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2일 오피니언면 아침논단에 실린 박효종 서울대 교수의 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벌거벗고 있다.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하는가 하면, 일부에선 탄핵 서명까지 벌어지고 있다. 정권 초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총선까지 이겨 자신감을 갖고 국정에 임해야 할 정권이 왜 이런 수모를 겪게 되었는가. 이유는 많다.

    권력을 빼앗겨 열패감을 이기지 못한 세력들이 전방위 반격에 나서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먹거리 등 일상적 소재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미처 그 중요성을 헤아리지 못한 정치적 불감증의 탓도 있다. 또 부자의 체취가 느껴지는 내각 구성도 원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난국의 근본 원인은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흔히 '이끎'을 뜻하는 리더십(leadership)은 '따름'을 의미하는 '팔로십(followship)'과 대비되지만, '이끎'에는 두 가지가 있다. 홀로 이끄는 것과 더불어 이끄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 이 대통령의 스타일은 전형적인 '나홀로 리더십'이다.

    물론 '나홀로 리더십'이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고대의 알렉산더대왕처럼 홀로 백만 대군을 지휘하여 백전백승한 영웅도 있다. 그런가 하면 번득이는 지혜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역발상의 상품을 출시하여 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린 기업 경영인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리더십은 다르다. 대통령직은 홀로 마라톤을 뛰거나 100m 단거리를 뛰는 육상선수와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축구팀이나 야구팀에서 활약하는 선수와 같다. 축구경기에서 골을 넣으려면 다른 선수로부터 도움을 받는 팀플레이가 필수적이다.

    역량이 뛰어나다고 하여 수비수는 물론 공격수로 종횡무진하게 되면, 결국 힘이 부쳐 자살골을 먹기에 십상이다. 일찍이 로마에서는 국정을 책임지는 집정관이 있었다. 로마인들은 이를 '콘술(consul)'이라고 불렀는데, 그 어원은 두 개의 수레바퀴에서 나온 것이다. 마차를 움직이려면 'sul', 즉 하나의 바퀴로는 안 되고 두 개의 바퀴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명의 집정관이 있었고 홀수 날과 짝수 날을 번갈아 가며 다스렸다. 고대의 공화정과 현대의 민주정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국정운영에서 한국의 대통령직이 로마 집정관의 역할과 굳이 다를 것은 무엇인가. 두 명의 대통령이 홀짝제에 따라 번갈아 다스릴 필요는 없으나, 정치적 파트너십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왜 박근혜 전 대표를 끌어안지 못하는가. 정권교체를 위해 협력했던 두 사람이 정권교체가 되었다고 해서 갈라질 이유가 있는가. 작은 정치 영역에서 파트너십을 실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보다 훨씬 큰 국민통합을 말할 수 있겠는가. 국정운영은 대통령 한 사람이 크고 작은 것을 모두 챙기기보다 역할을 분담하는 '협치(協治)'의 개념이다. 협치란 산소와 수소가 만나 물이 되는 이치이며, 나비가 꽃가루를 묻혀 꽃을 번식시키는 '덧셈의 통치'를 뜻한다.

    이명박호(號)는 장애물이 없는 '블루오션'을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암초가 산적해 있는 '레드오션'을 항해하고 있다. 레드오션을 항해하는 와중에 만나는 각종 도전들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히드라처럼 그 목을 자르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생기는 습성을 갖는다. 대통령이 헤라클레스와 같은 초인적 존재가 아닌 바에야 어떻게 혼자서 히드라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대운하는 청계천과 같은 것이 아니며 한미 FTA는 버스·지하철 교통망 연계와 같은 것이 아니다.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나 '읍참마속(泣斬馬謖)'이 요청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 전 대표와의 만남을 계기로 MB의 '나홀로 리더십'이 '협력의 파트너십'으로 전환될지 주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