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청문회도 끝나기 전에 장관 후보자 3명이 줄줄이 '자진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한 책임론이 여권 내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부실한 검증 작업과 국민 정서와 너무나 동떨어진 인선이 막 출범한 이명박 정부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국정 공백을 자초했다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좋지않은 영향을 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이번 인선을 둘러싼 여권 내 책임공방이 벌어질 개연성도 높다.

    지난 24일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27일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와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가 땅 투기, 자녀 이중국적, 논문 표절 의혹으로 동반 사퇴했다. 또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은 여러 건의 논문 표절 의혹이 끊이지 않는 등 자진사퇴한 인사들 외에도 부적격자로 거론되는 후보자들이 남아있어 추가 사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벌써 "다음 낙마자는 누가 될까"라는 자조섞인 말도 여권에서 나온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로 인선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와 현 상황은 거리가 한참 멀다.

    의혹이 제기된 이후 "부부 교수가 30억원 정도 재산이라면 양반(남주홍)" "암이 아니라고 남편이 오피스텔을 축하선물로 줬다(이춘호)" "땅을 사랑할 것일 뿐 투기는 아니다(박은경)" 등 당사자들이 뱉어놓은 해명은 국민적 분노를 더욱 부채질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도대체 뭘 검증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국민정서를 이렇게도 모르는 정부라는 것을 자백한 꼴이 아니냐"고 개탄했다.

    책임론에 직면한 인사들은 대선 이후부터 내각과 비서실 인사 검증을 담당했던 인선팀이다. 정두언 임태희 의원, 류우익 대통령실장,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비서실 총괄팀장 등이 포함된다. 박 팀장은 장관 후보자 발표에 앞서 "인사 검증을 위해 5000여명의 인물을 검토했다"면서 "개인정보 제공동의서를 받아 정밀검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밀검증에는 후보자 본인 뿐만 아니라 친인척의 부동산 등 재산내역, 범죄사실, 탈세여부 등 전방위적 검증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부 후보자의 경우 이 대통령이 직접 면담했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의 인사스타일도 도마 위에 올랐다. 소수 측근 그룹에 국정을 이끌 내각 인선을 전담시키며 '늑장인사' '밀실인사'라는 비판을 받아오던 터였다. 또 정부 출범 이전 검증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보안만을 강조해 여론을 통한 검증은 전혀 거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관계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라며 "드러난 문제점을 보면 국민정서와 떨어져있는 인선이었다. 또 야당이 총선을 노리고 부각한 면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벌써 3명의 후보자가 낙마한 마당에 새로 임명하는 인사는 정말 국민의 실망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이번 사태를 "이명박 정부 출범 전 인사검증시스템이 제대로 안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일"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나 대변인은 "향후 공직인선 때에는 인사검증시스템을 엄격히 가동해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으리라고 확신한다"며 "매우 안타깝지만 (자진 사퇴가) 다행스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강재섭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이 대통령과 가진 청와대 조찬 회동에서 "일부 장관 후보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완곡하게 지적하며 자진 사퇴를 건의했다. 이같은 건의에 이 대통령은 오전 내내 고심을 거듭하다 두 후보자가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자 "새 정부 출범을 위해 두 분이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며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이동관 대변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