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 '중앙시평'에 안국신 중앙대 교수가 쓴 <'이게 아닌데' 정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김용택, ‘그랬다지요’)

    ‘이렇게 사는 것도 삶일까’ 문득문득 돌아보면서도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잘 그린 시다. 필자는 실존적 성찰을 그린 시인의 의도와는 동떨어지게 이 시를 노무현 정부와 연관시켜 생각해 왔다. 참여정부는 처음부터 ‘이게 아닌데’가 너무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에 대한민국을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나라’며 ‘오욕의 역사’라고 폄하했다. 기득권층은 기회주의자요, 오욕의 역사의 부역자들이었다. 이들을 응징하고 강남의 집값을 잡겠다고 세금 폭탄을 퍼부었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시장경제와 국민 통합을 추구하는 지도자라면 기득권층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했어야 한다.

    “여러분을 포함한 국민 모두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12위 안팎의 경제 대국이 됐습니다. 여러분이 이룬 성취와 부(富)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소외되고 못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러분이 흔연히 세금을 많이 내 주십시오. 그 대신 정부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 여러분이 맘 놓고 쓰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이게 아닌데’는 굵직한 것만도 참 많다. 대통령의 품격에 안 맞는 언행, 수도 이전 추진, 획일적 교육 평준화와 3불정책, 보유와 양도 양쪽에 철퇴를 내리는 부동산세제, 위헌 판정을 받은 언론 개혁을 포함한 사이비 4대 개혁, 기자실 폐쇄, 시스템 인사를 내건 코드 인사, 원칙 없는 대북 정책, 무모한 자주 국방, 큰 정부 등등.

    무엇보다 국가의 근간을 규정하는 헌법을 경시하고 법을 무시함으로써 국가의 정통성과 권위를 땅에 떨어뜨렸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과 분열을 부추기고 경제하려는 의지를 꺾었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가 저지른 ‘이게 아닌데’의 백미다. 이번 대선에서 노 대통령이 생리적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보수 진영이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받은 배경이다.

    이제 곧 노무현 정부도 ‘그랬다지요’ 정부가 될 참이다. 5년 전 이맘때 노무현 사람들은 5년 뒤 받을 참담한 심판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금 천하를 얻었다고 좋아할 이명박 사람들도 무심한 관찰자인 역사로부터 겸손한 자계(自戒)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새 정부는 현 정부가 저지른 ‘이게 아닌데’만 바로잡아도 어느 정도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성공한 정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이명박 특검’으로까지 불거진 국민적 의혹을 적극 해소하는 것이다. 압도적 표 차로 당선된 것을 내세워 한나라당이 특검을 피하려 한 것은 가당치 않다. “국민을 잘 섬기겠습니다”는 자세가 아닌, 오만한 자세다. 유권자의 31%밖에 지지하지 않은 국민을 태산같이 무겁게 섬겨야 한다. 원칙에 충실하고 정직하며 말을 함부로 바꾸지 않는 것이 실용보수의 기본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 대통령’으로서 단기에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강박관념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에는 단기와 장기에 성과가 딴판인 것이 너무 많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단기에 좋은 것에만 집착하면 경제는 장기에 우그러진다. 예컨대 대운하 공약의 경우 온갖 좋은 효과를 내세워도 그것이 단기에 그치고 장기에는 애물단지일 공산이 크다. 21세기 우리나라에 맞는 선진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수도 이전 공약과 닮았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독선에서 벗어나 폐기하는 것이 낫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출범 초에 이 두 가지를 순리에 맞게 풀지 못하면 이명박 정부도 또 다른 ‘이게 아닌데’ 정부로 끝나기 쉽다.