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에 이 신문 최보식 사회부장이 쓴 <'너무 부지런한' 우리 대통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이 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인 제 자신이 모든 것을 먼저 바꿔나가겠다"고 했을 때, 불경스럽지만 '내기'를 걸고 싶었다. "당신 몸에 밴 부지런함을 과연 바꿀 수 있을까요?"라고.

    장담컨대 다른 건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이것만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번 방미(訪美) 때다. 수행한 한국노총위원장에게 "그래 같이 가보니 대통령의 노동관(觀)이 믿을 만하더냐"고 물으니, 다른 소리를 했다.

    "확실히 믿게 된 것은 대통령의 '체력'이다. 열 몇 시간 걸리는 비행기 안에서 쉬지 않고 참모회의를 소집하더라. 난 구경만 해도 입이 벌어지는데, 이분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아마 죽을 지경일 것이다."

    따라간 청와대 출입기자도 비슷하게 얘기했다. "기사 쓸 시간도 주지 않아 노트북을 안고 씩씩거리며 뛰어야 했다"고. 이런 일정 속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바쁘게' 타결됐던 것이다.

    대통령과 연(緣)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잠이 없는 분은 처음"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분"이라며 그 부지런함에 경탄을 금치 않는다. 물론 종국에는 "정말 힘들어 미치겠다"로 끝나기 일쑤다.

    그런 부지런함으로 '점수'도 많이 땄다. 일산 아파트 내 초등생 성폭행 미수 사건이 벌어졌을 때, 대통령이 몸소 관할 경찰서를 찾아간 것은 경찰 치안총수도 생각 못한 발걸음이었다. 방문 직후 범인이 붙들렸고, "대통령이 검거 일등공신"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이 한 건(件)으로 총선 때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7석을 더 얻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몸만 부지런한 것이 아니라 말씀도 부지런하다. 그 '못 말리는' 부지런함은 온 사방의 국정(國政)에 관여하지 않는 데가 없다. 각료와 참모들의 할 일이 없어질 지경이다. 대불공단의 '전봇대'를 시작으로 툭툭 던지는 말씀들이 시중에는 화제가 되고 관계자들은 혼비백산한다.

    "내가 지방에 다녀보면, 차가 몇 대 다니지도 않는 도로에 큰 톨게이트 건물을 지어놓고 사람이 12명에서 14명 근무하고 있다. 하루에 차가 220대인가 통과한다고 한다." 도로공사에서는 문제의 그 톨게이트를 찾느라 난리를 쳤다.

    "용인시청이 새로 지어 서울시청보다 좋더라. 관청 건물은 민간건물보다 너무 좋게 지으면 안 된다" "축사를 짓는데 소방법 때문에 까다로워서 못 짓겠다고 하더라. 소방법에 의해서 비상구 표지판을 붙였다고 해서 소가 그걸 보고 나갈 것도 아닌데" "제주도는 비행기가 오후 9시면 끊긴다. 24시간 비행기를 띄우면 (골프) 관광객이 늘어날 것"….

    취임 80일이 좀 지났는데, 대통령 어록(語錄)은 넘쳐난다. 게으른 것보다야 부지런한 것이 낫지만, '과도한' 부지런함은 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맹자(孟子)의 말을 빌리면, "마음 자세는 칭찬할 만하나 이는 정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상대한다면 날이 아무리 많아도 모자란다(惠而不知爲政 每人而悅之 日亦不足矣)"고 했다. 정강이 털이 닳도록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지도자의 역할은 아니라는 뜻이다.

    마침 며칠 전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가 이런 보도를 했다.

    〈2008년판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에 비해 연평균 560시간(하루 8시간 근무 일수로는 70일)을 더 일한다. 그런데 OECD에서 가장 열심히 일을 하는 이 국민들이 일인당 국민소득에서는 23위로 한참 뒤처져 있다. '불도저'로 알려진 신임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젊은이들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교사들은 더 열심히 가르쳐야 하고, 근로자들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역설한 적이 있다.〉

    대통령의 '못 말리는' 부지런함이 그쪽에서도 뉴스가 되기 시작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