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포럼'에 예술원 회원인 극작가 신봉승씨가 쓴 <'친일사전'- 역사를 비틀고 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신의 손도 역사에 미치지 못한다는 준엄한 가르침이 있다. 역사는 내버려두어도 언제나 제 길을 가기 때문이다. 간혹 독재자의 오만이 역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어도 역사는 단 한 번도 그들 곁으로 다가간 적이 없다. 그러므로 역사는 있는 그대로를 적으면 되고, 그렇게 적힌 단초를 읽으면서 후대의 사람들은 지나간 시대의 공과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4월29일 ‘친일 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477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번에는 2005년 8월 1차 발표 때의 3090명보다 1686명이 더 늘었다. 선정 배경 등을 둘러싼 시중의 논란이 분분하다. 그런데 이날 기자회견장에 내걸린 구호가 ‘친일인명사전편찬 국민의 힘으로’였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식견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오만을 과신하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국민의 대다수가 그 일을 볼썽사나워하는 마당인데 ‘국민의 힘’ 운운은 결국 다급해진 그쪽의 사정이 아니고 무엇인가. 위 두 단체도 자신들이 연구한 성과를 논문이나 책으로 발간한다면 아무도 탓하는 사람이 없을 것임을 잘 알 텐데도, 굳이 외면하는 국민의 이름을 끌어들이면서까지 ‘친일인명사전’으로 발행해 역사를 비틀려는 저의가 무엇인가.

    일본을 대표하는 시나리오작가 하야사카 아키라(早坂燒)의 야심작 중에 ‘전함 야마토(戰艦大和)’라는 방대한 대하소설이 있다.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중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기함이었던 ‘전함 야마토’가 어떻게 기획, 건조됐으며,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됐는지를 당시의 해군부 비밀문서와 군 수뇌부의 일기를 인용하면서 다큐멘터리 터치로 쓴 당당 20권짜리 야심작이다.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이 조선인 무용가 최승희다. 대정천황(大正天皇)이 죽고 그 시신을 실은 기차가 지나가는 역 구내의 플랫폼에는 허리를 굽혀서 흐느끼는 일본인 동료들이 즐비한데, 오직 한 사람 최승희만이 뒤로 돌아선 채 꼿꼿하게 서 있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적이 놀라고 감동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최승희가 이번에는 동족들에 의해 친일파로 매도된다. 거액의 기부금을 냈다는 죄목이다. 전쟁중에 그만한 기부금도 내지 않고, 더구나 조선인 무용가가 극장 공연을 할 수 있겠는가.
    또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됐을 때, 위암 장지연 선생은 ‘시일야방성대곡’을 써서 조선 민중의 가슴에 울분과 통한을 출렁거리게 했다. 그 통렬한 글은 죽기로 작정하지 않고서는 쓸 수가 없다. 그런 위암 선생이 이른바 친일하는 글을 썼다면 그 배경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실하게 규명하지도 않고는 친일행위로 단정할 수가 없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36년 세월 동안 이 땅에서 살아온 조선 백성들을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으로 나눠선 안 된다. 1945년, 나는 열네 살 소년으로 매일 아침 일왕이 있다는 동쪽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혔고, 학교에서는 죽어도 일본말을 써야 했으며, 일본 황국의 신민임을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나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매질한 분은 조선인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그 친일 명단에 나도, 그 선생님도 없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만에 하나라도 100년 쯤 뒤에 이 땅에 태어난 청소년들이 이 터무니없는 ‘친일인명사전’을 읽으면서 친일의 실체를 판단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생긴다면 이 사전을 편찬한 사람들의 큰 죄악도 다스릴 길이 없게 된다. 아직도 늦질 않았다. 두 단체에서는 사전편찬을 중단하고 연구 결과를 논문집이나 친일사례집으로 발간하면 사견으로 역사를 가공하고, 비틀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