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경제초점'에 이 신문 박정훈 경제부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 논란이 '괴담(怪談) 살포' 국면으로 번졌다. 인터넷 등에 쏟아지는 광우병 괴담들을 보면 차마 글로 옮기기 힘들 정도다. 지난해 세계 11개국에서 141건의 광우병이 발병한 속에서도 미국에선 한 건도 없었다. 그런데 왜 미국산 쇠고기만 위험하다고 할까. 

     
    쇠고기 수입 반대 진영의 A교수에게 물었더니 준비된 답변이 있었다. 요약하자면 '광우병 전과론(前科論)'이다. 미국은 2006년 이전에 3건의 광우병 '전과'가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재발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말이 틀린다고 100% 장담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현대 의학은 광우병의 '정체'를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한·미 쇠고기 협상에 졸속 시비가 일고 있다. 수입 반대 진영의 문제 제기로 쇠고기 위생이 더 안전해진다면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반대 진영 논리엔 치명적인 자가당착이 있었다. 매년 1000만명 가까운 국민이 미국·유럽 같은 '광우병 전과'가 있는 나라에 여행 가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 진영 논법에 따르면 이미 많은 국민이 밖에서 '위험한 쇠고기'를 먹고 있다. 그런데도 모른 척한다는 얘기가 된다.

    황당한 논리로 수입 반대…검역 등 실질적인 논의를

    반대 진영은 다음의 통계들에 침묵한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처음 발견된 2003년 이후 미국을 다녀온 국민이 500만명에 달한다. 한 사람이 몇 번씩 여행한 경우를 뺀다 해도 몇 백만 명이다. 이런 엄청난 숫자가 미국에 가서 아무런 제지 없이 스테이크며 햄버거를 먹었다.

    미국엔 또한 11만명의 우리 유학생과 215만명의 교포가 살고 있다. 미국 쇠고기가 그렇게 위험하다면 반대 진영은 왜 이들에게 경고하지 않았을까. 같은 미국 쇠고기라도 한국에선 위험하고 미국에서 먹으면 괜찮다는 말일까.

    뉴욕에 사는 K특파원에게 현지 분위기를 물어보니 예컨대 이런 식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간 여야 의원들이 유엔 주재 대사관저에서 만찬을 했다. 당시 메뉴로 갈비·육개장이 나왔고, 물론 미국 쇠고기가 사용됐다. 하지만 문제 제기를 한 의원은 여·야 어느 곳에도 없었다.

    뉴욕 코리아타운의 30여개 한인 식당은 한국 여행자들로 북적거린다. 이들 식당의 주력 메뉴 역시 미국산 갈비·등심이며 불고기다. K특파원은 "국회의원이든, 관광객이든 광우병 걱정을 하는 한국 사람을 본 일이 없다"고 전한다.

    미국만 그럴까. 지난해 260만명이 여행 간 일본 역시 광우병 '전과'가 있는 나라다. 미국보다 많은 34건의 광우병이 발병했고, 인간 광우병 환자까지 나왔다. 그렇지만 누구도 일본 쇠고기를 조심하라고 하지 않는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은 대개 '광우병 전과국'이다. 프랑스·독일·스페인·스위스·캐나다 등에서 모두 광우병이 발생했었다. 유학생이 많이 가는 영국에선 무려 18만여건의 발병 사례가 보고됐다.

    그러니 수입 반대 진영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랑스러운 아들·딸들을 '광우병 위험지역'에 유학 보내고, 배낭여행 보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걱정은 지나친 것이다. 그렇다고 쇠고기를 안 먹고 살 수도 없다. 정답은 무얼까. 현재로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글로벌 기준을 따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국제수역사무국(OIE)에 따르면 미국은 '광우병 위험통제국'에 해당된다. 광우병 위험을 잘 관리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뜻이다. 즉 일본·프랑스산 쇠고기를 먹어도 된다면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서 안 될 이유가 없다. 반대로 미국 쇠고기가 위험하다면 일본·프랑스 쇠고기도 위험하다고 해야 맞다.

    그렇지만 반대 진영은 미국 쇠고기만 찍어 괴담을 쏟아낸다. 그 결과 검역 주권이며 안전성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같은 정말 중요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그들의 진정성도 의심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