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오후 2시 반, 서울중앙지법 서관 2층 현관 앞이 무척 부산하다. 방송용 ENG카메라를 든 카메라맨부터 수첩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취재기자까지 다양한 매체의 기자들이 한데 뒤섞여 있는 모습이다. 이들이 오랜만에 법정 앞에 집결한 이유는 졸피뎀 오남용 혐의로 기소된 방송인 에이미가 출두하는 날이기 때문.

    이날 서관 523호 법정에선 에이미의 두 번째 공판이 예고 돼 있었다.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에이미는 복용 사실은 인정하나 받은 경위에 대해선 검찰과 약간의 이견차를 보이고 있는 상태. 따라서 이날 에이미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변호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었다.

    오후 3시가 임박해 에이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단발 머리에 알 없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에이미는 베이지색 후드 코트를 걸치고 변호인과 함께 법정 로비에 들어섰다.

    코트에 달린 모자로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린 상태였지만 대번에 에이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지고 현재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에이미는 묵묵부답, 입을 꼭 다문 채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로비에서 만난 에이미는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이었다. 지인들과 함께 뭔가를 논의하며 자신의 공판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3시가 좀 넘어서야 앞서 진행된 재판이 모두 마무리됐다.

    판사의 호출로 복도에서 대기 중이던 에이미가 법정 안으로 들어오고, 푸른 수의를 입은 권모(36·여)씨도 손에 묶인 포승줄을 풀고 피고인석에 앉았다.

    이날 재판에선 앞선 공판에서 에이미 측이 "졸피뎀을 먼저 나서서 구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한 사실 여부를 가리는 것이 관건이었다.

    증인 자격으로 법정에 출석한 권씨는 총 4회에 걸쳐 에이미에게 졸피뎀 85정을 건넨 혐의 사실을 모두 시인했다. 당초 다수의 언론은 에이미가 서울 서부보호관찰소에서 만난 권씨로부터 총 135정의 졸피뎀을 받았다고 기술했으나, 이날 공판에서 드러난 (무상 교부된)졸피뎀 개수는 기사에서 언급된 수치와 큰 차이를 보였다.

    권씨는 먼저 보호관찰소에서 에이미에게 각각 30정씩 2회에 걸쳐 졸피뎀을 교부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에이미의 전화 요청을 받고, 에이미가 자신의 사무실로 보낸 퀵서비스 기사를 통해 각각 15정과 10정을 건넸다고 밝혔다. 도합 85정을 4번에 나누어 에이미에게 교부한 셈.

    또한 이날 심문 과정에서 에이미가 건네받은 향정의약품의 상표명이, 졸피뎀이 아닌 '스틸녹스'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스틸녹스는 일종의 신경안정제로 졸피뎀 성분의 향정신성의약품이다.

    권씨는 2013년 9월 26일 향정인 스틸녹스를 불법 오남용하고 사문서(처방전)를 위조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에 몇 달 간 서울 서부보호관찰소에서 법원이 명령한 약물치료교육을 받아왔다. 에이미를 만나게 된 것도 함께 약물치료교육을 받다 친분을 맺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 기간 중 에이미와 안면을 트고 인사를 나누던 중, 자신이 스틸녹스를 과다 복용한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는 얘기를 꺼내면서 에이미와 묘한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에이미의 변호인은 증인 심문에서 "1,2회 때 받은 스틸녹스 60정은 남자친구인 전OO 검사의 꾸지람으로 쓰레기통에 버렸고, 나중 3,4회 때 받은 스틸녹스 중 일부를 복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권씨는 "2013년 12월 초 에이미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청소부 아줌마가 언니(권씨)가 준 약을 버렸다'며 '다시 약을 교부해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고 실토했다. "남자친구의 권유로 약을 버렸다"는 변호인 측의 주장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이날 피고인과 증인 자격으로 법정에 선 두 사람은 '스틸녹스'라는 향정의약품을 무단 남용했다는 혐의 외에도 불면증과 우울증이라는 공통된 질환을 않고 있었다.

    심리를 진행한 정은영 부장판사는 이같은 피고인들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듯, 첫 질문은 모두 두 사람의 '수면 상태'를 묻는 것으로 했다.

    푸른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선 권씨는 에이미보다 상태가 더욱 안좋아 보였다. 아직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인데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이는 말투로 답변을 이어가는 모습은 여전히 그녀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음을 방증했다. 반면 에이미는 목소리는 작아도 비교적 또렷한 태도로 재판에 임해 대조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