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의 가치에는 국적이 없습니다

    조광동 /재미 언론인
  • 유크라인(Ukraine, 우크라이나) 분리주의자들이
    말레지아 여객기를 미사일로 격추시킨 일로
     러시아가 세계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특히 러시아의 블라디미어 푸틴 대통령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조지아를 침공한데 이어 지난 봄,
    유크라인 영토 크라이미아(Crimea, 크림)를 침공해서
    자기네 땅으로 만든 침략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크라인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해서 유크라인 영토를 분할시키는 음모의 배후가 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30년 전 소련 사할린 영공을 비행한 대한항공 여객기를 무자비하게 격추시켜
    무고한 생명을 잃게 해 세계의 분노를 일으킨 전례가 있습니다.
    이번에 말레지아 항공기를 격추시킨 사건은 러시아와 러시아의 그늘에서 새로운 국가를 획책하는 분리주의자들의 비인간성과 도덕 불감증을 다시 입증시켜 주는 사건입니다. 

    사건 발생 직후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여객기를 격추시킨 반군들을 비판하지 않고,
    유크라인이 반군들에게 적대적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항공기가 격추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러시아 지도자가 세계인의 비극을 이렇게 인식하는 것은 러시아 이성과 문명의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유럽 대륙에서 말레지아 여객기가 피격되어 세계가 애도하는 바로 그날,
    중동 지역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Gaza Strip)를 침공했습니다.

    지구의 다른 지역에서 여객기 피격과 영토 침공이라는 전혀 다른 사건을 접하면서
     많은 세계인들은 멈출 줄 모르고 되풀이 되는 야만성에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비극에 희생되는 사람들은 대결과 비극을 만드는 권력자들이나 야심가들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삶과 행복을 추구하는 소박한 시민들, 아직 세상의 갈등과 분쟁을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이라는 데서 마음은 더욱 아프고 분노는 깊어집니다.

    세계의 문명이 진보하고, 지구촌의 이성이 성장하면서 과거와 같은 무지막지한 억지와 침략성이 감소되고 있지만, 억지와 침략 논리는 여전히 세계의 정치와 의식에서 분출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서방에서는 야만성과 침략자의 이미지를 가진 푸틴이 러시아에서는 80%가 훨씬 넘는 지지로 영웅적인 환호를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와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받는 평가도 이 두 나라를 보는 시각과 입장에 따라 극명하게 갈라집니다. 미국은 국제 정치에서 러시아나 중국 등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입니다. 이러한 미국의 이성과 합리성이 가장 허약하게 자기 모순을 노출시키는 부분이 바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문제가 대두되면 미국은 맹목적이 됩니다.
    다른 문제는 솔직하고 치열한 토론이 전개되면서도 이스라엘 문제는 일사천리, 이스라엘 행동에 자동 거수기가 됩니다. 정치가 그렇고, 미디어가 그렇고, 여기에 아무런 생각없이 따라가는 여론이 그렇습니다. 

    푸틴이 유크라인 땅 크라이미아를 침공했을 때는 그렇게도 분명했던 미국의 분노와 이성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문제에는 태연해지고 무감각해 집니다.
    같은 시기에 발생한 말레지아 항공기 격추사건과 이스라엘 침공을 전혀 다른 잣대로 재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도 여건도 허락되질 않습니다.
    미국을 지배하는 현실적인 힘의 역학이 정치와 의식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벗어나면 도발적인 이단아가 됩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무조건적인 후견인 역할을 맡으면서, 이스라엘은 미국의 발목을 잡고,
    때로는 목덜미까지 움켜쥘 정도로 오만해지기도 합니다.
    특별히 벤자민 네탄야후(Benjamin Netanyahu)가 이스라엘의 총리가 된 후 네탄야후의 오만함은 선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네탄야후가 미국을 방문해서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고 회견하는 모습을 보면 착잡한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미국 정치인들이나 미디어는 이스라엘 총리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지적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 나라 미국 대통령은 격하게 비판하면서도, 자기 나라 대통령을 무례하고 교만하게 대하는
    이스라엘 총리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고 정중합니다.
    의회에서는 여야가 함께 수십 차례의 기립박수를 열렬하게 보냈습니다.
    미국 정치인들은 이스라엘 앞에서는 왜소해집니다.

    이스라엘의 네탄야후가 오바마를 만나는 모습은 러시아의 푸틴이 오바마와 회동하는 모습을
    떠 올리게 합니다. 네탄야후를 지켜보고 있으면 푸틴과 닮은 데가 많습니다.
    고등학교 때 부터 미국서 공부한 네탄야후가 미국 물을 많이 먹어 푸틴보다는 훨씬 세련되었지만, 두 사람이 풍기는 체취와 의식에 많은 공통점이 있어 보입니다. 네탄야후와 푸틴은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푸틴이 유크라인 영토 크라이미아를 침공, 병합할 때 이스라엘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고, 푸틴의 침략에 침묵했습니다. 미국인들의 막대한 세금으로 경제 발전과 군사 무기를 구축하는 이스라엘이 자기네 이익을 위해 미국의 힘이 되기를 거부하고, 암묵적으로 러시아를 두둔했습니다. 

    이번에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유크리안 분리주의자들이 말레지아 여객기를 격추시켜
    세계가 푸틴을 비판하는 와중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 가자를 침공했습니다.
    침공의 명분은 팔레스타인 하마스(Hamas)가 이스라엘 영토에 무차별 포격을 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빌미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에 엄청난 폭격을 한 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가자 지구를 침공해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7백 명을 육박하고 부상자가 수천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미국 정치인들이 이스라엘의 가자 폭격과 침공을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무차별 포격을 퍼붓는데 가만있을 나라가 어디 있겠느냐면서 이스라엘의 포격과 침공이 정당하다고 이스라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이스라엘과 미국의 모순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로켓을 이스라엘에 퍼부었지만 이스라엘 시민이 죽은 것은 두 명 입니다. 하마스는 대량 살인을 하려고 했지만 이스라엘의 최신 방어 무기 아연 돔(Iron Dome) 때문에 살인 미수에 그쳤고, 이스라엘은 살인 미수를 빌미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수백 배로 죽였습니다. 하마스를 응징하기 위해 민간인을 대량 살상시키는 과도한 보복을 하고, 침공까지 했습니다.
    이스라엘 시민이 하마스 폭격으로 죽은 것을 애도하는 장례식에는 이스라엘 대통령과 장관들까지 참석했으나, 팔레스타인 희생자들은 길거리에서 쓰레기처럼 뒹굴었습니다.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에는 국적이나 이념이 없습니다. 말레지아 여객기 격추와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이 모두 지탄을 받아야 하는 것은 자기 인종과 이념, 국가 이익을 위해 무고한 시민, 어린이들을 희생시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한 것에 반해 자기네는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대피할 것을 사전에 경고하고 폭격했으며, 하마스가 민간인들을 인간 방패로 삼아서 희생자를 대량화 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대량 사망한 것이 하마스 책임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국민을 대량 살상하고 가자를 침공한 것은
    러시아가 러시안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유크라인을 침공하고, 크라이미아를 강탈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스라엘이 과거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무차별 포격은 잘못된 것이고, 이스라엘은 자기 국민을 보호할 권리가 당연히 있지만, 하마스가 포격을 퍼부었고, 하마스가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야기시켰다는 이유로 상대방 국민을 대거 살상시키는 것은 절제력을 잃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맹목적 지지가 계속되고 있지만, 이러한 구조는 달라져야 하고,
    달라질 것입니다. 아직 미미하기는 하지만 미국 시민들의 인식에 변화가 보이고, 인종이 다양화하면서 과거의 맹목성에 반성의 기미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미국민이 이스라엘의 오만과 침략성을 직시하기 시작할 때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과 지지도 제동이 걸릴 것입니다. 미국 시민의 세금을 가장 많이 원조 받는 나라이기도 한 이스라엘이 미국의 돈으로 침략자가 되어 과도한 살상을 하는 것을 계속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큰 짐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맹목적 이스라엘 지지로 인해 미국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고 있습니다. 중국에게 빚을 얻어 이스라엘을 도와주는 격이 되었습니다. 국민의 세금만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이성과 합리성의 모순을 더해주고, 미국의 명분을 약화시키고, 미국에 대한 미움과 증오를 증가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면서 미국은 세계의 양심과 양식으로 부터 고립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푸틴이 러시아를 세계의 이성과 문명성으로 부터 고립시키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스라엘이 오만해지고 침략자가 될 수록 이스라엘은 세계로 부터 더욱 고립되고, 이스라엘이 고립될수록 미국도 세계 정치와 양심에서 고립될 것입니다. 미국은 푸틴과 유크라인 반군들만이 아니라, 하마스와 네탄야후와 이스라엘을 함께 비판해야 합니다.
    미국은 양심과 양식의 소리를 듣는 공정한 중간자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