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에 제성호 중앙대 교수가 쓴 시론 '통일부 이대론 안 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안팎에서 통일부 폐지 및 외교부로의 통합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남북한 특수관계 운영을 책임질 부서는 어떤 형태로든 필요하기 때문이다. 외교부의 남북관계 전면 등장은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헌법 제3조의 영토 조항에 저촉될 수 있다. 또 서독이 외무부가 아닌 ‘내독관계부’를 통해 대(對)동독 교류를 실시했던 분단국 선례와도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이 같은 조직 개편은 법리 논쟁이나 반(反)통일세력 운운하는 등 보·혁 갈등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현재의 통일부로도 안 된다는 것 역시 필자의 판단이다. 그동안 통일부가 보여 준 여러 가지 난맥상과 무책임 때문이다. 일부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것이 마치 대북정책의 성과인 양 착각해 대북 비선 대기에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북측의 비위를 맞추는 낯 뜨거운 발언과 행태가 현 정부 내내 계속됐다. 특히 면담에 불과한 것을 마치 무슨 큰 성과가 있었던 것처럼 부풀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회담에 목말라하는 태도를 자주 보이곤 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 결과 회담 개최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상한 사고와 함께 북측에 끌려 다니는 관행이 생겨나게 됐다. 북한의 남북대화 ‘호응’과 약속어음에 해당하는 합의서 ‘생산’만으로도 막대한 현찰(소위 ‘퍼주기’)을 내주는 ‘비대칭적·비정상적 관계’ 형성을 통일부가 앞장서 부추겼다. 지금은 남북회담 개최 그 자체가 남북관계 개선의 지표로 간주되던 시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통일부는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부는 성과에 급급해 북핵 문제 진전 등 국제공조를 의식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식량을 북측에 지원하려 해 외교·안보부처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안보 문제에 대한 경제적 접근 운운하며 북방한계선(NLL) 문제에 주제넘게 나선 것도 문제였다. 우리의 영토적 정체성과 안보를 튼튼히 하는 가운데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는 게 올바른 대북정책 방향이었는데도 말이다.

    통일부 업무 중에는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 기반 조성이라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언제 통일부가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노력했는지 의문이다. ‘코드 자문’만 받아 자신의 정책 추진을 정당화하려 했을 뿐이었고, 대북정책과 관련해 이 정권의 국민 편가르기에 맞장구치는 모습만 보여 줬다.

    이렇게 볼 때 통일부는 어떤 식으로든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우선 불요불급한 조직을 정리하는 군살빼기가 요청된다. 그동안 통일부가 정치·경제·문화 등 남북관계의 모든 영역을 주도하겠다는 과욕을 부려 조직이 비대해진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남북대화가 열려야만 제대로 기능하게 돼 있는 ‘남북대화사무국’ 같은 조직은 정책실과 통합할 필요가 있다. 각종 대북 정보를 취합하는 부서도 국정원 기능과의 연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조선이나 사회간접자본(SOC) 같은 전문 분야는 해당 부처가 주도적으로 담당토록 해야 한다. 대신 통일부는 대북 현안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국익에 맞는 것인지를 깊게 고민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이런 기구 개편과 함께 국가정체성과 자유민주통일노선(헌법 제4조)에 대한 확신과 이에 충실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통일부를 책임지고 운영하는 것이 더욱더 중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얼마든지 예전과 같은 일들이 되풀이될 것이다. 대북 관계에서 통일부 당국자들의 근본적 인식 전환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