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에 서병훈 숭실대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삼전도(三田渡)는 조선시대 한강 상류에 있던 나루터다. 서울과 광주의 남한산성을 이어주는 길목으로, 오늘날로 치면 서울 송파구 삼전동 부근이 된다. 이곳 삼전도에는 병자호란의 생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인조는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한 끝에 청나라와 굴욕적인 강화 협정을 맺어야 했다. 1637년 1월 30일의 일이다.

    그로부터 150년쯤 지나 조선 정조 때의 문신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남겼다. 박지원은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는 우리 측 사신의 일원으로 북경과 열하를 2개월 정도 여행한 뒤 이 책을 썼다. ‘비 갠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드리워져 손으로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반짝거렸다’는 구절을 보면 그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필치가 현대의 어느 작가 못지않다.

    연암은 비록 청나라가 ‘선진 강국’이기는 하지만 학문과 예의범절에서 우리가 오히려 앞선다는 자신감을 여러 차례 피력한다. 그곳 선비나 관리들을 만날 때도 아주 당당하다. 그가 ‘열하일기’ 곳곳에서 요동과 여진이 원래 우리 땅이었음을 고증하고 확인하는 모습 또한 대단히 인상적이다. 박지원은 ‘선비들이 이런 경계를 제대로 밝히지 못해 전쟁 한 번 치르지 않고 조선의 강토가 줄어들었음’을 통탄하기도 한다. 오늘날 고구려사를 둘러싼 이른바 ‘동북공정’ 논란을 미리 예견이나 한 듯하다.

    국력 차이가 빚은 역사의 비애

    그런 연암도 국세(國勢)의 차이에 따른 민족적 비애감은 다스리기 힘들어했다. 만주에 있는 조그만 도시 책문(柵門)의 번화한 모습에 ‘한풀 꺾여 그만 발을 돌릴까’ 하는 상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삼전도 비극’과 박지원의 ‘청나라 견문’을 뒤로한 채 우리 민족은 ‘단군 이래 최고 번성기’를 맞고 있다. 작년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3위로 떨어졌다고 한탄하지만 세계 181개국 중에서 그 정도 위상이면 결코 녹록하지가 않다. 인도와 러시아, 브라질 등이 우리보다 조금 앞서기는 하지만 인구가 우리보다 몇 배 더 많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이 정도나마 된 것을 그야말로 ‘천지신명’께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산으로 남아 있다.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중국이기에 우리에게 끊임없는 도전과 시련을 안겨준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폭력사태’에 대해 중국 정부는 사과할 마음이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북한의 성화 환영행사에 더 주목한다. 북한 당국은 ‘베이징 올림픽 성화를 맞이하기 위해 평양 도로를 아스팔트로 새로 포장하고 주민들은 새벽에 몰려나와 거리를 물걸레로 닦았다’. 이런 ‘지극정성’에 대해 중국 언론은 “북한이 중국과의 우정을 증명해 보였다”며 흡족해한다. 이것이 중국이다. 그들은 이런 눈으로 한반도를 바라본다.

    중국 정부는 차관급 인사를 북한 대사로 보내지만 주한 중국대사는 외교부 부국장 출신이다. 무려 세 직급이나 차이가 난다. 북한처럼 ‘알아서 엎드리면’ 환대를 하지만 우리가 대등한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중국의 고압적인 태도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저자세 외교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우리나라 경제는 이제 중국을 떠나 생각할 수가 없다. 수출과 수입 모두 중국이 우리의 최대 상대국이다. 미국과 일본은 한참 처지는 2, 3위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총소득(GNI)에 대한 수출입 비중이 94%나 되는 우리 사정에 비추어 본다면 중국의 일거수일투족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흡인력에 우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문화-정신의 힘 키워 극복하자

    연암은 청나라의 강성함에 가슴앓이를 하다가 곧 마음을 다잡는다. ‘석가여래의 밝은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핀다면 모든 것이 다 평등할진대, 시기와 부러움은 절로 사라질 것’이라며 위안을 삼았다. 우리의 정신적 잠재력을 믿었다. 백범 김구도 우리의 물리적 한계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서 문화의 힘으로 일류국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중국에 대해 턱없는 우월감을 가지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두려워할 것도 없다. 중국의 도전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것이 곧 우리가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