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시론 <한나라당 ‘웰빙 공천’의 종착역>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빽! 줄! 또 빽! 줄! 오로지 ‘빽공천’ ‘줄공천’으로 국회의원 공천을 100% 나눠먹는 것은 한나라당이 집권당 사상 처음이다. 대통령 이명박과의 경선 캠프 인연, 서울시청 인연, 실세들과의 인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무슨 무슨 위원 명함을 들이댈 수 없거나 박근혜가 노발대발 저항할 인사가 아니라면 한나라당 공천받아 금배지를 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뻔하다. 이명박맨들로 전국 245개 지역구 중 90%이상이 채워질 것. 외부 신진 인사들에 대한 영입의 문은 처음부터 열려고도 하지 않았다. 경선 때 줄선 사람들로도 미어터지니. 그러니까 공천 받으려면 실력자들한테 줄서고 빽 동원하라고? 200석 이상 얻을 텐데 뭘?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대로 기고만장한 나눠먹기식 공천으로 전국을 채운다면 4월9일 이변에 놀랄 것이다. 왜? 우리 국민은 권력의 기고만장에 단 한번도 심판하지 않고 넘어간 적이 없다.

    벌써 국민은 이명박에게 대선 때 480만표의 격차를 벌여준 데 대해 후회하기 시작했다. 불과 두달 만에 민심이 싸늘하게 돌아설 조짐들. 그렇게 뜸들였던 국무총리 인선에 에이구, 하며 실망했다. 박정희 정권 이래 5개 정권에서 살아남은 불사조의 화려한 복귀. 역시 젊은 시절 교수 직함을 부풀린 것이 밝혀지고, 부동산 투기 의혹이 튀어나오고, 아들의 ‘외유 병영 생활’이 나타나고. 이명박을 찍었던 보수·우파들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승리했다”는 노무현의 악담이 옳았나보다고 속으로 한탄하기 시작했다. 교수 출신들로 채워진 문약(文弱)한 청와대. 글쎄 잘할 수 있을까 하던 차에 조각(組閣)이 발표되면서 논문 표절 의혹, 땅떼기·아파트떼기·오피스텔떼기로 조롱받는 ‘부동산 클럽 내각’이 시리즈로 터져나오고 있다. 민심은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대놓고 표출하지는 않고 있다. 어떻게 세운 정권인데? 참자, 참을 데까지 참자. 이런 가운데 대선 이후 두달 동안 허구한 날 한나라당은 오로지 줄공천, 빽공천으로 나눠먹기를 즐기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은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들이 마음에 들어 표 찍어준 것으로. 그러나 민심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왜 저런 인물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국민은 묻고 싶은 것이다. 경선 캠프에서 몇 개월 일했다고? 서울시청 참모 출신이라고? 변호사 출신이기 때문에? 장사해서 돈많이 번 사람들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국민은 피를 토하며 분노했건만 정작 자신들은 잃어버린 것 없이 출세하고 돈벌고, 할 것 다 하다가 ‘에라! 국회의원이나 해야지’하는 출세주의자, 천민 자본가, 사이비 법률가들 - 이런 웰빙족(族)이 줄잡기, 빽동원하기에 성공해 지금 한나라당에 우글우글 공천을 신청해 놓고 있다.

    한나라당에 대한 본질적인 절망에 불이 붙으면 총선 판세는 간단히 뒤집어진다. 배신자로 낙인됐던 손학규와 이회창이 이명박을 찍은 유권자들의 눈에 서서히 덜 밉게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아무리 미워도 야당에 견제세력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호남과 충청은 새 정부 인사 과정에서 지역 편중을 절감했다. 이로 인해 총선은 사상 최악의 지역대결로. 한나라당의 영남권, 통합민주당의 호남권, 자유선진당의 충청권 간 대격돌. 여기에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자유선진당으로 나가는 것은 예측되는 수순이고 무소속 출마도 쏟아질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가 야당과 1 대(對) 2, 1 대 3 구도로 싸울 수밖에 없다. 보수·우파 표의 분산 효과 때문에 한나라당 압승은 어려운 판이다. 통합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의 지역 싹쓸이가 벌어지고, 수도권에서 다자대결로 간다 해도 한나라당이 압승? 통합민주당이 박지원 김홍업을 낙천시키며 억 소리나는 개혁공천을 밀어붙여도?

    한나라당은 이명박을 찍은 표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야당에 발목 잡히면 대통령 이명박은 일을 할 수가 없다. 도루묵! 공천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개혁 공천 쪽으로 질주해야 하는 것. 그걸 대통령 이명박이 결단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