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박봄 암페타민 밀반입사건, 김 검사가 '입건유예' 전결 처리'검사 구속한 검사'로 이름 날리던 김수창, 여고생 신고 한 건으로 나락


  • 현직 검사가 으슥한 골목길에서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희대의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문제의 검사가 오래 전 '박봄 마약 밀수 사건'을 무마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져 또 한 번 충격을 주고 있다.

    ◆ 가수 박봄, 4년 전 향정 암페타민 밀반입 적발


    유명 걸그룹 '2NE1'의 인기 멤버 박봄은 지난 2010년 10월 12일 국제 특송우편을 통해 향정신성의약품인 암페타민 82정을 미국에서 밀수입한 사실로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검찰은 해당 사건을 정식 내사 사건으로 접수하고 10월 19일 형사사법망에 혐의 내역을 올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사건은 추가 조사로 이어지지 않은 채 11월 30일 '입건 유예' 처리됐다.

    '입건 유예'란 범죄 혐의는 분명하나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내사 사건 처리 절차 중 하나다. 따라서 박봄의 '마약 밀수 사건'은 내사 착수 한 달 반 만에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박봄의 마약 밀수 사건을 입건 유예처리한 실무자는 인천지검 소속 신OO(42) 주임검사. 그러나 '입건유예 결정'을 주임검사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상식'이라는 게 검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인천지검 소속 2차장검사가 '박봄 마약 밀수 사건'을 입건유예로 '전결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결 처리'란 지검장을 대신해 사건 처리를 하는 것으로 지검장이 직접 서명하는 것과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

    일단 검찰에 사건이 접수되면 검찰청의 장 또는 그 지명을 받은 검사가 주임검사를 배당하고 수사 지휘를 맡기게 된다. 그러나 의사 결정 권한은 주임검사가 아닌 차장검사 이상의 상급자에게 있다는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주임검사인 신OO 검사에게 '수사 의지'가 있었다하더라도 상급자인 2차장검사가 '수사 중지' 명령을 내리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한다는 게 검찰 소식통의 주장.

    당시 인천지검 2차장검사는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52·사법연수원 19기)이었다. 김 전 제주지검장은 지난해 12월 제주지검장으로 취임했다 이번 '음란행위 사건'에 휘말려 지난 18일 면직됐다.

    ◆ '10억 수뢰검사 사건'으로 스타덤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김 전 제주지검장의 전력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대검찰정 감찰1과 과장. 대구지검 포항지청장,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등을 역임한 김 전 제주지검장은 지난해 12월 제주지검장으로 발령받았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지낼 당시 이른바 '10억 수뢰검사' 사건의 특임검사로 임명된 김 전 제주지검장은 유진그룹과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측근으로부터 10억여 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로 김광준(53) 당시 서울고검 부장검사를 구속 기소해 화제를 모았었다.

    당시 김 전 제주지검장은 "검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성과 권한 등을 고려,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기소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가 '검사를 구속한 검사'로 이름을 날리게 된 순간이었다.

    이 사건을 발판으로 김 전 제주지검장은 이듬해 검사장급인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승진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당시 김 전 제주지검장을 두고 내부적으로는 "진지하고 합리적인 성품에 부드러운 리더십을 지닌 인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음란행위 사건' 하나로 모든 게 무너졌다. 검찰 안팎으로 '존경의 대상'이었던 그는 지난 13일 한 여고생의 신고 이후 졸지에 미성년자를 성희롱한 파렴치범으로 몰리는 형국이다.

    ◆ "중년 남성이 바지 지퍼 내리고 음란행위" 신고

    지난 13일 오전 0시 35분경 한 여고생이 "(제주시 중앙로에 있는 한 분식점 앞에서)한 남성이 바지 지퍼를 내린 채 음란행위를 하고 있다"고 신고해 경찰이 출동했다. 10분 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분식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순찰차가 들어오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중년 남성을 체포했다.

    이 남성은 끝끝내 자신이 제주지검장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귀가했다.

    경찰 초동 조사 당시 '동생 이름'을 대며 자신을 속인 김 전 제주지검장은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들통나자 "사실 관계와 관계없이 신분이 노출되면 망신을 당할 수 있어 밝히지 않았다"는 이해하기 힘든 해명을 내놨다.

    그는 17일 서울고검 기자실에 찾아와선 "산책할 당시 자신과 옷차림이 비슷한 남성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자신으로 오인한 것이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봉변을 당했다"는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망은 날이 갈수록 '김수창' 한 사람에게로 좁혀지는 모습. 제주지방경찰청은 "당시 현장을 찍은 폐쇄회로(CC) TV 영상에는 남성 1명만 담겨 있었다"며 "김 전 제주지검장의 주장과는 달리 피의자로 지목할 만한 다른 남성은 없었다"고 밝혔다. 화면에 등장하는 남성이 김 전 제주지검장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소견이다.

    경찰은 여고생 제보를 토대로 음란행위를 한 남성의 인상착의와 당시 김 전 제주지검장의 모습이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해당 CCTV에는 음란행위로 규정할 수 있는 영상까지 찍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확보한 영상 속에는 제주소방서 인근 분식집 근처에서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던 남성이 다른 한 손으로 바지 지퍼 부분을 툭툭 터는 듯한 동작을 반복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때 바지 지퍼는 열린 상태였다. 현재 경찰은 이 행동이 소변을 본 뒤의 행동인지, 아니면 음란행위를 하는 장면인지를 놓고 분석 중이다.

    ◆ 당시 인천지검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다시 박봄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박봄은 4년 전 마약류로 지정된 암페타민 82정을 '젤리 과자'로 위장해 국내로 밀반입한 혐의를 받았다. 배송지를 친인척이 사는 곳으로 적어 신분 노출을 피하는 지능적인 모습도 보였다. 마약 밀반입 사건은 사실 여부를 떠나 혐의점만 포착되면 구속 수사하는 게 원칙이다. 인천지검은 박봄 사건이 발생하기 전, 암페타민 29정을 밀수한 혐의로 적발된 삼성전자 직원 A(36)씨에 대해선 관례대로 구속 수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A씨를 구속 기소한 것도 '차장 전결'로 처리됐다. 하지만 박봄은 예외였다.

    ▲'치료 목적으로 미국에서 처방 받았다'는 약을 굳이 '젤리' 속에 숨겨 들여오고, ▲문제의 소포를 인천에 거주하는 박봄의 외할머니가 최초 수령한 뒤 서울의 어머니를 거쳐 합정동 2NE1 숙소로 보냈다는 사실은 △'밀반입 사실'을 감추고 △'실제 수취인'을 감추기 위한 '위장'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같은 정황 증거에도 불구, 이 사건은 '입건 유예'라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말았다.

    '전결 처리'란 지검장의 결재 권한을 대신 행사하는 것. 당시 인천지검장은 '별장 성접대' 사건에 연루됐다 무혐의 처분을 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