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이 쓴 '대한민국 선생님 전 상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한민국 선생님들 보세요. 고생 많으시지요. 요 며칠 신문에서 읽은 기사들이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고 성깁니다. 그 설핀 조각들을 맞춰보고자 쓰는 글이니 언짢은 부분이 있더라도 노여워 마시고 읽어주십시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쓴 책을 소개하는 기사가 있었지요. 가슴 아팠더랬습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기에 빼앗았더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더라지요. 그러고는 무슨 뜻인지 알고나 했는지 칠판에 답 대신 ‘Fuck you’라고 쓰더라지요. 저 같으면 귀싸대기를 올려붙였을 텐데 잘 참으셨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초등학교니까 그 정도지 중·고등학교는 훨씬 더 심할 테지요.

    교사의 권위가 바닥에 붙은 껌 딱지만도 못한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그 선생님은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체벌이 필요하다고 하셨더군요. 동의합니다. 아까 말한 귀싸대기는 곤란하겠지만 회초리 정도는 불가피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집에서 하던 외동아들 망나니짓이 단체생활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알려줘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체벌로써 교사의 권위를 세울 수 있다는 믿음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겠지요. 권위가 있는 체벌만이 교육적 효과가 있을 거란 말입니다. 권위 없는 체벌은 반항을 낳을 뿐이지요.

    그렇다면 교사의 권위가 왜 떨어졌는지 생각해볼 차례입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가슴 아픈 기사가 있었습니다. 부인과 아들 세 명을 모두 필리핀에 유학 보낸 냉동기기 수리공 아빠가 폭발 사고로 숨졌습니다. 어렵게 번 돈을 모두 송금하고 자신은 고시원과 여관방을 전전했었다지요.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납니다.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요.

    왜 그는 그토록 무리해 가면서 기러기 아빠가 됐을까요. 이 나라 교육을 못 믿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 기러기는 아니더라도 이 나라 학부모들이 국가 예산의 10%가 넘는 돈을 사교육비에 쏟아붓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노후 대비를 포기하면서까지 말입니다. 이 나라 공교육이 무너진 때문 아닙니까. 껍데기뿐인 공교육 현장…. 권위가 남아있을 리 없지요.

    외람되지만 제가 평소에 정말 궁금하던 게 있습니다. 공교육이 붕괴됐다는 말을 들을 때 선생님들은 기분이 어떠신지요. 학교에서 좀비처럼 앉아있다 종치자마자 학원으로 달려가는 학생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요. 부끄럽지 않으신가요. 이래선 안 되고 바꾸기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으시나요.

    무너진 공교육이 선생님 탓이라는 게 아닙니다. 많은 선생님이 다시 일으켜 세우려 노력과 절망을 번갈아 하고 계신 것도 압니다. 이런 현실에 구원의 빛이 되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타임지가 표지모델로 썼던 미셸 리의 교육개혁 얘깁니다. 무능한 교사를 퇴출시키고 성취도가 낮은 학교를 폐교시켰습니다. 대신 열심히 하는 교사의 연봉은 두 배로 올려주기로 했다죠. 이 땅에서도 당장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교원평가가 거부되고 차등성과급이 사이 좋게 나눠지고 있는 우리네 공교육 현장에 말입니다. 그건 전교조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얼마나 많은 선생님이 ‘아이에게는 도움이 안 되고 어른만을 위한’ 과실을 즐겼습니까.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꺼냈다 곤욕을 치렀던 ‘인기 배우자감 여교사’ 농담은 남들 다 아는 썰렁한 얘기가 된 지 오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선생님들이 달라져야 우리 교육이 삽니다. 왜 아이들을 학원에 맡기십니까. 학교에선 왜 못 가르칩니까. 올해 수학 가르치고 내년엔 영어 가르치는 거 아니잖아요. 학원에 가야 할 건 학생들이 아니라 선생님들입니다. 학원만 못하다면 학원에 가서라도 배워와야죠. 그래서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보너스도 많이 받으셔야죠. 그건 경쟁이 아닙니다. 사명이요, 책임입니다. 혼자 힘으로 되겠나 미리 포기하지 마세요. 너와 내가 우리가 되고, 모두가 됩니다. 또 1000만 학생과 학부모들이 응원할 겁니다. 건승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