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5일 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사실상 타결됐다고 선언함에 따라 호주가 우리의 11번째 FTA 협정국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특히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관심 표명 이후 FTA 협정을 맺지 않은 TPP 참여국를 상대로 한 첫 성과여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이번 성과를 계기로 한국의 TPP 참여 절차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아울러 양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타결한 첫 번째 FTA라는 의미도 있다.

    한-호주 FTA 협상은 한국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도입과 농축수산물 개방 범위 등에 대한 이견으로 진통이 예상됐으나 호주가 ISD 도입을 전격 수락하고 한국도 농축수산물에서 일정 부분 양보하면서 타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 호주 ISD 전격 수락…FTA 협상 급진전

    2009년 개시된 한-호주 FTA 협상은 2010년 5월 중단됐다가 3년 6개월 만인 지난달 재개된 바 있다. 당시 협상이 중단된 가장 큰 요인은 ISD 도입 여부였다.

    ISD는 FTA 체결국가가 협정상의 의무나 투자계약을 어겨 투자자가 손해를 봤을 때 해당 정부를 상대로 제3자의 민간기구에 국제중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일반적으로 해외투자를 많이 하는 국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해외투자를 많이 받아들이는 국가가 손해를 볼 확률이 높다.

    호주에 자원개발·제조업을 중심으로 많은 기업이 진출해있는 한국으로서는 ISD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자원 분야 등에서 대규모 외국인직접투자를 유치해온 호주는 정반대였다.

    실제 호주는 1990년대 발표한 '신통상정책 로드맵'에서 FTA 협상에서 ISD 배제를 협상 원칙으로 삼아왔다. 2004년 미국과 체결한 FTA에서도 ISD만 쏙 빠졌다.

    하지만 지난 9월 호주 정권이 진보정당인 노동당에서 보수 성향의 자유·국민당 연합으로 바뀌면서 기류의 변화가 감지됐다.

    자유·국민당은 야당 시절 호주가 외국인 투자를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서는 ISD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호주 정권 교체 이후 한-호주 FTA 협상이 전격 재개된 것도 이런 기류와 맞물린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유·국민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호주가 한-호주 FTA 협상에서 ISD 수락을 긍정 검토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고 설명했다.

    우태희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은 "한-호주 FTA 협상이 공식 재개되기 전 지난 9월 열린 예비 협상에서 호주측이 ISD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자세를 보임에 따라 본협상에서 이를 줄기차게 요구했고 결국 이를 관철시켰다"고 전했다.

    ◇ 호주산 쇠고기 한국 공략 거세질 듯…자동차는 완전 철폐

    이번 한-호주 FTA에서 또하나의 관심사는 호주산 쇠고기 수입이다. 지난달 기준으로 호주는 국내 수입 쇠고기 시장에서 56.9%의 점유율로 미국(38.9%), 뉴질랜드(3.5%)를 제치고 1위를 점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호주는 농축수산물 가운데서도 쇠고기시장 개방에 큰 관심을 갖고 우리 측에 조기 개방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단이 가져온 결과를 보면 양측은 FTA 발효 이후 쇠고기 수입 관세를 매년 2∼3% 단계적으로 낮춰 15년차에 완전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한-호주 FTA가 공식 타결되면 양국 의회의 비준을 거쳐 늦어도 2015년에는 발효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현재 40% 수준의 쇠고기 수입 관세가 2030년에는 완전 사라진다는 얘기다.

    이는 한-미 FTA보다는 조건이 다소 나은 것이다. 한-미 FTA는 협정 발효 이후 12년차에 완전 철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호주도 애초 한-미 FTA를 근거로 12년차 완전 철폐 주장을 굽히지 않았으나 15년을 주장한 우리측 입장을 받아들였다.

    아울러 정부가 허용한 일정 물량에 대해서만 낮은 관세를 매기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고관세를 적용하는 저율관세할당(TRQ) 물량도 한-미 FTA보다 낮은 수준에서 방어했다고 협상단은 밝혔다.

    쌀·분유·과실(사과, 배, 감 등)·대두·감자·굴·명태 등 주요 민감 품목은 양허에서 제외했다.

    김덕호 농림축산식품부 국제협력국장은 "한-미, 한-EU FTA보다 훨씬 보수적인 입장에서 협상 결과가 도출됐다"며 "당초 우려했던 그런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에 이어 호주산 쇠고기까지 들어올 경우 국내 농가의 생존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자동차의 경우 중소형 승용차 등 주력수출 품목의 관세를 FTA 발효 즉시 철폐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우리에게 유리한 수출 조건이 형성됐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호주는 태국과 FTA가 체결돼 있어 일본 도요타가 태국공장 생산물량의 우회 수출로 가격경쟁력을 유지해왔다"며 "한-호주 FTA로 관세가 즉시 철폐되면서 이제 우리도 일본과 붙어볼 만하다"고 말했다.

    호주 수입차 시장에서 한국산 점유율은 9∼10%로 20∼30%인 일본에 절대 열세에 놓여있다.

    개성공단의 한국산 인정과 관련해서는 한-미, 한-EU FTA와 같이 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만들되 연 회의 개최 수를 한 차례에서 두 차례로 늘렸다. 또 개성공단이 역외 가공 대상임을 각주로 명시해 위원회 운영의 효율성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