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1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비통하다기에 앞서 한없이 부끄럽다.

    2008년 2월10일 심야와 11일 미명에 걸쳐 국보 제1호 숭례문이 화염에 휩쓸려 그 웅장하면서도 고아한 자태를 감췄다. 조선왕조 5백년과 이후 대한민국 전후사 1백년을 지켜온 수도 서울의 대문이 채 6시간 미만의 불길에 스러진 것이다. 불기와 연기가 숭례문을 태우고 그슬면서 국민의 가슴가슴 또한 타고 거슬렸다. 숭례문을 창건한 조선왕조 창업 당시 화마(火魔)를 걱정해 문의 이름 석자를 세로로 내려쓴 선인과 그 속깊은 뜻 두고두고 헤아려온 선조와 선열 앞에 당대의 우리 모두는 무릎꿇어 스스로 죄를 물어야 한다.

    전면 2층 누각이 화마에 휩싸여 포물선으로 스러지면서 하늘을 뒤덮은 검은 연기는 문화 한국의 자부심과 자존심까지 허공에 흩었다. 진화 작업을 벌이던 소방관들과 함께 온 국민이 흘린 눈물이 앞으로 오랫동안 마르지 않을 것이다. 문화재 관리대장에 맨 먼저 기록된 국보 제1호 숭례문에 남은 앙상한 자취는 선대의 문화유산을 발전·승화시키긴커녕 제대로 건사하지도 못하는 당대를 꾸짖고 있다.

    숭례문 화재 또한 인재(人災)였다. 화재의 직접적 원인이야 당국이 철저히 조사해 가릴 일이지만 그 원초적 책임은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관리 행정 잘못임을 우리는 새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숭례문을 개방해 시민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난 뒤 그만큼 화재나 고의 파손의 우려가 짙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소방시설이라고는 소화기 몇대 비치가 고작이었을 뿐 화재 감지기도, 자동 스프링클러도 갖추지 않았으며, 상주 관리인력도 야간에는 단 1명도 없었고 무인 경비시스템에 의존해 주변만 경비해왔다니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까.

    숭례문에 앞서 그동안의 연속 경고를 되돌아보면 죄과는 더더욱 커진다. 최근 3년 간만 해도 화마가 덮친 문화재가 어디 한둘이었던가. 2005년 4월 천년 고찰(古刹) 낙산사, 또 2006년 5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의 서장대(西將臺)가 전소될 때 문화재청은 방화책을 강구하니 어쩌니 얼마나 부산을 떨어왔는가. 아직 문화재 소방법령을 마련하지 못해 목조건물에 불이 나면 그저 물만 들이부으라는 식이 문화재 소방대책의 전부이다시피 한 것이다.

    숭례문은 복원까지 5년은 걸린다고 한다. 그 5년은 하루 하루가 속죄의 나날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