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달 '남파간첩·빨치산' 추모제 열린다

    종북-좌파식 주장에 박근혜 정부 비난 일색

    김승근(독립신문)

        


  • 내달 소위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열린다.
    자유진영에서는 이를 `<남파간첩·빨치산 추모제>라고 부른다.
    추모단체에서 주장하는 [열사] 중 대다수가
    건국 이후 간첩·빨치산 활동으로 실형을 받은 인물들이기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올해로 22회째를 맞은 추모제는,
    조선노동당에 입당해 반국가적 행위를 자행했던 인물과 간첩들을
    [통일애국열사], [민족민주열사]라고 불러왔다는 게 자유진영측의 시각이다.

    [민족민주열사]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전형적인 [종북좌파 단체의 코스프레]라는 비판은 행사의 성격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들이 주장하는 [전쟁책동 음모 분쇄]와 [전쟁연습 중단],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문구는
    [종북정당]이라 비난 받는 <통합진보당>에서 주장하고 있는 대북관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남북관계 경색에 있어 모든 문제가 우리 정부에 있다고 주장하는 논리 그대로다.

    [공안탄압 규탄],
    [민주주의 수호],
    [민중생존권 쟁취],
    [폭압기구 정치개입 규탄],
    [제주해군기지 건설 중단] 등도
    역시 종북좌파의 시각을 그대로 쫓고 있다.

    <재능교육> 노조 본사 농성장 및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본사 농성장을 방문하는 등
    진영논리에 맞는 활동도 예정돼 있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 연대회의> 사이트에 가보면,
    60년대 최대의 간첩단 사건인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적화통일을 획책하다
    공안기관에 적발돼 사형된 김종태-이문규-김질락 등을 포함해
    빨치산 출신 박판수-윤기남-주명순-손윤규-안상운-정대철 등
    김일성-김정일 등에 충성해온 공산적화통일론자들이 대거 포함됐다.

    <추모연대>는 이들을 [민족민주열사]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며,
    자유게시판에는 광명성 3호를 발사한 북한의 입장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그 외에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특별작전행동소조>를 제목으로 한
    <조선중앙통신> 기사를 비롯해,
    북한의 <국방위원회 정책국> 성명을 올려놓는 등 북한의 소식을 수시로 전하고 있다.

    회원들은 게시글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성과를 폄하하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북한에서는 [프로세스]란 말 자체도 사용하지 않는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들은 <민족민주열사ㆍ희생자 범국민추모제 행사위원회 결성식>에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 탄압,
    일 년 내내 계속되는 전쟁연습 군사훈련에서 보이듯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강화시키는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군사전략에 앞장서는 반민족적 예속정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동안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외쳐온 이들 단체는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위해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철수를 반드시 이룩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한편 이들은 내달 추모제를 통해,
    남파간첩출신 인물들과 빨치산 출신 인물들 다수와
    1979년 검거된 남조선민족해방애국전선의 주범들,
    조선노동당 지하당인 <통일혁명당> 간부 등을 추모할 예정이다.

    김승근 기자 hemo@hanmail.net

    <관련기사>
    [再錄] 國會로 진출한
    2007년 '간첩-빨치산 추모제' 추모위원

    통진당 노회찬-심상정 추모위원 이름올려

    김필재/김성욱    
         -2012년 5월29일자 <조갑제닷컴> 보도-
     
      전대협 출신의 이인영, 오영식, 우상호와 함께 민주당 19대 국회의원 당선자인 강창일, 이목희, 이상민, 문병호, 정청래는 2007년 대표적 從北단체인 한국진보연대 등이 주도한 간첩·빨치산 추모제(원제:제1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제) 추모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던 인물들이다.
     
      당시 행사에 소개된 열사 가운데 상당수는 건국 이후 간첩-빨치산 활동으로 추모대상에는 남파 간첩 출신의 금재성·김도한·김남식·신창길·왕영안·윤용기·진태윤·최백근·최남규·최인정, 빨치산 출신의 권양섭·김광길·김병인·김용성·김현순·류낙진·박판수·손윤규·안상운·윤기남·장광명·정대철·정순덕·주명순 등 共産(공산)혁명가들이 포함됐다.
     
      행사장 전시물은 남파간첩 출신과 빨치산 출신들을 가리켜 ‘동지’와 ‘열사’로 호칭하며, 각각 “통일조국을 위한 사업을 위해 남한에 파견”, “조국통일투쟁에 전념하시다” 등으로 미화했었다.
     
      [관련자료] ‘민족민주열사’로 둔갑한 ‘간첩·빨치산’ 출신들의 면면

     
      △최남규는 1957년 간첩으로 남파됐다 체포된 후 1973년 출소했다. 출소 후 3년 간 엿장수 생활을 하다 75년 7월 사회안전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돼 89년 풀려났다. 그는 출소 직전인 89년 5월11일 청주보안감호소에서 쓴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가고픈 내 고향에 가고파도 내 못가네. 광복된 이 조국에 38선 웬 말인가 이 땅 뉘 땅인데 주인행세 누가하고 아름다운 금수강산 짓밟질랑 말고서 돌아가라, 사라져라, 어서 꺼져버려라. 고-홈 고-홈 양키 고 홈”
     
      1999년 사망한 최남규는 스스로 “백두산 장군(金正日)에 대한 충성 때문에 전향하지 않았다”고 밝혔었다.
     
      △류락진은 6.25사변 당시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57년 가석방된 후 63년 ‘혁신정당’사건, 71년 ‘호남통혁당재건委’사건, 94년 ‘구국전위’ 사건, 2002년 빨치산위령비 비문(碑文)작성 사건으로 거듭 처벌받는 등 2005년 사망 시까지 대한민국 파괴활동에 매진(?)해왔다. 이 중 구국전위는 ‘조선노동당’의 남한 지하당으로서 창립선언문과 강령 및 규약에서 북한의 主體思想을 조직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있다. 류낙진은 이적단체(利敵團體)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으로 활동하다 사망했다. 그의 가족들은 부의금 5천만 원을 통일운동에 써달라며 범민련 남측본부에 기탁했다. 류낙진은 영화배우 문근영의 외조부로도 알려져 있다.
     
      △금재성은 1956년 간첩으로 남파됐다 체포돼 1972년 출소한 뒤 1998년 사망했다.
      진태윤은 1962년 간첩으로 남파됐다 체포돼 1988년 출소했다가 1997년 사망했다.
      김도한은 1957년 간첩으로 남파됐다 마곡사 승려로 암약해 오던 중 체포됐다.
      최인정은 1964년 목재보트를 타고 남파했다가 체포됐다.
      왕영안은 해방 직후 남로당 활동을 벌이다 월북, 1958년 남파됐다 체포됐다.
      윤용기는 북한 건축국 문화부장 출신으로 1959년 남파됐다 체포됐다.
      신창길은 1959년 간첩으로 남파된 후 암약해오다 1973년경 체포됐다.
     
      최백근은 해방공간에서 국회프락치 공작 등을 벌이다 6·25당시 월북한 뒤, 1952년 지하당 재건 사명을 띠고 남파됐다가 위장 자수했다. 이후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목표로 한 사회당건설을 주도하다 5·16직후 사형됐다.
     
      박융서과 김용성은 각각 1958년과 1962년,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 미수로 검거돼 복역하던 중 1974년과 1980년 옥사했다.
     
      △윤기남은 1951년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검거됐다. 1968년 비전향 만기출수 후 1971년 지하당 사건으로, 1979년 반공법 위반으로 거듭 구속됐다.
      장광명은 1951년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검거됐다.
      김현순은 1952년 지리산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검거됐다가, 1972년 통혁당 사건으로 재수감됐다.
      김용성은 간첩미수죄로 1964년 검거됐다.
      권양섭은 남로당 활동하다 복역해 나온 뒤 1972년 조선로동당 지하당 통혁당 사건으로 다시 복역했다.
      박판수는 남로당 항양군 군당부책으로 일하던 중 6·25가 벌어지자,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검거됐다. 그
      정순덕은 6.25사변 발발 후 인민위원회 활동을 하던 남편을 따라 1951년 이후 빨치산 활동을 벌이다, 63년 11월 체포됐다.
      김병인은 1950년 지리산 빨치산 활동을 벌여오다, 1951년 전남 도당 위원장으로 활동하다 1953년 검거됐다.
      손윤규는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체포됐다.
      김광길은 화순군당 위원장으로 빨치산 활동을 벌이다 검거돼 1969년 출소했다.
      정대철은 빨치산 출신으로 21년 6개월간 수감됐다가 1990년 사망했다.
      장광명은 6·25당시 전북인민위원회 간부로 활동 중 체포돼 1971년 출소했다.
      안상운은 빨치산 활동을 벌여오다 1953년 검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