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5일 사설 <정부는 '쇠고기'를 '미선이·효순이 사건'처럼 키울 셈인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서울 시내에서 2일과 3일 연이틀 미국산(産)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대규모 촛불 시위가 열렸다. MBC PD수첩이 '한국인 94%가 인간 광우병에 걸릴 수 있는 유전자를 갖고 있어 영·미(英·美)인보다 감염 위험성이 두세 배 높다' '미국 쇠고기를 먹는 사람은 실험동물과 같다'는, 광화문 네거리에 휘발유를 끼얹는 식의 보도를 내보낼 때부터 우려했던 불길이 바로 그 장소에서 솟구치고 있다. 이러다간 2002년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졌던 사건처럼 굴러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까지 갖게 된다.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난달 18일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후 정부가 과연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일을 하지 않았는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사태를 진단하는 능력과 사태에 대응하는 능력의 부재(不在)를 절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MBC PD수첩 프로그램이 방영된 것은 지난 4월29일이었다. PD수첩 내용은 4월25일 이미 알려진 상태였다. 정부가 그때부터라도 PD수첩 보도의 비과학적(非科學的) 선정적 내용을 과학적·논리적으로 반박만 했더라면 '미국의 쇠고기를 먹기보단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어느 탤런트의 미친 발언이 인터넷을 주름잡는 사태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정부는 신문들이 TV의 도를 넘은 광우병 부풀리기를 지적하고 나서야 국민을 안심시키겠다며 설명회를 가졌다. 4일 여권의 긴급 당정회의도 뒷북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와대와 정부 모든 부처, 그리고 여당이 마치 합심(合心)이나 한 듯 때를 놓치고 방법을 그르쳐 일부 TV의 무책임한 불장난으로 그쳤을 사태를 대형(大型) 화재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TV 등 일부 매체(媒體)가 유언비어의 소재(素材)를 제공하고, 거기에 일부 선동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들, 그리고 이 사태를 반미(反美)운동의 운동장으로 삼으려는 세력의 움직임이 합쳐져 판단력 없는 중·고교 학생들까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밀려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6년 전 효순·미선양 사건과 비슷한 모습이다.

    미국 쇠고기 반대운동을 벌이는 세력들의 거짓과 논리적 모순과 위선(僞善)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 국민 1000만 명 가까이가 매년 광우병이 위험하다는 미국과 유럽 일본 지역에 태연히 관광 여행을 다녀오고 있다. 광우병 부풀리기를 한 사람들과 그 부풀리기에 올라탄 사람들도 그 대열에 끼어 맛있게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먹고 왔다. 지금 쇠고기 재협상 주장을 펴고 있는 민주당 등 야당의원들도 국정 감사차 뉴욕에 가선 유엔 한국 대사관저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원료로 마련한 갈비와 육개장을 맛있게 들었다. 이 많은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론자 가운데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 가 있는 자녀들에게 '쇠고기를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는 사람이 있었다는 소식은 여태 한번도 없다. 자기 자식들에겐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먹이면서도 다른 국민들에게만은 먹이지 않겠다면서 쇠고기 수입반대운동에 팔을 걷어붙인 대한민국 위선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정부는 밀면 넘어지고 찌르면 구멍이 뚫릴 이들의 거짓과 논리적 모순과 위선에 대해 제때에 제대로 된 공박 하나 못한 채 여기까지 밀려왔다.

    한마디로 국정의 예견(豫見)·조정·감시·통제 기능이 작동 정지상태인 것이다. 청와대에조차 국가적으로 대처해야 할 우선순위가 무엇이고 어떤 일이 무슨 파장을 일으킬 것인지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강구하려는 사람이나 조직이 있는지 의문이다. 인사 난조(亂調)를 되풀이하면서도 그대로 흘러가는 패턴이 여기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넋을 놓고 있다가 앞으로 무슨 암초에 부딪혀 이 정부 국정운영에 구멍이 뚫리고 가라앉게 될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