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 '조선데스크'에 이 신문 김낭기 인천취재본부장이 쓴 <'정치'가 과학을 누르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요즘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광우병 논란을 보면 과학으로 접근해야 할 일조차 '정치'를 앞세우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사실 광우병 문제뿐이 아니다. 한반도 대운하 문제도 그렇고, 몇 년 전에 있었던 천성산 경부고속철도 터널 문제나 새만금 문제, 전북 부안군의 방폐장 유치 문제도 그렇다. 우리 사회 전체를 극단적 대립과 갈등 속으로 빠져들게 한 이들 사안의 배경에는 매사 과학보다 정치를 앞세우는 일부 세력과 사회풍토가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으로 불거진 광우병 논란은 기본적으로 과학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과학의 기본은 객관적 사실, 검증 가능한 사실에 입각한 논의다. 감정이나 지레짐작, 선입견에 따라 휩쓸리는 것은 과학적 접근과 거리가 멀다.

    예컨대 미국산 쇠고기 중 주로 광우병이 걸리는 부위는 어디인지, 이 부위만 잘라내면 안전한 것인지, 미국사람도 살코기뿐만 아니라 다른 부위도 먹는지, 광우병이 인간에게 감염되는 경로와 발병 과정은 어떤지, 검역 과정에서 광우병 우려가 있는 쇠고기를 얼마나 걸러낼 수 있는지, 국내의 광우병 진단과 치료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등등 과학적으로 따지자면 한이 없다. 광우병이 걱정된다면 이런 기본적인 의문점들에 대해 객관적이고 검증된 자료와 사실을 근거로 토론도 하고 점검도 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반대파들은 대뜸 선동적인 주의주장부터 펴고 나왔다. 바로 '정치'를 앞세운 것이다. "검역 주권 포기" "인간 광우병" "국민 말살" "미국에 조공(朝貢) 바치기" 등등이다. 이런 주장은 광우병 논란에 대한 정밀한 과학적 검증과 토론을 거쳐 전문기술적인 판단이 선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게 순서다.

    정치를 앞세우는 행태는 곧바로 편 가르기로 나온다. 정책적 선택과 판단의 문제를 도덕적 선악, 정의와 불의의 문제로 보고, 자신은 선이요 정의이고 반대편은 악이고 불의라고 몰아붙인다. 상대방을 타도 대상으로 여기니 정상적인 대화와 토론이 가능할 리 없다. 남는 것은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뿐이다. 광우병 사태는 지금 이 코스대로 달리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걸핏하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합리적인 토론문화의 부재, 실제보다 명분과 주의주장을 중시하는 일부 세태, 과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몸에 밴 시위문화 등이다. 어떤 문제든 정치적 쟁점으로 몰고가 편 가르기를 하고 이를 기화로 특정 이념을 선전선동하려는 음모꾼들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쪽은 정확한 정보 제공과 국민 설득 노력을 게을리 한 정부다. 반대가 심할수록, 그 반대파가 선전선동으로 나올수록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이런 노력과 자세다. 이번 광우병 논란에서도 정부가 진작에 과학적이고 검증된 정보를 제공하면서 국민을 설득하려 했다면 반대의 강도와 규모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토론의 목적은 자기의 주장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이를 철회하면서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고, 논쟁의 목적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라고 한다. 과학으로 접근해야 할 일에 정치를 앞세울 때 토론은 설 자리가 없다. 사생결단식 논쟁만이 판을 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딱 그런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