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7일 사설 '금융위기 대책엔 조건달고 촛불집회 달려간 민주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필요한 ‘국내은행 외화표시 채무에 대한 국가 지급보증’ 국회 동의안이 1주일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여야 3당 정책위의장들이 합의 처리키로 약속한 것이 21일인데 민주당이 딴죽을 거는 바람에 아직 상임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무려 7000억 달러를 쏟아 붓기로 한 미국의 금융구제안이 하원 부결 이후 다시 가결되기까지 나흘밖에 안 걸린 것과 비교하면 참으로 태평스러운 대한민국 국회다.

    민주당은 계속 새로운 조건을 내걸며 처리를 회피하고 있다. 처음엔 ‘은행의 자구책 제시’와 ‘정부의 감독기능 마련’을 조건으로 내세웠다가 정부 여당이 수용하자 이번엔 경제위기 상황 대처 미흡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와 경제팀 경질 수용을 들고 나왔다. 이에 한나라당이 발끈하자 한발 물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번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때 수용이 어려운 조건들을 내걸며 시간을 끈 행태와 똑같다.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이 모양이다.

    민주당의 이런 태도는 지도부에 대한 내부의 비판적 기류와 무관치 않다. 정부 여당의 요구에 쉽게 동의해줬다가 일부 강경파 의원으로부터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받을까 두려워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이 문제로 노선 투쟁의 조짐까지 있다고 하니 누란의 위기 앞에서도 선명성 경쟁이나 하는 의원들이나, 그에 휘둘리는 지도부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청와대가 제의한 여야 3당 대표 초청 조찬회동도 거부했다. 그러면서 지난 주말엔 일부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촛불집회에는 참가했다. 의회정치를 팽개치고 ‘반(反)이명박 정부’ 투쟁을 내건 촛불 세력과 공조하겠다고 천명한 꼴이다. 정세균 대표가 “경제 살리기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약속한 게 얼마나 됐다고 그새 ‘말 따로, 행동 따로’다.

    민주당이 책임을 아는 공당(公黨)이라면 더는 조건을 달지 말고 오늘이라도 지급보증안 처리에 협조하기 바란다. 11년 전 노동법 등 경제개혁 관련 법안 처리를 정쟁으로 몰고 가 외환위기를 부채질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