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이 쓴 칼럼 '우파정부가 좌파혁명 완수하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말이지 이념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똑같은 물 반 컵을 놓고 A는 “반 컵(이나) 남았네” 하는데 B는 “반 컵밖에 안 남았다. 누가 내 반 컵을 먹었느냐!”며 깃발을 쳐들고 나섰다. 이건 가치관, 세계관, 그리고 이념의 차이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왜곡된 민심도 섬기겠다면

    색깔론을 들먹이는 게 아니다. 경제학 교과서로 널리 쓰이는 ‘맨큐의 경제학’ 저자 그레고리 맨큐도 자신의 블로그에 좌파와 우파의 차이점을 명쾌히 정리해 놨다. 우파가 인간을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대체로 이성적인 존재’로 본다면, 좌파는 ‘정부가 보호하지 않으면 오류를 저지르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했다. 정부란 인간의 오류를 초월한 존재여서 거의 완전무결하다고 믿는 좌파로선 정부 역할은 끝없이 확장돼야 마땅하다.

    이 기준에 놓고 보면, “미국산 쇠고기가 싫으면 안 사먹으면 된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논리는 상당수 국민을 끓어오르게 했으되 우파로선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미국산 쇠고기가 시중에 나오자마자 꽤 팔리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촛불집회든 반정부시위든 이제 그만하자는 과반수의 여론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대체로 이성적인 국민’의 의사라고 할 수 있다.

    좌파는 다르다. 정부가 다른 어떤 협상도 아닌 꼭 ‘재협상’만을 통해 완전무결하게 위험을 제거해주지 않으면 국민은 꼼짝없이 먹고 죽을 수밖에 없다. 경쟁을 시장경제의 요체로 보는 우파와 달리, 좌파는 경쟁 없는 평등공동체를 꿈꾼다. 경쟁 없는 학교와 공공조직은 다 같이 망하든 말든 지켜야 하고, 자유무역협정은 글로벌 경쟁을 심화시키므로 전기를 끊고 국가 신인도를 떨어뜨려서라도 막아야 한다.

    더구나 사람은 경제 상황이 나쁘거나 정부가 부패했다고 여길 때 왼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1970년대 1차 오일쇼크 이후 유럽은 한동안 좌파정부가 휩쓸었다. 지금이 3차 오일쇼크라고 진단한 현 정부는 ‘부자 청와대’만 물갈이하고는 공공기관장을 잇따라 자기 사람으로 채움으로써 가만있던 사람까지 좌측으로 돌게 만든다. 아무도 뽑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책임지지 않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정권 퇴진 주장이 그래서 그들 사이에선 힘을 받고 있는 거다.

    여론과 정치세력이 왼쪽으로 움직이면 개방화 자유화 민영화의 경제개혁은 물 건너간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가 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좌파 민심에 놀란 정부는 민영화 보류, 정부 슬림화 연기, 가격 통제, 저소득층 통신요금 퍼주기 등 ‘우측 깜빡이 넣고 좌회전’ 정책을 바쁘게 쏟아내고 있다. 과거 정부가 5년간 용 썼던 좌파혁명을 우파정부는 취임 다섯 달도 안 돼 완수하는 형국이다.

    한물간 좌파적 정책이 국리민복을 가져온다면 쌍수로 환영하겠다. 그러나 세계를 보면 그렇지 않다. 글로벌 시장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해도 큰 정부 아닌 스마트 정부는 여전히 중요하다. 심지어 중국 정부가 152개인 국영기업을 2년 안에 80∼100개로 줄인다고 발표할 정도다. 오도된 민심까지 섬겨 권력을 부지하겠다는 정부라면 애당초, 구태여 정권을 교체할 이유가 없었다.

    고통 떠안을 아이들이 불쌍하다

    유럽에선 일찌감치 거리를 떠나 의회로 들어온 좌파가 사회민주주의를 하고 있고, 깃발을 들고 나선 좌파는 공산혁명을 완수했었다. 촛불을 들고 나왔던 이들이 그럼 내가 빨갱이란 말이냐고 분노하지 않기 바란다. 순정으로 동참했다가 자신도 모르는 새 혁명에 기여한 분들을 위해 ‘쓸모 있는 천치(useful idiot)’란 말이 존재한다.

    유럽의 사민주의도 받아들인 경쟁과 세계화를 거리의 세력은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권위도, 공권력도 포기한 정부는 마냥 끌려가는 모습이다. 이렇게 또 5년을 잃어버린다면, 대학까지 나온 내 딸이 중국인들 발마사지해서 보내주는 돈으로 암담한 노후를 보낼지도 모를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