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2일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이 쓴 '충청도의 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불교 경전 『열반경』에 나오는 우화인데 딱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설 연휴에 충청도 민심을 만져봤다는 정치권 장님들 말이다. 18대 총선의 최대 격전지라는 충청도를 놓고 저마다 아전인수, 동상이몽을 꿈꾼다. 대선에서 이긴 무리는 “새 차를 뽑았으니 신나게 달릴 수 있도록 기름을 넣어주는 게 순서”라는 게 충청도의 중론이라 한다. 반대로 권력에서 밀려난 무리는 충청도 사람들이 “과속하는 자동차는 위험하니 잘 듣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충청도 태생임을 주장하는 또 다른 무리는 “새 차건 헌 차건 지형을 모르면 위험하긴 마찬가지니 충청도를 잘 아는 운전기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달 남은 총선에서 최선의 결과를 기대하는 정당들로서야 어찌 저 편한 대로 만지고 느끼고 싶지 않겠나마는 정작 볼 잡히고 손 잡히고 발 잡힌 충청도 사람들은 가소롭기 짝이 없겠다. 충청도를 물로 보느냔 말이다. 충청도 맛을 살짝 보자. 조정래 소설 『한강』의 한 장면이다.

    “나도 스피아 운전수 꼴 면하고 한 밑천 잡게 나서야지요. 택시 한 대 살 돈만 벌어오면 그땐 팔자가 피니까요.” 문씨가 입술을 야무지게 훔쳤다. “작심 잘하셨슈. 담에 택시회사 사장님 되면 나 아무 자리나 한자리 시켜줘유(…).” 강씨가 뚜벅 말했다. “하이고 저 충청도 양반 우뭉시럽기넌(…). 그 재주에 헐 일이 머시가 있간디?(…)” 김씨가 입빠르게 퉁을 놓았다. “뭔 섭헌 말을 그리 허남유. 그때야 차분허니 운전 기술을 배워야지유.” “허, 어느 세월에 그런 기술을 배와?(…)” “어찌 그류? 육십에 삼대 독자 낳는다는 말도 못 들었슈?”

    겉은 헐렁한 핫바지 같아도 속은 오달진 게 충청도 사람들이다. 사납게 몰지 않고 에둘러 가면서도 의뭉스럽게 제 뜻을 관철하고 마는 게 충청도 사람들이다. 난처할 때 이리저리 말휘갑 둘러 빠져나가도 세상사 자기 주관은 엄연한 게 충청도 사람들이다. 그래서 평이 엇갈리는 게 바로 ‘충청도 양반’들이다. 충청도를 가리켜 조선조 개국공신 정도전은 담백하고 온화한 성품을 뜻하는 ‘청풍명월(淸風明月)’에 빗댔고 영조 때 인문지리서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오로지 세도와 재물만을 좇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양반 체면 차려도 손해볼 짓은 안 한다는 얘기다. 그런 색깔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삼국시대부터 각축이 심했던 땅인지라 자기 의사를 빨리 정해 밝히기보다 되도록 늦추고 감추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 됐던 거다. 그래서 ‘멍청도’란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대신 양극을 감싸 충격을 완화하는 중간의 문화가 가능할 수 있었던 거다. 역사의 전면에 앞장서기보다 한 발 뒤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것도 다 그런 결과다.

    4월 총선에서도 그런 ‘충청본색’은 여실히 발휘될 터다. 정치권에서 어떻게 주무르고 만지든 충청도는 스스로 필요한 사람을 선택할 거란 말이다. 지금 여론조사야 어떻든 결국 절묘한 황금분할이 이뤄질 거란 얘기다. 그러니 정치권은 김칫국 안 마시는 게 좋겠다. 그럴 시간에 진짜 인재를 찾아나서는 게 낫겠다. 혹시 아나. 진정 충청도를 위한 길이 뭔지 아는 후보를 낸다면 충청도 사람들이 눈길 좀 줄는지 말이다. 경기·강원·전라·경상 모든 도와 접한 충청도로선 이웃과의 조화로운 발전이 곧 자신을 위한 길이라는 걸 아는 후보라면 더 좋겠다.

    기왕 소설을 꺼내 들었으니 소설로 글을 마쳐야겠다. 이번엔 이문구 소설 『우리동네』다. 도시에서 복부인이 돼 돈 번 딸에게 하는 친정 어머니의 충고인데 충청도 사람들이 정치권에 들려주는 충고로 들어도 좋겠다.

    “이런 디서 살어두 짐작이 천리구 생각이 두 바퀴란다. 말 안 허면 속두 읎는 중 아네. 촌것이라구 업신여기다가는 불개미에 빤스 벗을 중 알어라. 위에서 시키는 것도 반을 빌구 반은 눌러도 들을지 말지 헌 게 촌사람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