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6일 사설 <‘군 자살자=국가유공자’라는 해괴한 정부 결정>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국무총리 직속 행정심판위원회(행심위)가 군복무 중 자살자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첫 결정을 내렸다.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교도소 경비교도대원이 고참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1996년 자살한 사건에서 내린 결론이다. 행심위 결정에 앞서 군(軍)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도 이 경비교도대원을 순직자로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국가유공자를 기리는 기본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조는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한 응분의 예우와 (중략) 국민의 애국정신 함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4조는 그 대상자로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전몰 전상(戰傷) 순직 공상(公傷) 군경과 무공(武功)훈장을 받은 자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요컨대 국가를 위해 적극적으로 희생한 구체적 공적이 있어야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법의 취지이고 건전한 상식에도 부합한다. 더욱이 자해(自害)행위의 경우에는 국가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규정도 있다.

    행심위는 “가혹행위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로 정상적인 의사능력이나 자유의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본인에게 귀책사유가 없는 자해행위’라고 판정했다. 물론 가혹행위를 못 견뎌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의 딱한 사정은 충분히 동정할 만하다. 아들을 졸지에 잃은 부모의 고통도 매우 컸을 것이다.

    그렇지만 국가유공자의 범위를 자살자에게까지 확대하다 보면 기존 국가유공자들의 명예에도 손상을 입힐 수 있다. 이 사건의 경우 고인이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억울한 사정을 밝혀내고 국가의 불법행위(감독 소홀)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해주는 것으로 명예회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살하는 현역 장병은 해마다 수백 명에 이른다. 고참병의 고질적인 구타를 없애고 부적응 사병을 가려내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자살한 군인을 국가유공자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는 없다.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자신과 나라를 지켜내는 군인이라야 국가유공자라는 표상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