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짓누르고 호시탐탐. 줄기차게 노린 기회, 야당 두손 들자 곧바로 나선 대권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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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외롭다.
    이제는 아무도 살펴봐주지 않는다.
    혼자다.
    최소한 2012년 12월 19일부터는 늘 그래왔다.

    또한 최소한 그는,
    2007년 대선에 나섰던 정동영과는 입장이 다르다.
    지는 싸움에 칼을 뽑고 나선 것도 아니였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을 망쳐버렸음을 억울해할 뿐이다.
    지지율 우위에 있던 안철수 후보를 끌어내리고,
    대권후보를 쟁취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결국 패배했다.

    대선패배후 민주당은 요동쳤고,
    새정치민주연합이 탄생했지만,
    정국상황은 꼬일대로 꼬여만 갔다.

    꼬여만가는 정국 한 복판에,
    그가 다시 나타났다.
    언론의 화련한 스폿 라이트를 받으며.

    문재인.
    광화문 광장서 단식으로 쓰러진 한 세월호 유가족 옆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 22일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투쟁을 하는 문재인 의원이 혼자 주변을 걷고 있다. ⓒ 정재훈 기자
    ▲ 22일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투쟁을 하는 문재인 의원이 혼자 주변을 걷고 있다. ⓒ 정재훈 기자

     

    #1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

    이길 줄 알았다.
    적어도 그날 점심시간쯤까지는 확신에 차 있었다.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
    나쁘지 않은 여론의 움직임.
    이대로만 간다면,
    그는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었다.

    오후 6시, 투표마감.
    하지만 개표과정에서
    문재인은 단 한번도 박 대통령에게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계속 밀렸고,
    결국 패배했다.

    충격에 빠졌다.
    그리곤 자택으로 숨었다.

    수많은 생각이 문재인의 머리 속에 스쳐갔을 것이다. 
    수만가지 이야기가 그의 귓속을 맴돌았을 시간이다.

    한 측근이 말한다.

    "이번이 끝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시 당내 비노계에게 대권을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
    '아차' 싶었다.
    이번에 진다고 다음 기회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거리로 나왔다.
    박근혜에 표를 던지지 않은,
    야권 지지 유권자들 앞에 섰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도 희망은 봤지 않습니까."

    이 말은 문재인이 2012년 12월 19일 대선 패배 후 처음으로 입밖에 낸 말이다.

    다시한번 기회를 달라는 말이었다.

    "세번째 민주 정부를 수립해서 새 정치-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역사 소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선거에서 받은 1천4백만표가 모두 자기들 것이라는 '착각'과
    그래도 '당권은 내 것'이란 마음을
    그대로 내비쳤다.

  • 단식 투쟁 중 휴대전화를 살펴보는 문재인 의원 ⓒ 정재훈 기자
    ▲ 단식 투쟁 중 휴대전화를 살펴보는 문재인 의원 ⓒ 정재훈 기자


    # 2014년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자신이 후보사퇴 시켰던 안철수가 당 공동대표가 됐다.

    지난 1년간 문재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이 정국을 거세게 몰아쳤지만,
    자신이 할 말은 없었다.

    2014년 6월.
    눈치없이 국정원 비판글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가차 없이 비난만 들었다.
    여권은 물론 야권 내에서도 "너무 빨리 나선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안철수가 당 대표로 나서며,
    당을 쥐락펴락할때도 아무 말도 못했다.
    사실 어떤 말을 하려고는 했지만,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문재인은 속에서 타오르는 천불을 식히며 기회만을 기다렸다. 


    #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그러다, 때가 왔다.
    문재인의 전문 분야가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를 치르면서 정치적 기반을 쌓은 그다.

    시쳇말로 '묘지기'

    생때같은 아이들을 수몰시킨 세월호 참사에 온 나라가 분노했다.
    이 파문은 석달 열흘을 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곳에 문재인이 나설 자리는 없었다.
    추락하던 야권 모두가 세월호에 목을 매다보니,
    이미 한물간 그가 나설 수 있는 찬스가 쉽게 나지 않았다.

    안철수고 김한길이고 박영선이고,
    너나 할 것없이 세월호를 들먹였다.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야권 모두가 참사가 박근혜 대통령 책임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러니,
    아무도 문재인의 입을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 2014년 8월 19일, 드디어 내가 나선다


    안철수가 6월 총선과 7월 재보선에서 연이어 패배했다.
    당이 사지로 내몰리고,
    박영선 비상체제가 구성됐다.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내세웠고,
    교황도 그냥 그렇게 다녀갔다.
    세월호 여파도 식어가고,
    국민 반응도 염증을 내기 시작했다.

    기회가 온 것이다.

    그는 갑자기 단식을 하겠다며 나섰다.
    기자회견을 하기도 멋쩍었기에,
    그냥 문자 한통 여기저기 돌리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 문재인 의원이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의 단식을 대신하겠다며 기자들에게 돌린 문자 메시지 ⓒ 캡쳐화면
    ▲ 문재인 의원이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의 단식을 대신하겠다며 기자들에게 돌린 문자 메시지 ⓒ 캡쳐화면

    그에게는 기회였다.
    한번 해봤던거라 더 자신있었다.

    야당이 스스로 폐족이라 일컬으며 친노라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시절.
    묵묵히 노무현 한 사람만 지켰던 그가,
    어느날 제1야당 대권주자로 떠올랐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도 문재인은 광화문에 혼자 있다.

    문재인 혼자 나선 그런 모습이 꼴사나웠던지,
    당권을 쥔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김영오 씨를 찾았다.

    철저히 병풍.
    어디 서 있어야 할지도 몰라 멀뚱거리며,
    카메라 기자의 앵글 안에 들어오려는 모습.

     

  • 지난 20일 김영오 씨를 만나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과 이를 바라보는 문재인 의원 ⓒ 연합뉴스
    ▲ 지난 20일 김영오 씨를 만나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과 이를 바라보는 문재인 의원 ⓒ 연합뉴스

     

    # 2014년 8월 22일, 김영오 단식 중 병원行

    그래도 이제는 그는 외롭지 않다.
    함께 할 사람이 있다. 이제는.

    40일 단식 끝에 병원으로 실려간 김영오 씨.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유민이 아빠다.

    그 곳에 문재인 의원은 서 있다.
    야당도 여론도 이제는 돌아섰지만,
    그에게는 기회다.

    그래서 서 있다.
    한 기자가 물었다.

    "문재인 의원이 박영선 원내대표를 도와야 하지 않느냐"고.

    문재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저는 열심히 돕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돌려 문재인이 정권의 중심에 있던 때를 살펴보자.

    2004년 8월.
    문재인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당시.

    경부고속철 천성산 터널 문제로 지율 스님이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에 나섰다.
    문재인 수석은 여러차례 지율 스님을 찾아가 단식 중단을 설득했다.

    하지만 지금의 문재인은, 
    세월호 떼법을 통과시켜달라는 김영오 씨를 말리기는 커녕 
    숟가락을 올리며 자신의 얼굴을 내비치기 바쁜 사람일 뿐이다.
     

  • 2004년 8월 문재인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경남 양산 천성산을 관통하는 터널 공사 중지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이던 지율 스님(오른쪽)을 만나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2014년 문재인 의원은 단식 농성하는 김영오 씨에게는 함께 단식 투쟁을 하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 사진=조선닷컴
    ▲ 2004년 8월 문재인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경남 양산 천성산을 관통하는 터널 공사 중지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이던 지율 스님(오른쪽)을 만나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2014년 문재인 의원은 단식 농성하는 김영오 씨에게는 함께 단식 투쟁을 하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 사진=조선닷컴

    그랬다.

    그는 지금,
    야당이 다시 지지율을 회복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을
    그닥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다시 자신이 허물어진 야당의 대주주로 올라서는게
    더 중요해 보이는 듯했다.

    겨우 20% 지지율 가진 야당이다.
    그 중에서도 소수 강경파들의 마음을 얻고 싶어
    안달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문재인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소수 강경파,
    더 나아가 종북세력 대변인을 자처한 것이
    진짜 패배 이유라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 후보였고,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며,
    변호사인 그가,
    이제는 유족회 대변인을 자처하며
    광화문 광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문재인의 활동구역은,
    점점 좁디좁은 곳으로 좁아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