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4776명의 명단을 발표하자 그 후손과 기념사업회 등이 ‘명예훼손’에 강한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당사자들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후손이 선조를 아무리 변호해도 ‘낙인(烙印)’의 피해를 이미 본 뒤다. 억울한 피해자를 한 사람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친일 문제에 대한 판단을 학계의 체계적이고 실증적인 연구에 맡겨야 한다.
    그럼에도 검증능력이 떨어지는 사적(私的) 단체가 자체적으로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명단’을 만들어 공개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4개월 동안 이의를 제기하면 받겠다고 한다. 대체 누가 이들에게 그런 자격과 권한을 줬는가. 후손이나 기념사업회 등으로서는 국민이 공인할 수준의 기관도 아닌 단체들을 상대로 시비를 가린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고 난감할 것이다.

    이번 명단은 1차로 발표됐던 3090명 외에 새로 1686명을 추가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선정기준은 최소한의 형평성도 갖추지 못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이들은 “친일 행위로 봐서는 그리 대단한 게 없다”면서 “하지만 일본 군대에서 위관급으로 있었던 사람을 친일인사로 보는 기준에 따라 명단에 올렸다”고 설명했다. 국가 발전과 민생 향상에 기여한 공적으로 ‘국민이 존경하는 지도자 1위’에 올라있는 인물을 이런 식으로 멋대로 재단한단 말인가.

    문제의 단체들은 문화예술계 인사에게는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해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고 하지만 학계에선 정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문화인에게 창작 활동은 생명과 같은 것이고, 당시는 어떤 형태로든 일제에 협조하지 않으면 작품 발표 기회가 봉쇄됐던 특수한 상황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단체들은 과거사 정리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좌(左)편향적 역사관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이번 발표는 자의적으로 과거를 향해 칼을 휘두르는 횡포나 다름없다. 일제하 인물들에 대해서는 식민통치라는 강압적 체제 속에서 어디까지를 친일행위로 봐야 하는지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진 뒤 평가하는 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