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자 중앙일보 사설 "초소장들이 철책선에서 술판을 벌였다니"입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 달 전 비무장지대 내 육군 모 사단 초소(GP)에서 한 병사가 전우들이 자고 있는 생활관에 수류탄을 던진 사건이 벌어졌었다.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다른 사단의 GP장 등 간부들이 초소에서 수차례 술판을 벌였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어쩌다 우리 군의 기강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개탄스럽다.

    GP는 북한군 초소와 불과 수백m 떨어진 최일선 경계 부대다. 유사시 적의 공세를 1차적으로 방어해야 할 요충지다. 다른 어느 부대보다 엄정한 군기가 요구되는 곳이다. 눈을 시퍼렇게 뜨고 초긴장의 자세로 사주경계를 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선임병은 후임병을 괴롭혔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GP장의 기강 해이다. 수류탄 사건의 GP장은 사고 당일 경계병력을 일방적으로 줄였다. '경계의 실패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원칙을 어긴 것이다. 자기 GP에서 술을 마신 GP장은 무단으로 옆의 GP로 가 계속 술판을 벌였다. 만의 하나 북한군이 들이닥쳤다면 어쩔 뻔했나. 군기 확립의 대들보 격인 소위·중위들이 이렇게 흐물흐물해졌으니 말문이 막힌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취임 이후 '강한 군대'를 강조했다. 이 장관은 “부대는 오늘밤 당장 전투가 개시되더라도 승리할 수 있어야 하고, 군인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전문 싸움꾼이 돼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그러나 기강 풀린 철책선의 모습은 이 장관의 지시가 공허한 메아리로 그쳤음을 말해주고 있다.

    군은 소위 GP장이 문제를 일으키자 중위로 보임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번엔 중위가 사고를 쳤다. 단선적인 대안 말고 중장기 차원에서 초급장교들의 자질 향상책을 마련해야 한다. 임관 교육에 허점은 없는지 정밀 검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