약은 무력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6

  • ▲ 북한을 방문했다가 고문 받고 풀려난 로버트 박의 증언 [로버트 박의 목소리] 책 표지.
    ▲ 북한을 방문했다가 고문 받고 풀려난 로버트 박의 증언 [로버트 박의 목소리] 책 표지.

    어떤 의미에서 로버트 박의 주장은 그동안 공산주의 국가에 준 면죄부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도 보인다. 세계 제2차 대전 전승국들의 이 묵약은 위선이었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더욱이 북한 대량학살의 희생자들은 단지 하나의 ‘정치 집단’인 것일까? 고전적 의미에서 ‘정치범’은 몇이나 될까? 실제로 북한을 공산주의 국가로만 보려는 시각은 이제 점차 줄어들고 있다.7 로버트 박은 북한에서의 집단학살은 훨씬 더 정통적이고 고유한 제노사이드 범주와 일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쩌면 냉전이 지난 후에도 북한에 대해서 하나의 ‘정치 집단’적 성격으로만 국한해서 보려는 시도야 말로 북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유해한 것인지도 모른다. COI 보고서를 펴낸 후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커비 위원장은 “당시 자료를 수집할 때 독일의 유대인 대량학살이 생각났다”고 말한 바 있다.8 확실히 북한의 대량 인권 유린 현상은 정치적인 양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9

     북한사람들의 희생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길까

    유태인, 집시 등의 값비싼 희생의 대가로 제노사이드 협약을 얻은 것이라면, 이제 북한 주민들이 아무도 주목하지도 알아주지도 않는 사이, 대량으로 죽어간 대가는 무엇일까? 현재 진행형인 이 사태에 대해서 인류는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있으며 나아가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인간이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늘이 부여한 이른바 ‘천부인권’을 갖고 있다고 천명했다. 이 세계인권선언이 북한 사람들만 소외시킬 이유는 없는 것이었지만, 이 선언이 있은 해 탄생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곳은 왜 인권의 사각지대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일까?

  • ▲ 인권부재의 동토 북한에 들어가기 전 설교하는 로버트 박.
    ▲ 인권부재의 동토 북한에 들어가기 전 설교하는 로버트 박.

    성경책 한 권을 들고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어둠의 땅 북한으로 걸어 들어간
    로버트 박이라는 청년은 인류 전체의 수치이자 위선에 속하는 바로 이 난제를 온 몸으로 제기했다. 그의 지극한 사랑은 북한 주민들을 향한 ‘권리 선언’이었다.

    “책임 있는 정부들은 이 문제에 대해 완전히 침묵하고 있어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남한 정부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할 큰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외국정부들은 한반도 분단에 일정 역할을 했고,
    분단이 논의될 때에는 한국 사람의 의견은 묻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국가들은
    북한 사람들의 생명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습니다.

    이것은 범죄입니다. 아주 큰 범죄예요.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집단학살입니다.
    핵무기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정치범수용소를 운영하고, 어떠한 제재도 없이
    사람, 여성, 아이들을 마구 죽이는 국가는 결코
     신뢰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2009년 12월 23일 입북 전 서울에서 가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 ▲ 평양에서 성고문등 린치를 당한후 미국의 노력으로 석방된 로버트 박.
    ▲ 평양에서 성고문등 린치를 당한후 미국의 노력으로 석방된 로버트 박.

    지금도 북한에는 분명 ‘이름없는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나치에 의해 자행된 대량학살과도 유사하지만,
    길고 긴 시간에 걸쳐서 일어났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으며,
    더구나 타민족이 아니라 자민족에 의해 자민족에게 반하여 일어나는 집단학살이라는 점이 다르다.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 아래 인종주의적 색채를 나타낼 뿐 아니라 심각한 기독교 탄압을 통해 ‘인간신’과 그들의 신상을 숭배하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파괴하는 ‘제노사이드 이상의 제노사이드’에 대해서 국제사회가 좀 더 적절한 개념을 찾아내거나 적어도 제노사이드의 범주를 수정하여 북한의 인권 현상을 포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어야 할 시점이다.

    요컨대 제노사이드 협약의 보호집단의 범주를 확장하는 운동, 또는 ‘인간 신(神)’을 위해 다른 모든 인간의 영혼까지 말살하는 종류의 신종 대량학살에 대한 새로운 국제법 개념을 고안해 내는 시도를 해볼 만하다. 북한 사람들이 겪어온 고통의 값을 앞으로 온 인류의 미래 세대가 다시는 이와 유사한 상황을 맞는 일이 없도록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레짐이 나타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유태인 학살의 대가로 확립한 ‘인권’, 특히 ‘개인의 권리’라는 개념이 북한에서의 대량학살의 대가로 한 차원 높은 새로운 규범으로 탄생할 것을 기대한다.

    이 책의 편집이 끝날 무렵 좋은 소식 하나가 들려 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세계의 관심이 시들해질 즈음 ‘제노사이드’로 북한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신선한 경종이 울리고 있다”10 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COI 보고서에 대한 비평서로서 영국의 법률회사와 미국의 NGO가 공동으로 작업하여 펴낸
    보고서11 를 소개한 기사다. 이 보고서는 COI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반인도죄’에 한정한 것에
    대해 ‘제노사이드’ 개념 적용 가능성을 제기함으로써 의미 있는 비평을 가한다.
    이들의 문제제기가 국제인권법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이 문제에 대한 좀 더 심도 깊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느헤미야 성곽쌓기에 참여한 사람들처럼 부분 부분 함께 수고해 주신 분들, 특히 탈북인 여러분들과 어려운 작업을 도맡아 수 년의 수고를 아끼지 않은 편저자 박현아씨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로버트 박의 천로역정(天路歷程)이 북한의 자유와 해방을 향한 위대한 걸음이었음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데 이 책이 기여하게 될 것으로 믿어진다.
    무엇보다 그의 건강을 빈다.

  • ▲ 2007년 10월2일 북한을 방문한 노무현이 김정일과 밀담을 나누는 장면.
    ▲ 2007년 10월2일 북한을 방문한 노무현이 김정일과 밀담을 나누는 장면.

    <이하 주석> 
    1A/HRC/25/CRP.1,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COI Report”), paras. 1155-1159

     
    2 COI Report, para. 1157

     
    3 COI Report, para. 1159

     
    4 이 책의 제2부에 수록되는 2011년 9월의 설교 “너희는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되는 언론 기고문들에 로버트 박의 제노사이드에 대한 입장과 관점이 뚜렷하게 전개되어 있다.

     
    5필자는 앞서 1990년대 북한에서 일어난 대량 아사가 북한 정권에 의한 제노사이드임을 입증하는 시도를 한 바 있다. 김미영 차지윤, <북한정권의 대량학살범죄연구> http://chogabje.com/board/view.asp?C_IDX=50800&C_CC=BB 참고.

     
    6 국제사회는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권 블록이 무너진 이후 발칸 반도에서 일어난 인종 청소와 르완다에서 일어난 후투족과 투치족과의 내전으로 말미암은 대학살에는 특별법원을 설치하여 제노사이드로 소추함에 따라 제노사이드 협약은 새롭게 조명될 수 있었다. 이 개념으로 인권문제에 접근하는 것에 여전히 국제사회와 국제법은 매우 인색하지만 그만큼 중대한 의미를 띠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 책의 제1부 2장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7인권문제에 관한 사실조사 전문가 데이빗 호크씨가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의 의뢰로 2005년11월 작성한 보고서에 북한의 종교적 특성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David Hawk, “Thank you Father Kim Il Sung: Eyewitness Accounts of severe violations of freedom of thought, conscience, and religion in North Korea” http://www.davidrhawk.com/ThankYouFatherKimIlSung.pdf


    8 “북한인권 상황, 나치의 유대인 학살 수준”(미래한국, 2014.6.9), p.63.


    9 여기서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지만,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이 세계 10대 종교에 포함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미국의 종교관련 통계사이트인 ‘어드히런츠닷컴’(adherents.com)은 2007년 5월 7일 북한의 주체사상을 종교로 규정하고 추종자 규모에 있어서 세계 10대 종교에 해당된다는 통계 자료를 발표하면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종교로 분류하고 신도수가 1천 9백만인 세계 10위 규모의 종교라고 밝힌 바 있다.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0100&num=40934

     
    10 “As World Attention Fades, A Fresh Call for North Korea ‘Genocide’ Label”(June 18, 2014),

    http://blogs.wsj.com/korearealtime/2014/06/18/as-world-attention-fades-a-fresh-call-for-north-korea-genocide-label/


    11 Hogen Lovells, “Crimes against Humanity: An independent legal opinion on the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May 2014) pp.4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