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감독들이 최진실 자살을 불러온 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받고 있는 인터넷의 무분별한 여론몰아가기와 네티즌의 악성 댓글을 자제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영화감독네트워크(대표 이현승)과 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 김대승·봉준호·정윤철)은 2일 한 일간지에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고 싸워온 표현의 자유가 이것입니까'라는 글을 올려 "정체불명 네티즌이 과도한 권력으로 여론 몰아가는 세상은 이젠 끝내자"고 호소했다. 

    영화감독들은 "대한민국 영화감독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다. (우리는)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나 정치적 발언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싸워왔지만 이은주에 이어 최진실마저 보내게 된 상황을 생각하면 이것이 과연 진정한 '언론의 자유'이자 '표현의 자유'인가 되묻게 된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들은 "요즘 우리는 문화 권력이 너무 익명의 네티즌들에게 일방적으로 가 있지 않나 우려한다"면서 "때로는 막말과 인격 살해를 일삼는 그 네티즌이 과연 관객 전부를 제대로 대변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인터넷에 유포되는 악성 글들은 우리를 참담하게 한다. 인터넷이 서로에게 소통의 장이 아니라 침 뱉는 장소가 된다면 우리는 차라리 아날로그로, 펜으로 편지 글을 쓰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며 "우리 감독들은 이번 사태가 정체불명의 네티즌이 과도한 권력으로 세상을 몰아가 거짓 정보와 무책임한 인신공격으로 오염됐던 인터넷 공간이 정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국영화감독네트워크'는 1998년 젊은 감독들이 뜻을 모아 만든 비공식적 단체로 '디렉터스 컷'이 전신이다.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는 이 단체는 영화 환경에 대처하고 감독들간의 친목을 도모하고자 출범한 일종의 커뮤니티다. 영화감독조합은 김대승, 봉준호, 정윤철 감독 등이 주체가 돼 만든 단체다.

    최진실을 보내며 …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고 싸워온 '표현의 자유'가 이것입니까

    우리 감독 일동은 최진실을 진정 아픈 마음으로 떠나보냅니다. 이은주에 이어 이런 일이 또 발생한 것에 대해, 영화적 동료로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상황을 방치했던 것은 아닌가 마음 한 구석이 어두워집니다.

    미국의 배우 말런 브랜도는 마약을 하고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악성 루머성 보도가 나와도, 그가 ‘대부’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에서 대중에게 주었던 기쁨과 슬픔을 생각하며 그를 이해하고 감싸려던 미국 시민이 더 많았음을 기억합니다. 과연 우리는 그런 것이 불가능한 국민인가요?

    저희 감독들은 대체 가능한 존재들입니다. 박찬욱이 찍다 문제가 생기면 김지운이나 류승완이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송강호가 찍다가 못 찍으면 그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들이 연기자입니다. 그들은 늘 행복하면서도 불행합니다. 파스칼의 표현을 빌리자면 “종교와 오락 사이에서 불안정하게 진동하는 존재”들이 연기자입니다. 어떤 때는 무조건 숭배의 대상이 되다가 어떤 때는 그냥 소비돼 버리는 오락의 소도구 같은 존재. 우리는 그들을 통해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이 행복하고, 그들이 다양하고 건강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진실되고 풍부하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나 정치적 발언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이은주에 이어 최진실마저 보내게 된 상황을 생각하면 이것이 과연 진정한 언론의 자유이자 표현의 자유인가 되묻게 됩니다.

    인터넷에 유포되는 악성 글들은 우리를 참담하게 합니다. 이처럼 인터넷이 서로에게 소통의 장이 아니라 침 뱉는 장소가 된다면 우리는 차라리 아날로그로, 펜으로 편지 글을 쓰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들면 우리는 그를 둘러싼 다양한 평가들을 원합니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우리 감독들은 문화 권력이 너무 익명의 네티즌들에게 일방적으로 가 있지 않나 우려합니다. 창작자의 발언, 전문가인 기자·평론가의 발언, 그리고 관객인 네티즌의 발언이 고루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함에도 거의 일방적으로 네티즌의 파워에 쏠려 있는 불균형 상태를 심히 우려합니다. 때로는 막말과 인격 살해를 일삼는 그 네티즌이 과연 관객 전부를 제대로 대변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저희 감독들은 이번 사태가 정체불명의 네티즌이 과도한 권력으로 세상을 몰아가 거짓 정보와 무책임한 인신공격으로 오염됐던 인터넷 공간이 정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술가 배우들을 좀 더 관용적으로 바라보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8년 10월 2일

    영화감독 네트워크 대표 이현승

    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 김대승·봉준호·정윤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