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델라는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조광동 /재미언론인

    이 시대 세계의 지도자로 일컫는 만델라가 외진 고향 땅에 묻혔습니다.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를 추모하는 물결이 세계적으로 넘치는 가운데 만델라의 나라 사우스 아프리카에서는 백인들과 흑인들이 함께 손을 잡고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미움과 투쟁의 적이었던 백인과 흑인이 함께 눈물과 환호의 추모를 하는 모습이 세기의 감동이 되고 있습니다.

    이 감격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조국을 떠올렸고, 오늘의 조국을 생각했습니다. 사우스 아프리카의 인종차별이 철폐된 비슷한 시기에, 그보다 조금 앞서 한국은 6.29 항쟁으로 민주화를 성취했습니다. 

    6.29 항쟁 얼마 뒤, 저는 한국을 방문해 이한열 추모 행진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조국이 민주화의 문턱으로 들어섰다는 감격으로 저는 수십만 인파의 한사람으로 서울의 거리를 걸어서 시청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뜨거운 여름 태양이 작열하는 서울 시청 광장에 서서 민주화로 비상하는 조국의 힘에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긍지를 느꼈고, 제 가슴은 열망과 감격으로 뛰었습니다.

    그러나 추모 집회가 끝날 때 쯤 광장의 인파가 조금씩 빠져 나가는 틈새에서 저는 알지 못할 외로움과 불안을 느꼈습니다. 그 불안의 그림자, 외로움의 그림자를 떨쳐 버리려고 마음을 추슬렀지만, 그 그림자는 간헐적으로 제 감격을 조금씩 긁었습니다. 그 그림자에는 성난 젊은이들의 손에 들려진 각목이 춤추고 있었고, 격한 노성이 어른거리고 있었습니다.

    미국에 돌아 온 뒤 조국의 민주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날의 불안은 조금씩 더 커졌습니다. 민주화를 성취한 젊은이들과 시민들의 용기와 기개가 점차로 절제력을 잃어 갔습니다. 사반세기가 지난 오늘, 민주화 성취의 감격은 물거품이 되고, 이념과 이념의 대결이 조국을 뒤흔들고, 증오와 분열이 나라를 공멸의 심연으로 끌어 당기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만델라가 없었고, 만델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독재의 후유증 보다 더 깊었던 인종 차별의 후유증을 치유할 수 있었던 만델라 정신이 무엇인지를 오늘의 조국은 깊이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무엇이 만델라의 정신을 이토록 높은 권위와 숭모의 위치에 올려 놓았고, 감동적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물음은 이 시대 한국인들이 더욱 곱씹고 음미해야할 화두입니다. 

    만델라는 자기 자신이 누누이 말했지만, 성인도 아니고 위대한 인격자도 아니었습니다. 젊은 시절 사진의 모습에서도 느낄수 있듯이 그는 전투적이고 과격한 성격이었고, 그의 말대로 흠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변호사였고 권투선수였던 만델라는 사우스 아프리카의 흑인 차별을 철폐하는 길은 혁명밖에 없다는 확신으로 공산주의 노선을 택했고, 백인 정부를 전복시키는 테러리스트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혁명가였습니다.

    정부 전복음모 혐의로 사형 언도를 받고 무기 징역으로 감형되어 27년간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여기서 만델라의 삶과 철학이 바꿔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달라진 변모에 대해 만델라는 “나는 감옥에서 성숙해졌다”고 술회했습니다. 비밀리에 감옥으로 가서 만델라를 만났던 디 클락(FW de Klerk) 대통령은 만델라의 인격과 크기에 마음이 움직였고, 그 길로 만델라를 석방하고 “아파타이트”(Apartheid: 인종차별)를 종식시키고, 대통령직에서 내려와 만델라 정부에서 부통령직을 맡고,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만델라는 감옥에서 고매하고 이성적이고 균형잡힌 모습으로 변했으나, 그의 사상이나 신념이 달라졌다기 보다는, 전략과 방법론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쿠바의 카스트로와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와 포옹하고, 억압받는 민중의 해방과 자유를 천명했고, 자기 사상을 수정하고 ANC(African National Congress: 아프리카 민족해방회의)와 단절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만델라는 여전히 미국 정부의 테러리스트 목록에 남아있었습니다. 부시 정부는 그가 속한 ANC와 만델라를 테러리스트 목록에서 삭제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도 부시 전 대통령은 만델라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아버지 부시 대통령 당시 국무장관을 지내고 아들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에 일등공신이었던 베이커는 만델라 만큼 매력적인 기품을 갖춘 사람을 만나질 못했다고 극찬했습니다. 

    만델라의 감동은 그가 인간으로서 가장 하기 힘든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인종 차별과 박해를 받아 온 흑인으로, 인생의 황금기 27년을 감옥에서 보냈던 사람으로 그의 가해자를 포용하고 용서한다는 것은 범인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백인 통치를 끝내면서 가장 열화같이 치솟는 기대가 비인간적 만행을 응징 청산하는 것이었고, 흑인 존엄성을 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지지자들을 실망시키면서 만델라는 압도하는 미소와, 그러면서도 단호한 음성으로 용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백인 잔재를 청산하라는 흑인들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지도자에게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가 자기 지지 기반을 실망시키는 것입니다.  

    사우스 아프리카에서 럭비는 백인들의 운동이었고, 차별의 상징이었습니다. 흑인들이 럭비 팀의 대 수술을 요구했으나 만델라는 이를 거부하면서 흑인 통치는 백인들의 상징과 유산을 뿌리 뽑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백인들을 편안하고 안심시키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만델라는 흑인 이기주의, 흑인 중심주의를 거부하고, “나는 백인 지배를 거부하지만 흑인 지배도 거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개혁과 변혁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사우스 아프리카의 “아파타이트”를 종식시키면서 백인 잔재 청산을 시행했다면 사우스 아프리카는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이고, 오늘의 안정과 화해는 없었을 것입니다. 만델라의 놀라운 면모는 분노와 증오를 절제시키고 순화시키는 인격이었습니다. 만델라는 인간을 감동시키는 힘이 무엇이고, 대 변혁기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헤아리는 슬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지혜를 실행시키는 인격이 있었습니다. 

    그는 혁명가로 살았고, 사회주의 철학을 버리지 않았지만, 인격과 미소와 절제와 관용으로 세상을 껴안았습니다. 가해자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만델라의 인격에 가해자들이 마음으로 승복했고, 감동하고 감격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함께 손잡았습니다. 만델라는 백인들의 경제 건설을 높게 평가하기 까지 했습니다. 만델라가 백인들을 응징하고 공격했다면 백인들은 자기 생존을 위해 사우스 아프리카를 떠나거나 극단적인 저항을 했을 것입니다.

    6.29 항쟁 이후, 한국의 민주화 세력은 만델라의 지혜와 통찰력이 부족했고,과신 경망했고 협량했습니다. 과거의 가해자들, 과거의 독재 세력을 용서하고 기득권 세력과 화해할 수 있는 인격과 전략적 지혜가 없었습니다. 이한열 추모 행렬 속에서 성난 젊은이들 손에 들려졌던 각목은 한국의 민주화를 극단주의 분열주의로 몰아가는 상징이었습니다. 

    승리감에 도취해 기고만장했던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 직후 자신들의 잘못에 숨을 죽이고 전전긍긍하면서 민주화 세력의 눈치를 보던 기득권 세력에게 심리적 저항감,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밟으면 꿈틀거리고 구석으로 몰리면 죽기 살기로 저항할 수 있는 생물체 본능 심리를 민주화 세력은 과소평가했습니다. 이것은 기득권 세력과 보수 진영의 단합을 가져왔고 반격의 강도를 높이게 했습니다. 나라는 대결과 분열로 찢어지기 시작했습니다.

    6.29 항쟁 후 존경과 신망을 받던 민주화 세력은 갈수록 비이성적이 되고 격해지면서 민주화의 고결한 투쟁은 빛을 바래고 조롱의 대상으로까지 비하되었습니다. 민주화 진영의 격렬함은 유신독재의 고문과 가혹함, 전두환 정부의 탄압과 무모함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했지만, 이 책임의 많은 비중을 민주화 세력 스스로가 져야합니다. 용서와 화해의 손길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내미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민주화 세력은 간과했습니다. 민주화 세력에게 만델라의 슬기와 혜안, 그의 겸손과 절제력, 만델라의 인격과 품격을 가진 지도자가 있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만델라는 자신의 한계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투쟁의 초심을 지킬 수 있는 고결한 도덕성과 높은 인격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투쟁이 권력에 있지 않고 인종차별 철폐라는 더 높은 차원에 있었다는 투쟁의 순수성을 지켰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권력의 유혹을 극복하고, 정치적 이기심 대신에 나라의 장래를 택한 만델라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에게서 해방시킨 인격적 해방자, 진정한 혁명가, 그리고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감정 대신에 이성을 택했고, 응징 대신에 용서를 택했고, 분열이 아닌 단합을 택했습니다.
    만델라의 시대는 서산에 졌지만 그가 비추었던 정신은 시대와 땅을 뛰어넘어 아침 해처럼 다시 떠 오를 것입니다.  

    이 시대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각자의 선자리에서, 아전인수가 아니라 성찰의 시각으로 만델라 정신, 만델라의 인격, 만델라의 슬기, 만델라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깊이 천착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