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9일자 시론에 하태경·열린북한방송 대표가 쓴 <삐라에 흔들리는 개성공단>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햇볕정책의 가장 큰 치적이다. 지난 7월 11일 박왕자씨 총격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데 이어 이제는 개성공단마저 폐쇄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두 사업은 햇볕정책의 소위 '경협(經協) 평화론'에 입각해 추진된 것이다. 경협 평화론은 한반도 평화를 촉진하기 위해서 남북 경제협력을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경협을 통해 김정일에게 달러를 공급해 주면 김정일은 그 달러로 개혁 개방을 추진하여 한반도 평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해외 투자 원칙은 경협평화론과 정반대이다. 내전이 있다거나 정권 임의로 기업을 몰수, 추방할 수 있는 정국 불안 지역은 최우선 투자 회피 지역이다. 어떤 기업이나 국가도 경제 투자를 통해 이 지역의 내전을 중단시킨다거나 정권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협 평화론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미명하에 일반적인 해외 투자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추진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금강산 관광을 통해 남북 간 안보 위험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박왕자씨 총격 사건으로 잠재되었던 안보 위험이 현실화되어 금강산 관광도 중단되고 남북 관계도 더 악화되었다.

    이번 개성공단 사건도 햇볕정책이 얼마나 무모한 정책이었는지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 만약 북한 주장대로 그깟 삐라 정도에 흔들릴 사업이었다면 그 사업은 처음부터 추진되지 말았어야 했다. 햇볕정책은 남북 관계의 성격을 전적으로 오판했던 것이다.

    민간 단체의 대북 삐라 활동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북한처럼 민주주의가 없는 사회에서는 정부가 임의로 통제할 수 있으나 한국과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북한이 삐라 때문에 개성 공단을 못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이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개성공단 사업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개성공단 사업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그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이룩한 한국의 위대한 민주주의를 어떻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과연 북한이 개성공단을 실제로 폐쇄할지에 대해서는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단순 협박에 불과하다고 보는 입장은, 개성공단이 1년에 2500만 달러 정도의 달러 공급원이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른 의견은, 삐라는 구실에 불과하고 북한은 실제로 개성공단을 폐쇄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 근거는 처음엔 북한이 달러가 아쉬워 마지못해 개성공단을 허용했으나 이 공단이 갈수록 한국의 실상과 문화를 북한에 알리는 선전장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이제 북한 정권은 개성공단 자체를 거대한 삐라로 본다는 것이다.

    설령 북한의 공단 폐쇄 협박이 허풍이라고 해도 개성공단과 같은 햇볕형 경협 모델은 이미 파산 선고를 받았다. 삐라 정도에 흔들릴 사업이라면 앞으로도 언제든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북한은 자신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면 뭐든지 걸고 넘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어떤 기업이 안심하고 북한에 투자할 수 있으며, 어떤 정부가 대북 투자를 독려할 수 있단 말인가?

    나아가 북한의 개성공단 흔들기는 10·4 선언 정신을 심각히 훼손하고 있다. 10·4 선언에 명기된 해주공단, 서해안 평화협력지대, 안변 남포 조선협력단지, 백두산 관광 사업은 모두 경협을 통해 평화를 촉진하자는 햇볕형 경협 모델들이다. 그런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도 이 지경인 판국에 어떻게 동일한 형태의 사업들이 반복될 수 있겠는가? 북한은 한국 정부에 6·15, 10·4 선언 이행을 요구하기 전에 자신들이 얼마나 그 선언을 훼손하고 있는지 반추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