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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를 다룬 일제 신문.
1932년 4월 29일,
[일본군 상하이 점령 전승 경축식]이 열리던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虹口公園)에서 폭탄이 터졌다.이 폭발로 중국 대륙을 침략하던
일본군 수뇌부가 사상을 입었다.
이 [의거]의 주인공은 <윤봉길> 의사다.오는 19일 오전 11시, 서울 효창공원에서
<윤봉길> 의사 순국 81주기 추모식이
(사)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다.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윤봉길> 의사는
1919년 3.1 만세운동을 본 뒤
일제 교육을 받지 않겠다며 학교를 자퇴하고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배웠다.1927년에는 구매조합을 조직,
농민들의 경제자립을 도왔고,
독서회를 통해 문맹퇴치 운동을 펼쳤다.1928년에는 <부흥야학원(富興夜學院)> 설립했고,
1929년에는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해
농민의 단결과 민족 정신 배양,
애국심을 고취하는 활동을 폈다.그러나 농촌운동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1930년 3월 6일 중국으로 망명했다. -
- ▲ '의열투쟁'에 나서기 직전 윤봉길 의사.
1932년 초,
상하이 홍커우(虹口) 인근에서
<김 구>를 만나 [의열 투쟁]에 참여하게 된다.그러던 중 4월 29일
일왕의 생일(천장절, 天長節)을 맞아
일본군이 홍커우 공원(虹口公園)에서
상하이 점령 전승 경축식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의열 투쟁]의 기회로 삼는다.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김 구>로부터 받은
[수통 폭탄] 1개와
[도시락 폭탄] 1개를 받아
행사장에 잠입한다.행사가 시작된 뒤
<윤봉길> 의사는
[수통 폭탄]을 던져 일본의 수뇌부를 사살한다.의거 직후 현장에서 붙잡힌
<윤봉길> 의사는
5월 25일 상하이 파견군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1월 18일 오오사카(大阪) 육군 위수(衛戍) 형무소에 수감,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26발의 탄환을 맞고 순국한다.25세의 나이로 순국한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해방 후 1946년
<박 열(朴 烈)>, <이강훈(李康勳)> 선생의 도움으로
봉환되어 효창공원에 안장됐다.정부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공적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 ▲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 있는 윤봉길 의사 의거 기념비.
19일 열리는 <윤봉길> 의사 추모식은
<최완근> 보훈처 차장, 독립운동단체장, 광복회원,
기념사업회원, 학생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생 대표의 어록봉독, 기념사업회장 식사(式辭),
보훈처 차장, 광복회장의 추모사,
추모가, 헌화, 분향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