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3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를 총으로 쏘아 살해한 북한군이 ‘17세의 신참 여군’이라는 정보가 입수됐다고 정보 당국이 확인했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민간단체 관계자들도 북의 대남기구 관계자들이 박 씨 피살을 “우발적 사건”이라면서 남북 교류와 관광이 위축되거나 중단될 가능성을 염려해 당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롯한 민간단체와 종교계의 8월 방북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이 비공식으로 사건의 성격을 언급한 것은 박 씨 사건의 파문을 축소하고 외화벌이용 남북 민간 교류는 계속하려는 속셈일 것이다. 북의 태도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사건을 적당히 수습해 보려는 술책이라고 보는 편이 맞지 않을까.

    정보 당국이 입수했다는 정보 자체도 신빙성이 없다. 금강산 일대에 주둔하는 인민군 부대에는 여군이 없다는 것이 현지 사정을 잘 아는 탈북자의 지적이다. 만에 하나 있더라도 갓 입대한 여군이 새벽 시간에 그것도 대남 일선에서 보초를 섰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건 경위에 대한 이 같은 정보가 사실이라 해도 충격적이다. 북이 도대체 군인을 어떻게 훈련시켰으면 17세 소녀가 비무장으로 관광 중인 동족에게 총질을 할 수 있는가. 비인도(非人道) 비인간적 북한 체제의 단면과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의 허구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미확인 정보의 내용을 언론에 확인해 준 것이 만에 하나라도 사건을 조기 수습해 보려는 시도라면 중대한 실책이고 오판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그제 “박 씨를 먼저 발견한 한 초소에서 17세의 어린 여군이 공포탄 1발을 발사했고, 이 초소보다 북측 지역 안쪽에 있던 다른 초소의 군인이 공포탄 소리에 놀라 박 씨를 향해 실탄 3발을 발사했다”고 좀 더 구체적인 언급까지 했다. 북의 주장에 대한 국내 여론 떠보기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놀라서’ 쏜 총 3발 중 2발이 박 씨에게 명중했다는 얘기도 믿기 어렵다.

    이 사건은 남북이 공동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과 사과 및 재발 방지책 마련까지 하지 않고는 해결된 것이 아님을 우리 정부부터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