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에 이 신문 객원논설위원인 윤평중 한신대 교수가 쓴 '남과 북, 사람이 다르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6월 말, 금강산을 다녀왔다. 산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풍광은 빼어났다. 북의 인민들을 생각하며 착잡하던 마음도 수려한 자연 앞에서 누그러졌다. 여행 중 계속 말을 붙이던 북의 지도원은 남한 정세와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질문을 쏟아 냈다. 숙소는 장전항에 있는 해금강 호텔이었다. 산책하던 여성 관광객을 북한군이 참혹하게 사살한 금강산 해수욕장 바로 옆이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한반도의 현실을 압축해서 보여 준다. 10년 이상 쌓인 남북교류의 공든 탑도 정전체제의 현실 앞에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남북관계를 규정한 햇볕정책에는 큰 전제가 있다. 끊임없는 교류협력이 이념과 체제의 이질성이라는 두꺼운 외투를 벗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자주 만나 대화하고 지원하면 긴장이 완화되면서 통일을 기약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햇볕론자들은 통일신라 이래 단일민족으로 살던 역사에 비추어보면 분단 이후의 현대사는 순간이라고 역설한다. 세계 4강대국이 패권을 다투는 한반도의 지정학도 남북화해와 협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의 구호는 그 결정판이다.

    수동적 북 주민-역동적 남 시민

    남북이 같은 언어를 쓰고 오랜 역사를 공유하는 단일민족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과거가 현재의 남북도 같은 민족임을 자동적으로 담보하는지는 제대로 성찰된 바 없다. 이념의 상이함에 더해 분단 이후 60년간 지속된 남북 주민의 삶의 궤적이 너무 다른 것이다. 삶의 방식에서 북한의 인민과 남한의 시민을 가르는 심연은 너무나 깊고도 넓다. 강력한 민족주의적 열정만으로 그 간격을 넘어설 수는 없다.

    목소리 높여 통일을 외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남의 시민과 북의 인민이 영위하는 구체적인 삶의 형태에서 드러나는 근본적 이질성을 냉철하게 점검하는 건 훨씬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다. 후자야말로 남북의 평화공존과 통일을 위한 합리적 접근의 요체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북한이 ‘노동자의 국가’(‘근로인민의 나라’·북한 헌법 4조)를 자처하지만 기실 노동자를 위하는 척만 하면서 인민의 나태와 노동 회피, 공포의 내면화와 수동적 무책임성을 구조적으로 배양하는 사회라는 점이다.

    수많은 북한 방문기의 목격담도 그렇거니와, 짧은 금강산 여행길에서 본 온정리 주민들은 철저히 무기력해 보였다. 북한 당국이 특별히 관리하는 지역이건만 인민들의 피폐한 삶을 감출 수는 없었다. 성취를 위한 외적 인센티브와 내적 유인이 결여된 사회의 일상 풍경은 한여름임에도 회색이었다. 북의 인민에게 체질화된 피동성은 1990년대 후반 대량 아사 시기에 왜 그들이 저항도 하지 않고 ‘앉아서 죽음을 기다렸는지’ 설명해 준다. 역동적으로 권리와 주장을 내세우는 한국의 노동자와 시민들과는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것이다.

    무고한 관광객을 사살한 사건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강퍅한 태도는 북의 입장을 이해하려 애쓰는 진보통일단체조차 당혹하게 할 정도다. 상식과 관행을 뛰어넘는 북의 언설은 우리와 그들 사이의 거리를 육성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통일의 과제를 생각할 때, 체제와 이념에 충실하기 마련인 당국의 공식 입장보다 중요한 게 평균적 인민의 삶의 방식이다. 통독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체제와 이념이 사라진 후에도 보통사람의 삶의 방식은 강고히 남기 때문이다.

    60년간 깊어진 이질성 살펴야

    햇볕정책이 상징하는 대북 화해와 교류 원칙은 크게 고쳐져야 한다. 북한 인민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도록, 즉 자조 자립할 수 있게끔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물고기를 주는 것과 동시에 낚는 법도 알려줘야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후자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합리적인 자유시장의 원칙과 활력을 스스로 체득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의 시대에는 특정한 정치적 계산이 이런 원칙을 왜곡하기 일쑤였다. 천문학적 거액으로 단 1회의 만남을 산 DJ의 남북 정상회담 매수 사건은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온갖 곡절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존 공영하는 남북을 바란다. 언젠가는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것도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분명히 할 것은 남북의 사람들이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다. ‘관광객 사살 사건’은 ‘우리 민족끼리’의 공허함을 폭로하는 징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