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에 소설가 복거일씨가 쓴 '나라의 운(運)도 지도자 하기 달렸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운이 다했는가?' 이 대통령의 시름 깊은 모습을 보노라면, 답답한 마음속으로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물음이다. 그가 취임한 뒤, 제대로 풀린 일이 드물었다.

    원래 그는 '운이 따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그의 삶은 행운의 연속이었다. 그가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자, 문득 운이 사라졌다.

    운이야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지도자에겐 특히 중요하다. 장수의 가장 중요한 특질이 행운이라는 얘기까지 있다. 장수를 발탁할 때, 나폴레옹은 물었다 한다. "그는 운이 좋은가?" 운은 순수한 우연이 아니라 당사자의 태도에 크게 달린 현상이다. 장수의 품성과 그가 추구하는 전략이 어떤 종류의 운이 나오는가 결정한다.

    이런 사정은 이 대통령의 운이 갑자기 바뀐 까닭을 어느 정도 설명한다. 선거 운동 초기에 그는 경제를 회복시킬 후보라는 심상(心象)을 시민들에게 투사했다. 덕분에 그런 심상에 흠집을 낼 일만 없으면, 인기를 지킬 수 있었다. 이런 심상은 큰 사건마다 시민들의 눈길을 그의 추문으로부터 돌리는 행운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렇게 수동적일 수 없다. 대통령은 나라가 가야 할 곳과 거기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시민들을 이끌어야 한다. 혼란스러운 취임사가 상징하듯,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운을 빚어낼 힘을 잃고 외생적 충격들에 부대끼게 되었다.

    외부로부터 위협이 다가오면, 시민들은 지도자를 지지한다.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온 행운들은 지도자의 권위를 높인다. 이 대통령은 세계적 경기 침체와 원자재 값의 가파른 상승이 경제 개혁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고 시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그리 했다면, 경제 개혁에 따르는 괴로움이 전반적 어려움에 상당히 묻혔을 터이고, 개혁에서 손해를 볼 계층의 저항도 줄어들었을 터이다. 즉 불운이 행운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북한군의 총격으로 우리 시민이 죽은 사건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대북한 정책에서 핵심은 북한 핵무기의 철폐다. 근자에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임기 안에 외교적 성과를 내려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우리로선 당연히 그런 태도에 대응해야 했다. 특히, 테러와 억류자들에 대한 언급조차 없이 북한의 '테러 지원국' 지위를 푸는 일은 반대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그 일에서 최소한의 성과를 얻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시민들의 반미 감정의 압박을 줄이는 부차적 효과까지 나왔을 터이다. 이번의 무도한 총격 사건도 물론 우리 정부의 입장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대통령은 그런 정책을 추구하지 못했다.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많은 터라, 무척 힘든 일이긴 했다. 그래도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일본이 피랍자들 문제에 관해서 줄곧 꿋꿋했으므로, 처지가 훨씬 절박한 우리의 협상력이 아주 작았다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이 대통령은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대북한 정책을 스스로 허물고 북한에 유화적 제안을 하는 처지로 몰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연설에 방해가 된 한 시민의 억울한 죽음을 국민들로부터 감춘 지도자로 전락했다. 북한 정권의 본질을 새삼 일깨워준 사건이 거꾸로 그를 초라하게 만든 것이다. (차라리 연설의 첫머리에 그 불행한 소식을 밝힐 수는 없었을까? 그리 했다면, 오히려 그의 제안에 비극적 분위기가 어려 진정성이 도드라지지 않았을까?)

    이제 이 대통령은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무기력한 정부와 방향 감각을 잃은 여당을 추슬러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위임사항(mandate)이 된 정책들을 추진해야 한다. '청계천 복원'을 성공적으로 이룬 자신의 가락을 되찾아야 한다. 저항의 기미만 보여도 정책을 포기하고 물러나는 지도자에겐 운이 따를 길이 없다.

    운은 순수한 우연이 아니다. 지도자의 태도가 바뀌면, 나라의 운도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