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을 한국에 넘기지 않으려는 미국의 음모에 분노

    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와 李承晩 ⑬

    李東馥   
     
    <1950년10월18일> 

    동해안에서 북진중인 우리 애들은 원산, 영흥, 함흥을 유엔군에 앞서서 해방시켰고
    또 백선엽(白善燁) 장군이 지휘하는 1사단과 유재흥(劉載興) 장군 휘하의 우리 애들이
    유엔군보다 먼저 평양에 입성할 것이라고 정일권 참모총장이 밤늦게 보고해 왔다.

    게이(Hobart R. Gay) 장군이 지휘하는 미 제1기병사단에 비해 우리 제1사단은 차량이나 장비가 엄청나게 불리한 여건 하에서도 출발도 늦었었다고 한다. 美 제1기병사단은 차량만도 1천 대 이상을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 애들은 겨우 50대 밖에 안 된다고 대통령이 염려했었다.
    그러나 우리 애들은 굳센 의지와 각오로 비를 맞으며 밤낮으로 산길을 행군하여
    미군의 탱크와 차량을 앞지르게 된 것이라고 대통령이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 ▲ 이승만 대통령은 정일권 장군에게 "미군보다 먼저 38선을 돌파하라"고 지시하했다.
    ▲ 이승만 대통령은 정일권 장군에게 "미군보다 먼저 38선을 돌파하라"고 지시하했다.
    <10월19일> 

    자랑스런 우리 애들이 드디어 미군보다 앞서서 평양에 입성했다고
    신성모 국방장관과 정일권 참모총장이 보고해 왔다.
    대통령이 “됐어, 됐어” 하면서 저토록 기뻐하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다.
    대통령은 빠른 시일 안에 평양을 방문하여 직접 평양 시민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겠다고 말했다.

     오늘은 온통 축제 분위기다. 엊저녁부터 계속 타이프를 쳤더니 손끝이 화끈거린다.  

    저녁에는 무쵸 대사 축하만찬과 함께 평양입성 축하까지 겹쳐서 기쁨이 넘치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도 시종 무쵸 대사와 다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다만 워커 장군이 샐러리와 당근 곁에 있는 조그만 유리그릇에 담아 놓은 초고추장에 야채를 찍어먹고 매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마요네즈 소스를 곁들여 놓았는데도 대통령과 무쵸 대사가 찍어먹는 것을 보고 워커 장군도 아마도 토마토 케첩으로 알고 찍어 먹고 저토록 혼이 나는 모양이다.  

    평양 입성 전투에서 미군은 3명의 경상자밖에 나지 않았지만 우리 애들은 39명이 전사하고 70명이 부상했다고 한다. 적은 3,695명이 죽고 2,048명이 포로로 잡혔다고 丁 참모총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올리버 박사에게 보낼 대통령의 편지를 밤늦게까지 타이핑을 했더니 몹시 피곤하다.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KURK)은 우리나라가 敵의 점령 하에서 고초를 겪으면서도
    민주국가로서 얼마나 훌륭하게 대처했는가에 관하여 매우 유리한 보고서를 총회에 제출했다.
    위원단은 대한민국이 전시(戰時)의 긴장상태에도 불구하고 매우 훌륭하게 대처했다고 보고했다. 정부 기능은 여러 가지의 애로, 혼란, 그리고 위험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았다.
    각 지방이 해방됨에 따라 민간행정은 단시일 안에 다시 회복되었다.
    국회는 아직 미숙하고 때로는 책임감을 덜 느끼고 있지만 긍정적인 활동을 유지했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였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대부분의 우리 공무원들은 박봉과 함께 온갖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자기들의 임무를 수행해 왔다. 대통령은 유엔에 의하여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된 독립국가의 국가원수로서 필요한 자유재량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 정부가 해방지역을 인수한다는 것은 당연하며 이미 임명해 놓은 5명의 도지사들이 민간행정을 개시하여 임무를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뒷날 북한 주민들이 자기들 의사로 도지사를 선출할 때까지 행정의 공백상태를 방치해 두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통치를 남한에 국한시키고 공산당에 의해 통제되는 북한의 모든 단체조직을 존속시키라는 유엔임시위원단의 발표는 북한 주민 모두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만들 것인지 회의를 느끼게 한다.  

    공산당이 존재하는 곳에는 평화가 존재할 수 없으며 아무런 해결 없이 세월만 허송하게 될 것임을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미 군사당국의 법령에 따라 정부를 담당하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무쵸 대사와 미국측은 대통령에게 이 문제에 관하여 입을 다물고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은 자기가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미국이 무슨 짓을 할 것인지를 불안하게 생각한다.

    美 대사관측에서는 틀림없이 국내 언론을 조작하고 이 문제에 관한
    진실을 왜곡시키는 공작을 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 국민들에게는 세계大戰을 회피해야 한다는 것 이상으로 호소력이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 국민들은 자신들이 여러 가지를 대가로 지불하면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전쟁은 연기되는 것이지 회피될 수 없다는 사실에도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소련은 언제든지 준비만 되면 밀고 내려 올 것이고 그들의 외교정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세밀하게 계획되고 준비되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한국인과 미국인의 피를 대가로 지불한 한반도를 또 다시 소련에 팔아넘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은 美 국무성의 정책담당자들이 지금 바로 그와 같은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李承晩의 영향력을 몰아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유엔의 미국 대표 오스틴(Warren R. Austin)과 국무성 사람들은 지금 “인기가 없는 대한민국
    정부로 하여금 북한 주민을 강제로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美 국민들 설득하려
    하고 있다.  

    대통령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온 국민이 피를 흘리며 귀중한 생명과 모든 것을 바쳐온 이유는 오직 이 나라의 자유 민주통일을 위해서였던 것임을 우리의 모든 국민이 잘 안다.
    대통령은 고난의 역사는 우리 당대(當代)에서 겪어내고 후손들이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일념으로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내할 각오를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통일을 성취시키지 못하면 장래 우리 민족이 겪게 될 더 큰 비극과 희생을 누가 막아 줄 것인가? 

    이제 대통령은 몹시 화를 잘 내는 고집 센 동맹자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부패하고 돈 많은 사람이라고 거짓 소문을 퍼뜨려 고의적으로 대통령의 이미지를 훼손시키는 공작도 서슴치 않고 있다.
    미국은 온갖 방법과 수단을 총동원하여 한국 통일을 염원하는 대통령을 뒤에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대통령을 통일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야심가로 비꼬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가 힘을 길러서 우리 힘으로 똑바로 설 때까지 우리는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극복해
    내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지론이다. 그러나 계획적으로 반복하여 들려주는 단순한 말들이 어느 사이에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만큼 다수의 선량한 미국 국민들이 대통령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대통령의 진면모(眞面貌)에 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역사가 증명해 줄 때까지 우방과 친우들이 씌워주는 모욕과 누명을 참고 견디면서 약소민족 지도자의 십자가을 짊어지고 국토통일을 위하여 全力을 다해야 하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다짐이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 편에 계실 것이며, 우리 국민은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헛소문에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은 私心없이 대통령과 뜻을 함께 하는 우리 국민들의 지혜롭고 현명한 판단이 이 어려운 시기에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민족의 역사와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데 힘이 되어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소련에 대한 애치슨 미 국무장관의 태도가 대강 알려졌기 때문에 우리는 조만간 對蘇 유화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교체되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마샬(George C. Marshall)이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샬은 중공의 겉만 보고 쟝제스(蔣介石) 총통에게 강제로 국공합작(國共合作)의 연립정부를 세우도록 압력을 가하여 중국본토를 공산화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10월20일> 
  • ▲ 장면 주미대사(1950)
    ▲ 장면 주미대사(1950)
    워싱턴 정가(政街)에서는 경제협조처 대충자금의 5% 정도를
    軍 장비 구입에 자유재량으로 사용하도록 허용할 것을 주장한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은 그 돈으로 일본 대신 우리가 직접 탄약과 무기 같은 것을 만들어 쓰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미국에서는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한국인 그룹’이라는 이름의 단체가 막대한 돈을 뿌리며 유엔 대표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권한을 북한지역까지 확대시켜서는 안 된다”는 설득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도 장면(張勉) 주미 대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대통령은 주미 한국 대사가 유엔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른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뺨을 호되게 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미국에 있는 우리 대사는 ‘바쁘다’라고만 하면 만사가 해결될 것으로 믿는 모양”이라고 한탄했다.  

    경무대의 시인 김광섭 비서가 전쟁 전에 월북한 그의 문인 친우 이태준(李泰俊)을 구출하기 위하여 평양을 다녀 오겠다고 대통령의 허락을 받으러 왔다. 그러지 않아도 경무대의 일손은 달리고 할 일은 태산 같은데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친구를 구하러 평양으로 가겠다는 金 비서의 배짱이 부럽다.

     <10월23일> 

    며칠 동안 몹시 피로하고 목이 아파서 일기는 못 쓰고 급한 편지만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타이핑했다. 평양을 다녀온 백낙준(白樂濬) 문교부장관, 이윤영(李允榮) 사회부장관 및 김활란(金活蘭) 공보처장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대통령이 염려했던대로 미국인과 유엔에 대한 그곳 사람들의 불신감과 의심이 대단했다고 보고했다. 백선엽 장군의 안내를 받으며 몇몇 미국 신문기자들과 함께 다녔는데 그곳 사람들이 “누가 당신들을 이곳에 보냈오?” 하고 묻더라는 것이었다. 백 장군이 “평양은 내가 태어난 고향이고 우리는 지금 내 고향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싸우고 있다”면서 “이분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보내서 온 사람들”이라고 대답하니까 이들은 공산당이 “한반도를 집어삼키려는 외국인들이 곧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고 선전했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의심을 품고 있다”면서 “미국 사람들이 아니라 어째서 대통령이 오지 않느냐”고 묻더라는 것이었다.  
  • ▲ 경무대(대통령관저) 뒷산에서 장작을 패는 것으로 분노를 달래곤 했던 이승만 대통령.
    ▲ 경무대(대통령관저) 뒷산에서 장작을 패는 것으로 분노를 달래곤 했던 이승만 대통령.
    <10월24일> 

    평양으로 파견한 200명의 우리 경찰 병력이 해주(海州)에서 미 제24사단에 의하여 정지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대통령은 안면신경을 움직이면서 손을 후후 불었다. 대통령은 “그자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그따위 짓을 한다는 말이냐... 탯덩이 녀석을 기어이 정신 차리도록 해주어야 하겠어”라고 흥분했다. 대통령은 미 제24사단장 처치 장군을 늘 ‘탯덩이 녀석’이라고 부르며 항상 못마땅해 했는데 이번 우리 경찰병력의 평양행을 정지시킨 곳이 바로 제24사단이 관할하는 미군 지역이었다. 우리는 워커 장군에게 항의하려고 했지만 그는 오늘 아침 일본에 가고 없었다. 대통령은 뒤뜰로 나가서 한참동안 장작을 패며 분을 가라앉혔다.  

    어느 정도 진정한 대통령이 무쵸 대사를 불렀다.
    대통령은 처음에는 무쵸에게 “미국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한국인이 들어 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대통령을 그런 다음 “북한 주민들이 요청해서 파견한 경찰을 처치 장군이 막았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이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이 같은 사실을 즉각 워커 장군과 맥아더 장군에게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무쵸 대사는 “처치 장군이 우리 경찰의 평양行을 저지시킨 데는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이 나라 안에서 우리에게 어디로 가라, 어디로는 가지 말라고 명령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누구이냐”고 화를 내면서 언성을 높였다.
    대사는 나에게 도와주었으면 하는 눈치였으나 나도 차갑게 외면해 버렸다. 
    (고딕체는 편집자의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