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속에선 파도 치지 않아 '가 신 씨 주장 근거...맹골수도는 장난?
  • 지난 16일 침몰 직전의 세월호 모습. 이런 상황에서 구조대가 들어가면 그들도 죽는다.ⓒ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6일 침몰 직전의 세월호 모습. 이런 상황에서 구조대가 들어가면 그들도 죽는다.ⓒ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승객 475명을 태운 카페리 세월호가 침몰했다.

    전 국민이 사고현장을 지켜보며 가슴을 졸이던 17일,
    ‘인터넷에서 유명한 사람’이 “세월호 승객을 못 구하는 게 아니라 안 구한 것”이라는,
    놀라운 주장을 했다.

    주인공은 신상철 씨.
    ‘참여정부’ 때 주요 포털에 뉴스를 제공하면서 승승장구하던
    한국인터넷신문협회의 주요 회원사였던,
    ‘親盧매체’ 데일리 서프라이즈 대표를 2009년 폐간할 때까지 맡았다.

    서울역 옆 고가도로에서 분신자살한
    故 이남종씨의 추모식에 신씨가 참석해 한 45분 길이의 연설 가운데 일부다.

    “배가 뒤집혀 있는 상태인 만큼 에어포켓이 형성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공기 주머니는 배가 완전히 물밑에 가라앉더라도
    인위적으로 빼지 않는다면 남아 있게 된다.
    빨리 잠수부들을 투입해 격실마다 수색하면 생존자들을 최대한 찾을 가능성이 있다.”


    신상철 씨는 천안함과 세월호를 비교하면서 ‘에어포켓’ 이야기를 또 꺼냈다.

    “천안함은 반 토막이 나면서 그대로 가라앉은 경우라 물이 금방 찼지만
    세월호는 빠른 시간에 뒤집어져 완전 전복됐기 때문에
    그 안의 공기가 에어포켓을 온전히 형성한다.
    세월호 속에 있는 생존자를 24시간이 지나도록 구조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민관군 구조대가 세월호가 침몰한 지역의 유속(流速)이 빨라
    어려움을 겪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런 주장을 했다.

    “바다 속에선 파도도 치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는다.
    수심이 37m이고 세월호의 높이가 30m인데 구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못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 구하는 것이다.”

  • 세월호 침몰 직후 언론들은 일부 인사들의 주장을 듣고 '에어포켓' 존재 가능성을 부각시켰다. 과연 그랬을까. [사진: 당시 KBS 보도화면 캡쳐]
    ▲ 세월호 침몰 직후 언론들은 일부 인사들의 주장을 듣고 '에어포켓' 존재 가능성을 부각시켰다. 과연 그랬을까. [사진: 당시 KBS 보도화면 캡쳐]

    신상철 씨의 이 주장은 묘하게도 2010년부터 그가 줄기차게 주장한,
    ‘천안함-미군 잠수함 충돌 좌초설’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천안함-미군 잠수함 충돌설’은 인터넷에서 좌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좌파 진영에서는
    신상철 씨가 1982년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뒤 해군에 입대, 중위로 전역했고,
    이어 7년 동안 조선업체에서 선체 도장 감독업무에 종사한 점을 들어
    ‘해양 전문가’라 불렀다.

    덕분인지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그는 민주당의 추천을 받아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 조사요원’으로 활동했다.

    이때 신상철 씨의 주장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천안함은 훈련 중이던 美잠수함과 충돌해 좌초한 뒤 침몰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국적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와 어뢰 잔해까지 발견됐음에도 승복하지 않고
    “어뢰에 쓰인 1번 글씨는 해군이 조작한 것”이라고 했다가
    해군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신 씨의 ‘세월호 음모론’과 ‘천안함 음모론’이 겹쳐 보이는 건
    그의 주장이 정부와 미국을 악마적이고 전지전능한 존재로 보는 시각을
    깔고 있어서인 듯 하다.

    세월호 참사에서 왜 민관군 구조대가 사고 초기 구조를 하지 못했는가
    하는 점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궁금해 한다.

  •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작업 중인 잠수사.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작업 중인 잠수사.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바다 위와 바닷속 환경은 천양지차라는 점,
    세월호는 카페리 여객선으로 선체가 밀폐되지 않고 대부분 개방되어 있다는 점,
    우리나라 해양경찰은 해양수산부 소속으로
    해난사고 시 구조인력과 장비가 태부족이라는 점이다.

    남태평양 같은 잔잔한 바다에서는 ‘다이빙 벨’이든지 여러 장비를 즉시 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맹골수도(孟骨水道)’는
    유속이 느릴 때라 해도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 당시가
    하필이면 연중 유속이 가장 빠른 때라 12km/h 정도였다고 한다.
    이 정도 유속이면 세계적인 잠수 전문가들도 다이빙을 꺼린다고.

    실제 美해군 매뉴얼에도
    “유속이 2km/h 이상이면 다이빙을 피할 것”이라고 나와 있다.

    게다가 부유물이 많은 서해에서 유속이 빨라지면
    물속에서는 시계(視界)가 0.3미터 이내까지 줄어든다.
    이런 바다에서 작업을 하려면,
    침몰한 선박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가이드 로프를 설치해야 하는데
    유속이 너무 빨라 그 작업조차 못했던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해군 특수부대와 해양경찰, 민간 잠수사들의 다이빙 장비로
    세월호 구조작업을 할 경우
    수중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앞도 보이지 않고 유속도 빨라 제대로 된 구조작업을 하기 어려웠다.

  • 세월호 침몰 수역의 빠른 물살 때문에 특수장비를 착용하고 작업 중인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원들. [사진: 해군 제공]
    ▲ 세월호 침몰 수역의 빠른 물살 때문에 특수장비를 착용하고 작업 중인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원들. [사진: 해군 제공]

    언론보도에도 잘못이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언론들은
    “해양경찰과 소방대, 해군 특수부대, 민간 잠수사 등
    500여 명이 구조작업에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사실은 투입이 아니라 ‘투입 대기 중’이었다고 한다.

    세월호로 접근할 수 있는 가이드 로프가 초기에는 3개에 불과해
    구조작업에 실제 투입되는 인원이 하루 50~60명에 불과했다.

    ‘다이빙 벨’로는 20시간 이상 작업이 가능하다고?
    여객선과 같이 선실이 복잡하게 돼 있는 데서
    산소공급 줄 등을 연결한 무거운 장비를 제대로 쓸 수 있을까?
    다이빙 벨에서 나온 잠수사가
    여객선으로 들어갈 때도 가이드 로프가 필요하지 않나?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하지 않느냐고? 맞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부가 해온 행태 때문에 불가능했다.

    한 번 기억해 보자.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해난사고가 나면 우리는 누구를 불렀나?

    대형 크레인 때문에 조선업체를 부르고,
    해양경찰과 소방방재청, 국방부를 불렀다.

    이 가운데 해양경찰과 소방방재청은 그 예산을
    각각 해양수산부와 안전행정부, 지자체로부터 받는다.
    감독부서가 이러니 ‘예산 핑계’를 대면서,
    사고예방 및 관리, 재난 구조장비를 제대로 갖추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국방부?
    해군의 주 업무가 해난사고 대응이 아닌데
    평소 유지비용만 하루 몇 억 씩 들어가는 최신 구조장비를 갖춰놓으면
    또 ‘예산낭비’라며 뭐라고 할 거 아닌가.

  • 세월호 침몰 현장을 둘러싼 조선업체 소속 대형크레인과 공기주머니.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 세월호 침몰 현장을 둘러싼 조선업체 소속 대형크레인과 공기주머니.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이런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해난사고가 나면
    눈앞에서 배가 침몰하는 것을 보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 그게 우리나라다.

    게다가 ‘맹골수도(孟骨水道)’와 같은 위험한 바다에서는
    최신 구난장비도 소용이 없다.

    신상철 씨와 같은 ‘해난사고 전문가’께서
    유속이 12km/h를 넘나드는 바다 속에서
    수십 시간 동안 안전하게 구조 활동을 벌일 수 있는 장비를
    찾아서 추천해 주셨으면 좋겠다. 

    신상철 씨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현 정부로 돌리고 싶은 것 같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 나온 대로라면
    청해진 해운이 지난 20년 동안 항로를 독점했다고 하는데
    그 시절이면 ‘문민정부’, 소위 ‘민주화 세대의 좋은 시절’ 아니었나?

    그 이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대체 뭐 했나?

    아니, 신상철 씨가 그렇게나 지지했던 ‘참여정부’에서
    이런 재난재해 관련 장비와 인력을 대폭 보강하고
    예산을 늘려줬다면 더 좋지 않았겠는가.
    무슨 폭탄 돌리기 하는 건가.

    신상철 씨는 천안함 폭침 때도
    “천안함과 美잠수함이 충돌했다”는 음모론을 내놨었다.

    천안함이 가라앉은 수역의 깊이는 40미터 내외.
    그런 곳에서는 핵추진으로 움직이는 미국 잠수함이 잠수하질 못한다.
    길이 109미터, 선체 아래서 마스트 끝까지의 높이가 30미터를 넘는
    잠수함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그의 ‘음모론’이 허무맹랑하다는 걸 알 수 있다.

  • 천안함과 美잠수함이 충돌했다는 음모론 때도 나온 美LA급 핵추진 공격잠수함의 긴급부상 모습. 이렇게 튀어 나오려면 최소한 수심이 170미터보다 깊어야 한다. [사진: 美해군 홈페이지]
    ▲ 천안함과 美잠수함이 충돌했다는 음모론 때도 나온 美LA급 핵추진 공격잠수함의 긴급부상 모습. 이렇게 튀어 나오려면 최소한 수심이 170미터보다 깊어야 한다. [사진: 美해군 홈페이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신상철 씨가 이번에 내놓은 음모론 또한
    침몰 현장의 환경과 우리나라의 재난재해 대응체계, 그 구조를 보면
    엉뚱한 비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엉뚱하지 않다고?
    그렇다면 "정부가 세월호 승객을 일부러 구조하지 않았다"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증거를 국민들 앞에 공개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신상철 씨 또한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 “정부는 대체 뭘 했나”고 비판하다
    실수로 '도를 넘었을 수도' 있다.

  • 천안함 관련한 설명을 하고 있는 신상철 前데일리 서프라이즈 대표.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천안함 관련한 설명을 하고 있는 신상철 前데일리 서프라이즈 대표.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지만,
    하지만 만약에
    과거 데일리 서프라이즈 시절이나 천안함 때처럼 활동하려 한 것이라면 문제다.

    과거 2009년 폐업 전 서프라이즈에서
    자신과 다른 생각의 회원 글을 무조건 삭제하며
    ‘비극’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다 회원들로부터 비판을 받지 않았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월호 참사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소 잃은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는 일’ 아니겠는가?

    아무리 정치가 중요하고 이념이 중요하더라도
    우리 모두 '비열한 기회주의자'는 되지는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