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선거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신념"이라며 정계 은퇴의 이유 밝혀새정치민주연합에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혁신하는 자세 가져라" 주문
  •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3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손 고문은 이 자리에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3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손 고문은 이 자리에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종현 기자

    7·30 경기 수원병 보궐선거에서 낙선한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31일 오후 4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손학규 고문은 이날 가까운 의원들과의 오찬 회동에서 처음 이같은 뜻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고문은 이 자리에서 "이제 정치는 그만하겠다"며 "다른 방법으로 국가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손학규 고문의 전격적인 정계은퇴는 야권이 15곳 중 불과 4곳에서만 당선자를 배출한 재·보궐선거 완패의 후폭풍이라 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오전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를 비롯 최고위원들이 총사퇴한데 이어 오후에는 잠재적인 대권 주자가 정계를 은퇴하는 등 연이은 충격에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회색 양복에 푸른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한 손학규 고문은 "정치인은 선거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오랜 신념"이라며 "이번 7·30 (보궐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뜻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손학규 고문은 "1993년 정치에 입문한 이래 분에 넘치는 국민의 사랑과 기대를 받았다"고 회상하며 자신의 정치 인생의 큰 변곡점이었던 2007년 한나라당 탈당에 대해 "시베리아로 나선 이래 민주당과 함께 한 정치역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지만 보람 있는 여정이었다"고 말했다.

    손학규 고문은 특히 "지금은 내가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 생각한다"는 부분을 두 번 반복해 말하며 강조하기도 했다.

    손학규 고문은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드린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저녁이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고 노력하겠다"고 정치인으로서 국민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손학규 고문은 이번 재·보궐선거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이 자리에서는 나 자신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다"며 "내가 부족해서,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해 패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중진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통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손학규 고문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수원 팔달에서 패배한 것은 나 자신의 패배이기도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새정치민주연합에 거는 기대와 신망이 충분치 못하다는 생각"이라며 "새정치민주연합부터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혁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해 새정치연합이 구태정치의 행태를 보였던 것이 이번 재·보궐선거 패배의 원인이라고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손학규 고문은 이후 활동에 대해서는 "정치가 아니더라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우리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얼마든지 있다"며 "자유로운 시민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므로 어딘가에 나를 묶으려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명확한 언급을 회피했다.

  •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31일 오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손 고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종현 기자
    ▲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31일 오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손 고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종현 기자

    손학규 고문은 1947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있던 중 1993년 지금의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같은 해 경기 광명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손학규 고문은 이후 같은 지역에서 16대 총선까지 내리 3선을 했다. 2002년에는 민선 3기 경기도지사로 당선됐다.

    정계 입문 후 탄탄대로를 걷던 손학규 고문의 불행은 대권에 대한 욕심으로 정도(正道)로부터 벗어나면서 시작됐다. 한나라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으로 압축돼 가던 2007년, 손학규 고문은 한나라당을 탈당해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직을 노린 행보였지만, 정동영 상임고문에게 경선에서 패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당적 이탈' '정치 철새'라는 붉은 줄만 이력에 남게 됐다.

    손학규 고문은 2011년 경기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 '천당 아래 분당'이라 불릴 정도로 여권 강세 지역에서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를 꺾고 당선되며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손학규 고문은 이듬해인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했으나 문재인 의원에게 패배하며 다시금 대통령의 꿈을 접어야 했다.

    다시 한 번 사지(死地)에서의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적 재기를 노린 손학규 고문은 이번 7·30 재·보궐선거에서 수원병에 출마했으나 '정치 신인'인 김용남 당선자에게 완패했다. '후보 주고받기식 밀실 야합(野合)'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의당 이정미 후보가 사퇴하기까지 했으나 김용남 당선자와 7.8%p라는 큰 격차가 났다.

    결국 '정치 신인'과의 선거에서 완패하며 큰 내상을 입은 손학규 고문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선거운동기간 동안 "수원정은 내 정치 인생의 마지막 지역구가 될 것"이라는 호소가 다른 의미에서 현실화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