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종수 논설위원이 쓴 '석양의 무법자'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960년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고전적인 마카로니 웨스턴영화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에는 세 사람의 무법자가 나온다. 남북전쟁의 혼란기에 무법천지의 서부에서 남군이 숨겨놓은 거액의 금괴를 찾아 사투를 벌이는 세 명의 총잡이 이야기다. 원제를 우리말로 옮기면 ‘좋은 놈, 나쁜 놈 그리고 추한 놈’쯤 되겠지만 사실 무법이 판치던 당시 서부에서 이런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법보다 총이 가깝고 정의보다 본능적인 욕심이 앞서는 살벌한 세상에서 좋은 놈과 나쁜 놈이 어디 따로 있단 말인가. 총을 잘 쏘든, 성정이 악랄하든, 아니면 사기를 잘 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숨을 부지하고 돈을 먼저 차지하는 자가 최고인 세상이다. 영화에서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은 그저 무법천지에서 살아가는 스타일의 사소한 차이에 불과할 뿐 모두가 무법자이긴 마찬가지다. 우리말 제목을 ‘석양의 무법자’로 의역한 재치가 새삼 돋보인다.

    50일 넘게 이어진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끝내 불법 폭력시위로 불길이 옮겨붙었다. 도로 점거는 기본이고, 급기야 쇠파이프와 각목, 망치와 낫이 난무하는 서울의 밤거리는 무법천지가 따로 없다. 진압봉과 방패, 소화기와 살수차를 동원한 경찰의 시위 진압작전은 수도 서울 한복판을 전쟁터로 바꾸어 놓았다.

    해만 지면 무법천지로 변하는 서울의 밤 무대엔 세 무리의 무법자가 등장한다. 먼저 ‘무책임한 자들(the irresponsible)’이다. 바로 심야의 무차별 폭력시위를 주도하는 무리다. 국민의 식탁 안전을 걱정한다며 촛불집회를 열었던 이들은 광우병 발병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인 논의는 고사하고 자신들의 요구조건이 모두 관철된 정부의 추가협상 결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교조화된 ‘재협상’만을 외치며 불법을 일삼았다. 평화롭던 촛불집회는 쇠고기 안전을 뒤로한 채 ‘정권퇴진’과 ‘청와대 진격’을 주장하는 전투적인 시위꾼들의 폭력시위로 대체됐다. 도로 점거나 야간의 폭력시위도 불법이거니와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선출된 정부를 무너뜨리겠다는 요구 자체가 불법이요, 반헌법적 발상이다. 아무런 법적 대표성도 갖지 않은 이들은 스스로 ‘국민’을 참칭하며 법질서를 유린했다. 급기야 법으로 먹고사는 변호사마저 “시위를 하다 보면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흡사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현행법을 어겨도 괜찮다는 무서운 독선이다. 이명박 정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 법치가 무너지고 나라가 망해도 상관없다는 무책임의 극치다.

    두 번째는 ‘무능한 자들(the incapable)’이다. 법질서를 사수해야 할 정부가 스스로 원칙을 허물고 불법을 방치했다. 쇠고기 안전을 염려하는 마음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해도 불법은 불법이다. 촛불집회가 광장을 떠나 차도로 내려선 순간부터 막았어야 했다. 처음엔 평화시위라며 불법을 눈감았고, 나중엔 세에 밀려 포기했다. 애꿎은 전경들이 시위대에 몰매를 맞아도, 전경버스가 시위대의 쇠파이프에 박살이 나도 속수무책이었다. 한번 무너진 법질서는 금세 다시 세울 수 없다. 정부는 시위의 폭력성이 극에 달하고서야 강경진압에 나선다고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용인할 수 있는 불법이고 어디부터가 허용될 수 없는 불법인가. 법은 그런 식으로 고무줄처럼 적용하는 게 아니다. 불법은 불법이고 합법은 합법인 것이다.

    마지막으론 ‘한심한 자들(the hopeless)’이다. 촛불집회를 기웃거리던 끝에 등을 떠밀리는 바람에 엉겁결에 폭력시위대의 맨 앞에 서게 된 통합민주당 의원들이다. 명색이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민생을 내팽개친 채 국회 밖을 떠돌며 불법을 감싸기에 여념이 없으니 참으로 딱하고 한심하다.

    이들 세 무리의 무법자들이 어울려 서울 하늘 아래 무법천지를 연출해 냈다. 영화 관객들이야 무법자들의 총 솜씨를 즐기면 되겠지만, 퇴근길이 막혀 발을 동동 구르는 월급쟁이나, 가게 문을 닫고 시름에 잠긴 식당아줌마는 도대체 무슨 죄가 있어 이 무법천지를 감당하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