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4.3 진실 바로잡기,
    애국시민들의 300일 투쟁기록


  • 김동일 자유논객연합 회장.ⓒ 뉴데일리 DB
    ▲ 김동일 자유논객연합 회장.ⓒ 뉴데일리 DB

    김동일(필명 비바람) 자유논객연합 회장


    - 글 싣는 순서 - 

    1. 경과 보고
    2. 제주4.3진상규명국민모임
    3.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
    4. 서울 프레스센타 2차 세미나
    5. 안전행정부 의견개진
    6. 불량위패 명단
    7. 제주4.3바로잡기대책회의
    8. 사람들
    9. 성과
    10. 당면 과제


     

    1. 경과 보고

    지금 이 시각 인터넷에는 제주4.3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4월 2일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4.3희생자를 재심의하는 내용의 4.3 특별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4월 3일에 다시 하태경 의원은 4·3 희생자로 선정된 사람들 중에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경력의 소유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면서 4.3희생자에 대한 재심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하태경 의원이 예로 든 [납득하기 어려운 경력의 소유자]에는 북한 인민군 사단장을 지낸 이원옥, 북한 인민군으로 활동했던 김기추, 해주 경찰서장이 됐다는 현만호, 남로당 인민해방군사령관 김의봉, 남로당 인민해방군 참모장 김완식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4월 3일 오후에 정홍원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 참석했습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4·3사건 희생자로 결정된 인사 가운데 남로당 핵심간부나 무장대 수괴급이 있다는 주장과 관련, "이들을 희생자로 볼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정홍원 국무총리는 "그렇다"라고 답변하며, “최근 희생자 53명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 점에 대해 검증을 거치도록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 답변하는 정홍원 총리 (서울=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답변하는 정홍원 총리 (서울=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4월 4일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다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4.3 희생자 재심의와 이에 대한 국무총리의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현재 제주4.3은 국민적 관심사의 한복판에 서있는 느낌입니다.

    제주4.3을 바로잡자는 일단의 애국세력들이 제주4.3을 목소리 높여 외쳐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그리고 국무총리의 입에서 4.3을 바로 잡겠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4.3바로잡기에 시동을 걸었던 2013년 7월 당시와 2014년 4월의 모습과는 상전벽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주4.3 국가추념일 지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서 촉발된 대한민국 애국세력의 제주4,3 전쟁이 오늘로서 그 1회전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애국세력의 4.3바로잡기 투쟁은 수많은 토론과 가두집회, 세미나와 탄원서 제출, 의견개진, 보도자료 발표, 성명서 발표, 화형식 거행 등, 학자와 교수, 논객, 무명의 일반시민들이 똘똘 뭉쳐 만들어낸 거대한 오케스트라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1회전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음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2. 제주4.3진상규명국민모임

    제주4.3 국가추념일 지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작년 6월 27일이었습니다. 이때까지도 4.3추념일 지정에 대한 논의는 제가 논객넷에 게시했던 추념일 반대 글 두 편이 전부였습니다. 추념일 지정 문제는 그냥 묻혀져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에는 오래전부터 4.3바로잡기에 매진하던 일단의 인사들이 있었습니다.

    4.3을 직접 겪고, 오래 동안 연구하고, 4.3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아는 분들이었습니다. 오늘 나라를 흔드는 제주4,3 바로잡기의 거대한 물결은 바로 제주도에 있는 몇 사람들의 작은 물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의 애국인사들에게는 뜻은 있었지만 자금이 없고 조직이 없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추념일 문제를 중앙 무대로 올려보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 오더가 저에게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에 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4.3추념일 문제로 공동집회를 열어보자는 제의를 했습니다. 어버이연합 추선희 총장은 당연하다는 듯 흔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그래서 2013년 8월 7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4.3추념일을 규탄하는 첫 집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8월 7일 오후 1시에 제주에서 상경한 김영중 전 서장님과 지만원 박사님이 서울 종묘공원에서 연사로 나서 4.3강연을 열었고, 그 다음에는 안전행정부로 이동하여 규탄집회를 가졌습니다. 집회의 주최단체는 ‘제주4,3진상규명국민모임(4.3국민모임)’이었습니다. 앞으로 제주4.3운동의 주인공이 될 4,3국민모임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 2013년 9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주 4.3사건 추념일 지정 문제에 대한 세미나] ⓒ 시스템클럽 제공
    ▲ 2013년 9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주 4.3사건 추념일 지정 문제에 대한 세미나] ⓒ 시스템클럽 제공

    그리고 이어 4.3국민모임은 9월 2일 서울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제주4.3 추념일지정 문제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발표자는 지만원 500만야전군 의장, 오균택 4.3유족, 나종삼 전 국방군사연구소 전사부장, 조영환 올인코리아 대표, 김영중 전 제주경찰서장, 홍석표 제주자유수호협의회 회장이었습니다.

    이 세미나는 대성황을 이루며 여러 인터넷 언론에 보도되었고, 제주4,3추념일의 문제점을 처음으로 중앙에 알리는데 성공하였습니다.

    9월 2일 세미나를 주최했던 4.3국민모임에는 여러 애국단체들이 참여했습니다. 500만야전군, 남침땅굴을찾는사람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북한해방연합, 자유논객연합, 제주자유수호협의회, 종북척결단 8개 단체였습니다.

    나중에 4.3국민모임에는 많은 애국단체들이 참여하게 됩니다. 9월 3일에는 세미나 때 서명을 받은 서명지와 세미나 자료를 탄원서로 만들어 청와대, 안행부, 각 부처 장관들에게 제출되었습니다. 그리고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어버이연합이 주축이 되어 다시 4.3추념일 규탄 집회를 가졌습니다.

     

    3.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

    가을에 접어들면서 제주에서는 중요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제주4.3진상과 추념일의 문제점을 인식한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4.3유족회를 구성하자는데 의기투합합니다.

    그동안 제주에서는 좌파유족회가 제주4,3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4.3유족회는 4.3민중항쟁론을 배격하고, 불량희생자를 골라내자는 주장으로 기존의 좌파유족회와는 선명하게 다른 색깔을 보여주면서, 제주4.3에는 새로운 혁명의 기운이 싹트게 됩니다.

    새로운 4.3유족회는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정립유족회)’라는 명칭으로 11월 7일 제주 하니크라운호텔에서 창립식을 열었습니다. 이동해, 홍석표, 오균택 세 분이 공동대표를 맡았습니다. 이동해 대표와 오균택 대표는 4.3유족이기도 했습니다.

    창립식에는 제주 출신 현길언 소설가와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인 권희영 교수를 초빙하여 4.3에 대한 강연도 있었습니다.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는 정기적으로 자료집을 발간하는 계획을 세워 4.3바로잡기에 나서는 한편,

  • 2013년 11월 7일 제주시 하니크라운호텔 연회장에서 열린 <제주 4.3 정립 연구-유족회> 창립식 ⓒ 뉴데일리DB
    ▲ 2013년 11월 7일 제주시 하니크라운호텔 연회장에서 열린 <제주 4.3 정립 연구-유족회> 창립식 ⓒ 뉴데일리DB

    12월 11일에는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과 김영중 전 제주경찰서장을 초청하여 ‘제주4.3사건의 진실규명과 화해의 길’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고, 3월 28일에는 이선교 목사와 홍석표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 공동대표를 모시고 ‘불량위패 제거 방안에 대한 세미나’를 열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가 등장하면서 제주4,3은 다시 새로운 판도를 맞이하게 됩니다. 제주4.3의 본산에서 4.3의 주인공들이 출현했기 때문입니다. 정립유족회는 지금까지 제주4.3 투쟁을 벌여온 단체 중에서 가장 4.3과 밀접한 당사자들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4.3에 매달려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주에서의 4.3투쟁은 좀 더 조직적이고 전략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성공 확률이 희박한 추념일 반대보다는 불량위패, 정부보고서, 4.3전시물 등으로 목표물을 구체화하여 화력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략도 실리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정립유족회에는 제주4.3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숨은 실력자들이 대거 참여하였습니다. 유족회 이름에 ‘연구’자가 들어간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이 오랫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증언을 채록하여 만든 ‘일급폭도명단’은 제주도 애국인사들의 피와 땀의 소산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립유족회의 비장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정립유족회에서 확보한 불량위패 명단은 900여기입니다. 4.3희생자 심사와 4.3진상조사가 엉터리였다는 확실한 증거였고, 이 명단은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추념일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4. 서울 프레스센타 2차 세미나

    2013년이 저물어가면서 4.3추념일 문제는 해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4.3국민모임은 결정적인 한방을 먹이자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세미나를 준비하게 됩니다. 거물급 인사들을 초청하고 범 애국세력이 모이는 대대적인 세미나가 정부를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패널 선정과 각 애국단체에 참여를 호소하기 위하여 수많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상경하여 여러 단체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참여를 호소하고 애국적 의무를 다하라는 반 협박성 발언도 서슴치 않아야 했습니다.

    2014년 1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에서 ‘대한민국 애국진영이 제주4,3추념일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세미나는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 김영중 전 제주경찰서장,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현길언 소설가, 지만원 박사, 다섯 분이 발표자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박희도 상임회장께서 격려사를 해주시기 위해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습니다.

    2차 세미나를 주최하면서 4.3국민모임에는 수많은 애국단체들이 참여하였습니다.

    나라사랑실천운동. 남침땅굴을찾는사람들. 대한민국대청소500만야전군.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대한민국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국제외교안보포럼. 대한민국경우회. 대한민국성우회.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회. 자유수호국민연대. 자유시민연대. 자유총연맹. 한국미래포럼. 한미안보연구회 등 기타단체).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북한해방연합. 사단법인 건국이념보급회‧이승만포럼. 사단법인 실향민중앙협의회. 서북동지중앙회. 자유논객연합. 자유민주수호연합. 종북척결단. 등 지면이 모자라 초대장에 일일이 소개하기가 불가능 할 정도였습니다.

    지면 관계로 소개가 생략된 단체에는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제주4.3진상규명국민모임과 자유논객연합이 주최한 제주4.3사건추념 문제점 세미나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제주4.3진상규명국민모임과 자유논객연합이 주최한 제주4.3사건추념 문제점 세미나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2013년의 첫 집회 때부터 보수 인터넷 매체들은 4.3국민모임의 활동을 꼬박꼬박 실어주었습니다. 뉴데일리, 데일리안, 코나스, 올인코리아, 독립신문, 뉴스파인더, 리버티헤럴드, 미디어워치 등 많은 인터넷 매체들이 4.3바로잡기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며,

    조갑제닷컴, 논객넷 등 보수사이트에는 4.3칼럼이 자주 올라오면서 여론을 환기시켰고, 시스템클럽에서는 4.3칼럼을 빠짐없이 게재해 주면서 4.3바로잡기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습니다.

    2차 세미나는 그 효력이 확실하게 드러난 세미나였습니다. 중앙에서 4.3추념일을 주목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뉴데일리에서는 2차 세미나 패널들의 발표를 기사 한 꼭지씩 할애해주는 파격적인 편집으로 애국세력의 기를 살려줬습니다.

    그리고 2차 세미나를 기점으로 뉴데일리는 4.3활동의 보도 위주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논설의 진검을 휘두르게 됩니다. 그리고 2차 세미나를 전후로 조선일보 문화일보의 사설에도 4.3추념일 문제점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4.3추념일 문제는 국가적인 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5. 안전행정부 의견개진

    제주4.3추념일 지정이 입법예고 되면서 안전행정부는 절차에 따라 4.3추념일에 대한 의견개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의견 개진 기간은 1월 말에서 2월 26일까지였습니다.

    지금까지 4.3바로잡기 운동이 몇몇 단체에 의해서 견인되는 것이었다면 의견개진은 국민 개개인의 참여가 절실한 것이었습니다.

    각 보수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안행부 의견개진 독려가 줄을 이었고, 의견개진 기간 동안 대한민국 애국세력의 활동은 눈부신 것이었습니다. 논객넷에는 의견개진 요령과 함께 10여개의 의견개진서 샘플을 게시해놓고 의견개진을 독려했습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는‘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한 폭도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추념하다니?’라는 제목으로 3개의 일간지에 추념일에 대한 의견개진을 광고로 실었습니다. 남굴사 대표 김진철 목사는 의견개진서와 우편발송 영수증을 사진으로 찍어 게시해놓고 애국단체와 애국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의견개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한민국경우회에서는 4.3평화공원의 편향성을 조사하는 시찰단을 두 번씩이나 제주에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의견개진이 한창이던 2월 18일 제주에서는 일대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새누리당 제주도당 박찬식 고문이 4.3추념일 지정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박찬식 고문은“4.3을 추념일로 지정한다면 이는 지서를 습격한 공산주의자들을 추념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이며, “국가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는 통렬한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박찬식 고문은 사비를 들여 성명서를 제주도의 3개 일간지에 실었습니다.

    박찬식 고문의 성명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발언이었음에도 좌파득세의 제주도에서 충격파를 일으켰고, 소신이라곤 없는 한 방울도 없는 새누리당 제주도당에서는 박찬식 고문을 제명하였습니다.

  • 2014년 2월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청사 후문에서 애국단체들이 모여 [제주 4.3 국가추념일 지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뉴데일리DB
    ▲ 2014년 2월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청사 후문에서 애국단체들이 모여 [제주 4.3 국가추념일 지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뉴데일리DB

    역사가 뒤집어진 시대의 서글픈 한 장면이었습니다. 의견개진 기간에 각 보수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안행부에 제출했다는 개인들의 의견개진서가 올라오면서 4.3추념일 의견개진은 요원의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번져갔습니다. 최소한 수천 통의 의견개진서가 안행부에 쇄도했다고 추정되어집니다.

    그러나 반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안행부 과거사지원단에서 4.3평화재단과 4.3희생자유족회에 추념일 찬성의견을 개진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활동하던 과거사지원단 공무원들의 명백한 중립의무 위반이었습니다. 좌파 측에서는 추념일 찬성 의견개진이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동사무소와 일반 업체, 가두에서 찬성 서명받기가 벌어졌습니다. 관권을 등에 업은 의견개진 운동이었습니다. 저의 아내 회사에서도 회사 관리자가 찬성 서명지를 들고 서명을 받으러 다닐 정도였습니다. 좌파 의견개진이 관권 의견개진으로 단체로 서명을 받은 것에 비해 애국세력의 의견개진은 자발적 의견개진으로 개인이 일일이 의견을 작성하고 우체국으로 가서 발송해야 하는 정성이 필요했습니다.

    4.3추념일 의견개진은 바야흐로 공권력과 개미떼의 대결이었습니다. 그러나 좌파 의견개진이 회사 상사의 명령이나 동사무소 공무원의 권유에 의해 사실관계도 모른 채 그냥 이름 칸에 서명만 하는 것이었다면 애국세력의 의견개진은 사명감과 절박함을 가지고 진실을 기록하는 의견개진이었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언제나 진실이기 마련입니다.

     

    6. 불량위패 명단

    의견개진이 시작되기 직전에 4.3정립유족회에서는 아주 무시무시한 무기를 꺼내놓습니다. 불량위패 명단입니다. 1차로 26명, 2차로 25명의 명단이 공개되었습니다.

    이 명단은 4.3평화공원의 불량위패 사진과 함께 게재되면서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이 명단과 사진은 미처 4.3추념일 의견개진을 못했던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으며 적극적으로 의견개진서를 쓰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의견개진을 하면서 바로 이 불량위패 명단과 사진을 첨부하여 발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자료에 분노한 사람들은 이 자료를 안행부 뿐만이 아니라 청와대 국무총리실 등으로 발송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 보내진 이 자료는 정신 차리라는 국민의 질타를 대신했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고, 4.3추념일을 추진했던 관계자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안행부에 의견개진을 초기에 발송했던 사람들에게 안행부 과거사지원단의 답변서가 도착되었습니다. 안행부의 답변은 황당하게도 제주4.3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남로당 핵심간부와 무장대 수괴급 등은 희생자 결정에서 제외하였다는 답변이었습니다.

    그러나 불량위패의 명단과 사진은 과거사지원단의 답변을 비웃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을 것이 없는 과거사지원단이었습니다.

  • 야스쿠니에 합사된 1급 전범들처럼 4.3평화공원에 자리잡고 있는 폭도들의 위패 ⓒ뉴데일리DB
    ▲ 야스쿠니에 합사된 1급 전범들처럼 4.3평화공원에 자리잡고 있는 폭도들의 위패 ⓒ뉴데일리DB

    불량위패 명단과 사진은 3월 7일 뉴데일리에 보도되었습니다. 뉴데일리 박성현 주필은‘제주4.3평화공원이 야스쿠니 신사인가?’라는 제목으로 불량위패 명단과 사진을 싣고 “아버지를 독살한 에미를 아버지와 함께 합장한 것과 같으며, 어머니를 때려죽인 아비를 어머니와 함께 합장한 것과 같다”며 4.3평화공원의 불량위패를 혹독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리고 월간조선에서도 불량위패 취재가 있었습니다. 3월 중순에 발간된 월간조선 4월호에는 “폭동 주도자·적극 가담자 위패 900基 있다!”라는 제목으로 ‘제주4·3평화공원의 불량위패 논란’을 다뤘습니다. 바야흐로 불량위패가 4.3추념일을 앞둔 4.3정국을 강타하며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불량위패 명단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수 년 간에 걸친 자료조사와 증언 채록으로 벽돌 한 장씩 쌓아올리듯 차곡차곡 축척해온 결과물이었습니다.

    좌파4.3이 지배하는 제주에서 4.3을 바로잡자는 애국세력은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의 뜻있는 일부인사들은 먼 훗날 언젠가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진실은 드러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비용을 갹출하고, 은인자중 절치부심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오늘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3추념일에 대통령이 4.3평화공원을 방문하지 못했던 것은 전적으로 불량위패의 존재를 밝혀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했던 폭도 사령관의 위패에 예를 올리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습은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참석을 요구했던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기억해 두십시오. 대한민국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쓸모없는 정치인들입니다.

     

    7. 제주4.3바로잡기대책회의

    의견개진이 시작될 2014년의 1월말 즈음, 서울에서는 제주4.3을 바로잡기 위한 또 다른 단체 결성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서경석 목사와 이선교 목사가 주도하는 ‘제주4.3바로잡기대책회의(4.3대책회의)’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4.3추념일의 문제점과 제주4.3을 바로잡겠다며 결성된 4.3대책회의는 짧은 기간 동안에 강력하고 저돌적인 운동으로 제주 지역사회에 충격파를 던져주었습니다.

    서경석 목사와 이선교 목사의 주도로 2월 20일 오후 2시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제주4.3희생자 추념일 지정연기 촉구집회를 가졌습니다. 이 집회는 선진화시민행동,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대한민국경우회, 기독교사회책임, 대령연합회, 현대사포럼 등이 주최하였습니다.

    3월 17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타 19층 기자회견실에서 4.3대책회의 출범식이 열렸습니다. 서경석 상임대표의 인사말로 시작된 행사에는 이선교 상임대표의 불량위패 증언이 있었고, 김수근 4.3진압군 대표, 오균택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 공동대표, 한광덕 예비역 소장, 이희범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사무총장 등이 패널로 참여하여 제주4.3추념일에 대한 문제점을 성토하였습니다.

    이선교 상임대표는 보자기에 잔뜩 사고온 자료들을 풀어놓고 4.3정부보고서는 가짜이며, 4.3평화공원에서 제외시켜야 할 가짜 희생자 1,540명의 명단을 공개하였습니다.

  • 2014년 3월 17일 서경석 목사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제주4.3사건 바로잡기 대책회의' 출범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2014년 3월 17일 서경석 목사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제주4.3사건 바로잡기 대책회의' 출범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4.3대책회의에는 많은 애국인사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상임대표에는 서경석 목사(선진화시민행동상임대표), 이선교 목사(현대사포럼 대표), 고문에는 이상훈(애국단체총협의회의장), 박세환(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김홍래(대한민국성우회장), 박희모(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장), 우용락(대한민국 월남전참전자회장), 이형규(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장), 김상호(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장), 김종환(육군사관학교총동창회장), 박정수(밝고힘찬나라운동집행위원장) 등이 참여하였습니다.

    공동대표에는 고영주(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 한광덕(예비역소장), 이황우(동국대명예교수) 신영철(육해공군해병대(예)대령연합회 회장), 김길자(대한민국사랑회 회장), 김기재(6.25참전유공자회 서울지회장), 이계성(반국가척결국민연합 대표), 이상진(반국가척결국민연합 상임대표), 김성욱(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사무총장), 김근식(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사무총장), 이희범(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사무총장), 최인식(한국시민단체협의회집행위원장), 김순희(교육과학교를위한학부모연합대표), 주옥순(엄마부대봉사단장), 김영중(전,제주경찰서장), 김동일(자유논객연합대표), 박찬식(전,제주도행정부지사), 이동해(제주4.3사건정립연구유족회장), 오균택(제주4.3사건정립연구유족회장), 홍석표(제주해군기지건설추진협의회장), 집행위원장에는 박찬우 등이 참여했습니다.

    4.3대책회의는 그동안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하였던 거사를 계획하게 됩니다. 4.3평화공원 앞에서 불량위패 규탄 집회와 화형식을 거행하는 것이었습니다. 3월 20일 오후 2시 30분 왜곡된 제주4.3을 상징하는 4.3평화공원의 앞마당에는 사상 처음으로 200여 명의 4.3대책회의 회원들이 외치는 “불량위패 철거하라!”라는 구호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습니다. 제주인민해방군 3대 사령관 김의봉의 허수아비에 화염이 치솟고 100여 개의 불량위패 모형이 불덩이 속으로 던져졌습니다.

    4.3대책회의의 집회는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량위패를 무력으로 철거하기 위하여 위패봉안소로 강제 진입을 시도하였습니다. 화형식을 거행하고 진입을 저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구호를 외치는 집회 장면은 제주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이 집회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선사했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했습니다. 제주 언론들은 하나같이 집회의 원인에는 침묵하면서‘극우단체의 찬물 끼얹기’로 비하하여 왜곡보도 하였지만, 이 집회는 4,3평화공원에 봉안되어 있는 불량위패의 존재를 전국적으로 알리는데 기여하였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8. 사람들

    ‘김익렬의 미스테리’를 연재할 당시였으니 2011년 4월쯤이었던 같습니다.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지만원 박사였습니다. 제주에 있는 시스템클럽 회원께서 저와 연락하고 싶어 하는데 연락처를 줘도 되냐는 전화였습니다. 당연히 승낙을 했고 제 전화로 연락을 해온 사람은 다름 아닌 김영중 전 제주경찰서장이었습니다. 초대를 받고 집으로 방문해서 따끈한 홍차 한 잔과 책 한 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김영중 전 서장은 오래 전부터 4.3을 파헤쳐왔고‘내가 보는 제주4.3사건’을 저술하기도 했으며, 4.3에 관한한 우회하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가는 분입니다. 가히‘제주도의 지만원’이라 할 만 합니다. 김영중 전 서장과 만나게 되면서 4.3운동에 매진하는 제주도의 애국인사 분들과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영중 전 서장님과는 죽이 잘 맞아 4.3동영상도 같이 찍었고, 제주도의 애국인사들과 ‘제주자유수호협의회’를 창립하기도 하였습니다. 제주자유수호협의회는 제주4.3을 바로잡는 모태가 되었으니, 3년 전에 걸려왔던 한 통의 전화는 행운의 전화였던 것 같습니다.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첫 집회를 계획하고 어버이연합 추선희 총장께 협조 요청 전화를 할 때였습니다. 스케줄이 워낙 바쁜 어버이연합이라 승낙을 받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걱정스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부탁을 드리자 추선희 총장은 일초의 머뭇거림도 없었습니다.“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날짜만 잡고 연락 주십시오.”추선희 총장은 시원시원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추선희 총장도 4.3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추념일의 문제점에 대해서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대부분 중앙에서는 4,3에 대해 잘 몰랐고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때 추선희 총장이 응해주지 않았다면 4.3바로잡기는 지금처럼 창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버이연합의 도움으로 안행부 앞에서 가졌던 작년 8월의 첫 집회를 성공적으로 치름으로서 제주도 촌구석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였습니다.

  • 2014년 3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제주4·3사건 바로잡기 대책회의 출범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현대사포럼 이선교 대표는
    ▲ 2014년 3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제주4·3사건 바로잡기 대책회의 출범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현대사포럼 이선교 대표는 "가짜 보고서를 작성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즉시 사임하라"는 피켓을 목에 걸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서울 프레스센타 2차 세미나는 상당히 공을 많이 들인 행사였습니다. 좀처럼 모이기 힘든 패널팀을 구성하려고 많은 사람들과 통화를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만원 박사였습니다. 지만원 박사는 여러 가지 난감한 상황을 앞에 두고도‘안 된다’‘못 하겠다’는 대답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4.3추념일 지정이 해를 넘기고, 지만원 박사의 확고한 답변을 들을 때마다 개인적으로는 잘만 하면 4.3추념일을 ‘나가리’시킬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기도 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고 여러 단체가 단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더러는 이해관계가 얽히며 방해물을 만나게 되는 것이 현재 애국세력의 모습입니다. 제주4.3바로잡기라는 애국적 의무와 대의명분 앞에서 지만원 박사는 개인적 스케줄, 개인적 감정 등은 항상 뒤로 미뤘습니다. 절대 허락되지 못할 상황 앞에서도 지만원 박사의 대답은 언제나 “예스”였습니다. 지만원 박사의 체구는 작았지만 지만원 박사야말로 진정한‘자이언트’였습니다.

    4.3행사를 치루면서 빼놓을 수 없는 두 분이 있습니다. 한광덕 예비역 소장과 나종삼 전 국방군사연구소 전사부장입니다. 두 분은 4.3정부보고서가 통과될 당시 4.3중앙위원으로 있다가 거기에 반발하여 박차고 나온 분들입니다. 그러기에 4,3행사가 서울에서 열릴 때면 항상 연락을 드리게 됩니다. 나종삼 전 위원은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4.3에 의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자리에 나는 빠질 수가 없다”

    9월 3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2차 집회를 가질 때 한광덕 장군은 지각을 하였습니다. 앞서 참석했던 행사가 늦게 끝났기 때문입니다. 바쁘시면 안 오셔도 좋다고 말씀드렸지만 한광덕 장군은 꼭 오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행사가 다 끝날 쯤에야 헉헉거리며 도착하였습니다. “여기에 도착하면 행사가 다 끝난 시간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늦게라도 왔다.” 애국세력의 4.3 무기는 의무감과 사명감이었습니다. 빗물과 땀으로 젖은 한광덕 장군의 얼굴을 보면서 이 싸움은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경석 목사는 온화하지만 결단력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경석 목사의 활약은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강력한 효과를 거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3평화공원의 자리는 4.3 당시 폭도들이 훈련장으로 쓰던 자리였습니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폭도들의 훈련장에 4,3평화공원을 만들었고, 서경석 목사가 이끄는 4.3대책회의는 그 공원에서 폭도위패 화형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주변의 산천초목들도 벌벌 떨게 만든 쾌거였습니다.

    이선교 목사는 제주4.3바로잡기에서 독보적인 인물입니다. ‘제주4.3사건의 진상’을 저술하였고, 4,3희생자유족회와는 소송전에 돌입해 있는 상태입니다. 광주5.18에 지만원이 있다면 제주4.3에 이선교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선교 목사는 현대사에도 조예가 깊어 다수의 저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4.3대책회의 출범식에서는 ‘제주4.3보고서를 가짜로 작성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퇴하라’고 적힌 커다란 피켓을 목에 걸고나와 강연하는 모습은 이채롭고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선교 목사의 모습이 인상에 깊게 남았던 저는 이선교 목사를 모방하여 4.3평화공원에서의 화형식 집회 때 성명서를 낭독하면서 저도 직접 만든 피켓을 목에 걸었습니다. 언론에 보도될 때 홍보효과를 노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언론에 나온 사진이나 동영상은 가슴 위 부분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고의적인 편집이었습니다. 피켓에는 그들이 보았을 때 아픈 문구가 쓰여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피켓에는 이렇게 썼었습니다.‘야스쿠니 신사에는 일급전범, 4.3평화공원에는 일급폭도’

     

    9. 성과

    4.3추념일 지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불붙은 4.3추념일 문제점 제기에는 여러 가지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추념일 반대 목소리가 주류를 이루다가 중반부터는 추념일 지정에는 공감을 하되 추념일에 따르는 문제점들을 제거하자는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이는 4.3정립유족회 회원들이 전부 무고한 희생자였기에 정립유족회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주장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입니다.

    그러나 ‘추념일 공감, 문제점 제기’라는 주장은 서로 간에 합의하거나 공인된 바도 없으며 강요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4.3추념일 문제로 일어선 애국세력들의 목소리는 다양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추념일 반대를 외친 목소리도 있었고, 4.3추념일에 따르는 제반 문제점들을 선 해결한 후에 추념일을 지정하라는 추념일 지정 연기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주장들은 4.3바로잡기라는 대명제 하나로 뭉쳐져 전 애국세력들이 분진합격(分進合擊)하는 대합주(大合奏)가 되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목소리 속에서도 확실한 공통분모는 있었습니다. 이 공통분모는 안행부 의견개진에서 그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었습니다. 첫째 4.3추념일 날짜 변경, 둘째 4.3평화공원의 불량위패 정리, 셋째 4.3정부보고서 수정, 넷째 4.3평화기념관의 전시물 교체, 다섯째 4.3추념일 연기 등으로, 4.3추념일에 대한 애국세력의 요구를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요구사항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4.3추념일은 안행부를 거쳐 차관회의까지 통과했습니다. 여기에는 안행부 과거사지원단의 거짓말이 주효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불량위패 사진까지 받아놓고서도 과거사지원단은 국민들에게 4.3평화공원에는 불량위패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런 거짓자료를 바탕으로 4.3추념일은 아무런 저지를 받지 않고 국무회의에 상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국무회의에서 반전이 벌어졌습니다.

    4.3문제점에 대한 재조사 지시는 국무총리실이나 청와대에서 나왔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4.3추념일에 국무총리는 참석하고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음으로서, 4.3에 대한 재조사 지시는 청와대의 지시였음을 강력하게 방증하고 있습니다. 4.3에 대한 재조사 조치를 취했다는 안전행정부의 공문이 위조문서가 아닌 이상 청와대의 지시는 관계기관에 하달되었습니다. 그 지시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첫째 기념일 명칭은 제주4.3의 역사성을 기념하지 않는 명칭으로 제정, 둘째 4.3평화공원에 남로당 수괴급 등의 위패 철거, 4.3정부보고서 좌편향성 수정, 4.3평화기념관 전시물 좌편향성 수정 등입니다. 추념일 반대는 4.3바로잡기의 주요 의제에서 약간은 벗어나 있었기에 추념일 지정으로 패배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애국세력의 요구 중 4월 3일 날짜 변경의 요구만 빠지고 나머지는 모두 수확하는 성과를 얻었기에 애국세력은 승리했다고 자부하는 바입니다.

    4.3평화공원 추념식에 대통령이 방문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것은 불량위패가 아니라 희생자라는 것을 인정해 주는 꼴이 될 것이었고, 애국세력은 커다란 반격에 직면하게 됨은 물론 대한민국 애국세력에게 치명상을 입혔을 것입니다.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화형식을 하는 마당에 그 위패에 대통령이 절하는 상황이 발생할 리는 없었습니다. 대통령 불참은 추념일 투쟁의 화룡점정이었습니다.

    제주4,3 투쟁의 성과는 애국세력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성과는 아니지만 제주4.3의 중요한 문제점들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것에서, 그리고 대통령 방문을 저지했다는 것에서 4.3추념일 투쟁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제주4.3에 대한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애국세력에게는 귀중한 성과였고, 4.3유족들이 4.3바로잡기의 주체세력으로 등장한 것도 커다란 수확이었습니다. 4.3추념일 투쟁으로 애국세력은 4.3의 진실을 활짝 열어젖히는 진실의 현관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애국세력들이 총출동하여 선공후사의 미덕으로, 하나의 고지를 향하여 일치단결 전투를 벌였다는 것도 대단한 수확이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대한민국 애국세력의 훌륭한 자산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주4.3에서 좌파세력은 30년 동안 기득권을 누리면서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기득권 세력이었다면, 대한민국 애국세력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세상을 고쳐보자는 혁신진보세력이었습니다. 제주4.3바로잡기는 제주도 밀감밭의 농부에서부터 서울의 교수 박사님까지 동심일체가 된 거대한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10. 당면 과제

    제주4.3은 오랫동안 왜곡되고 날조된 채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철옹성이었습니다. 애국세력의 치열한 투쟁으로 이제 그 허위와 왜곡의 우상을 무너뜨릴 수 있는 문고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제주 변방에서 떠돌던 제주4.3의 담론은 중앙무대로 올라가고 이제 그 담론은 드디어 여의도의 국회에 입성하였습니다.

    제주4.3을 재조사하고 수정해야 하는 업무는 4.3중앙위원회 소관입니다. 그러나 현재 4.3중앙위원회에는 제주4.3을 왜곡하고 날조했던 그 주인공들이 그대로 포진하고 있습니다. 4.3중앙위원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친북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거나 종북인사들이 대부분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김대중 정권에서 임명되어 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을 거쳐 현재 박근혜 정권에서도 그대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4.3특별법에는 4.3중앙위원들의 임기가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안행부 과거사지원단의 어느 공무원의 해석에 의하면 임기가 없기 때문에 자진사퇴하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종신직이라는 해석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편향된 과거사지원단의 바램일 뿐, 임기가 없기 때문에 국무총리가 결정하면 언제든지 위원 교체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4.3중앙위원회는 국무총리실 산하입니다. 국무총리실로 민원을 제기하고 질타하여 주십시오.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는 4.3중앙위원 교체입니다. 4.3중앙위원들을 그냥 놔두고는 제주4.3바로잡기는 요원할 뿐입니다.

  • 제주도 4.3공원에 안장돼 있는 위패들 중에 인민군 사단장 등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실 제공
    ▲ 제주도 4.3공원에 안장돼 있는 위패들 중에 인민군 사단장 등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실 제공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4.3특별법 개정안을 발의 중에 있습니다. 하태경 의원의 개정안은 4.3중앙위원회가 신청 사건의 심의를 완료한 뒤에도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는 등 종전의 결정을 변경할 중대한 사유가 발생했다고 판단될 경우 직권으로 재심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태경 의원의 개정안은 제주4.3바로잡기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하태경 의원이 4.3 개정안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지원하여 주십시오.

    모든 정치인들이 4.3에 눈치를 보고 선거철이 되면 4.3에 굽실거립니다. 하태경 의원은 용기 있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겠다고 나섰습니다. 4.3 개정안으로 하태경 의원을 괄목상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야당에서 하태경 의원을 비난하고 나섰고 새누리당 일부에서조차 하태경 의원을 비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4.3바로잡기라는 밥상을 차려줘도 못 먹는 새누리당입니다. 하태경 의원에게 용기를 주시기 바랍니다.

    4.3바로잡기 1회전이 불량위패였다면 2회전은 4.3중앙위원과 4.3특별법 개정안 국회상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3회전은 개정안 국회통과입니다. 1회전은 불량위패라는 확실한 존재 때문에 전투는 어린애 손목 비틀 듯 쉬웠습니다. 그러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2회전의 국무총리실을 넘어서서 3회전에서는 야당과 기득권의 거센 저항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3회전의 상대는 30년 동안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수구기득권이 되어버린 제주4.3이라는 괴물입니다.

    4.3특별법은 김대중 정권 당시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에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형법에 의해 처형된 사형수까지 희생자로 만드는 위헌 요소도 가지고 있고, 헌법을 무시하는 법이 4,3특별법입니다. 심지어 4.3중앙위원의 임기도 없을 정도로 허술합니다. 법학도나 논객들은 4.3특별법의 허점에 대하여 많이 설파해 주십시오. 그리고 개미떼 군단은 이런 사실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주십시오.

    국무총리실에 민원을 제기하여 4.3중앙위원을 교체하는 것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사안입니다. 하태경 의원실에도 격려전화를 해주시고,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친분이 있는 국회의원에게 선을 대어 4.3특별법 개정안을 지원해달라고 부탁해 주십시오. 특히 4.3특별법 개정안에 딴지를 거는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있다면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해야 할 것입니다.

    1회전이 대정부투쟁이었다면 3회전은 대국회투쟁입니다. 이 싸움은 어렵고 힘든 싸움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진실은 항상 승리한다는 진리가 우리의 깃발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라는 사명감과 자부심이 우리의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4.3추념일 투쟁에 나섰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제주4.3의 전선에서 대한민국의 새 역사를 진일보시켰던 대한민국 애국세력 제위께 이 보고서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